[독서의 계절 특집]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읽기 (2)_이원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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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읽기 (2)

-이원평 목사(춘천돋움교회)

 

*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독후감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본문 인용/ <죄와 벌, 열린책들 간>의 허락을 받음.

라스콜리니코프와 루쥔과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뒤틀린 인간 내면을 소유한 자들의 대명사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시기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은 어땠을까? 그는 경제적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유복하게 자랐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는 대토지와 수많은 농노를 소유한 부유한 세습 귀족은 아니었지만, 자수성가한 의사로서 마침내 작은 영지까지 마련한 의지의 인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자애로웠지만, 아버지는 냉혹할 정도로 엄격했으며 자녀들의 외부 접촉도 철저히 차단시켜 집안에서만 머물며 교육 받도록 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 형제들은 어린 시절 용돈을 문자 그대로 단 한 푼도 손에 쥐어 보지 못함으로써 경제생활의 관념을 익힐 기회조차 없었다. 이러한 그의 어린 시절은 고액의 원고료를 받는 대문호가 되어서도 돈의 씀씀이와 경제적 형편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불안한 위치에 있게 된 배경을 설명해 준다. 그는 일평생 빚에 쪼들리다가 두 번째 아내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헌신적 노력에 의해 말년에 가서야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버지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폐쇄적이고 단절된 환경 속에서 자란 도스토예프스키는 어쩔 수 없이 인간성의 연대에 있어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그는 청년이 되어서도 남들과 원활히 교제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되었다. 게다가 내향적이었던 이 아이는 커서 공병학교 동기생들과의 친교에도 매우 서툴렀으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자기 몰입적인 아들이자 동료였으며, 침울했고 경제관념도 없었다.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은 받자마자 물 쓰듯이 써버린 결과 벌써 이때부터 빚을 자주 지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그의 청년 시절을 그나마 버티게 해준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 하나였다!

이처럼 불안정한 삶 속에서 써냈던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이 당대의 주도적 비평가인 벨린스키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으며 그는 성공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보게 젊은이, 자네가 무슨 일을 해낸건지 알기나 하는가!” 이때가 1845년 그의 나이 24세였다. 그러나 유명한 신인작가가 된 그는 1849년 한창인 스물여덟 나이에 불온 단체인 페트라셰프스키 클럽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체포(4월)되어 사형 선고(11월)를 받게 된다. 지루한 조사와 재판 끝에 그해 말인 12월 22일 눈이 가려진 채 사형대 위에 묶여 있던 그는 황제의 특사에 의해 극적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이듬해 1월 중순 차디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도착한 시베리아의 옴스크는 수도 모스크바나 그의 주무대였던 페테르부르크에 비하면 완전한 단절과 고립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4년 간의 끔찍한 유형소 생활을 마친 그를 또 기다린 것은 더 멀고 단절된 극지라 할 수 있는 세미팔라틴스크로의 전출이었다. 귀족이자 공병대 소위 출신이었던 그는 일반 병사로 강등된 채 그곳에서 강제 복무를 마쳐야만 했다. 이 세상과 단절되어 외로웠던 그곳에서 그를 세상과 이어주었던 유일한 끈은 사랑하는 형 미하일과의 편지 교류와 친절하고 아낌없는 후의를 베풀었던 브란겔 남작과의 교류뿐이었다.

세상과의 단절을 맛보며 지낸 시베리아 생활이었지만, 그것이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오히려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 그는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여러 유형의 인간 군상을 만나 말 그대로 살을 맞대며 살게 되었다. 그가 갖지 못했던 인간과의 연대를 되찾게 해준 결정적인 체험이 그곳 단절된 세상인 시베리아의 험악한 유형소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냉혹한 자연 환경과 살벌한 유형소 안에 형성된 세계 속에서 그는 죄수들(주로 평민들)과의 연대를 의식하며 비로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교제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 단절된 시베리아 극지에서의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작가에게 깊고 넓은 인간 이해와 더불어 심화된 인간 내면세계의 분석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특히 시베리아 유형소는 서구의 감옥처럼 독방이나 소수가 머무는 감방 생활을 일체 불허한 곳으로 악명 높았다. 그곳은 오직 단체 생활만 허락된 곳이었다. 죄수들은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만 했다! 그들은 서로 미워하고 증오했으며, 질투하며 싸웠으며,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먹으면서도 한 공간 안에서 부대끼며 지내야만 했다. 그러면서 이 거친 사나이들은 깊은 정을 쌓아가든지 아니면 증오를 더하든지,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었다. 다행히 우리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봄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존경과 이해 그리고 사랑도 키울 수 있었다.

그는 시베리아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버텨 마침내 이겨냈다. 이 젊은 작가를 버티게 해준 근본적인 힘은 이 기간이 지나가고 나면 반드시 출소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 때문이었다. 그는 그 시절에 대한 소회를 후일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자전적 문학 형태로 담담하게 기술했다. 무엇보다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인간성의 연대를 맛보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하며 인간 이해를 심화시킨 이 체험은 <죄와 벌>로 시작되는 후기의 대작들을 써낼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이러한 체험의 바탕 위에 써 내려간 그의 후기 비극들은 “다성음악”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각 비극들에는 여러 층위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저마다의 사상을 구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열린 결말”을 추구한 작가로서 독자들이 자신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작품을 읽고 해석할 자유를 부여해 주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그의 소설적 특성을 동시대의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잘 짜인 플롯과 의도한 결말로 유도하는 소설과 정반대의 유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을 때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다. 독자들은 나이대와 환경과 성숙도에 따라 각 캐릭터들이 시시각각 다른 깊이와 인상으로 다가옴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지님으로써 독자들이 지속적으로 찾게끔 끌어들인다. 본인은 바로 이점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20대와 30대를 지나고 40대와 50대에 접어들며 읽은 그의 소설은 그때마다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그의 작품은 여러 캐릭터들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고민과 갈등을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줌으로써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유독 러시아 대지의 광활함이나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묘사하는 페테르부르크시의 전경도 그저 <죄와 벌>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뒷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뒷골목과 아예 냄새에 갇혀 버린 도시 자체, 온간 인간이 몰려들어 인간 사회의 모순과 죄악됨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곳이 작가의 대도시인 페테르부르크였다. 작가의 관심은 오로지 인간, 인간 내면세계의 묘사에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 인간이란 뒤틀리고 부조리한 그러면서도 일정 부분 합리성을 지닌 존재였다. 이처럼 인간은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힘든 내면의 세계를 지닌 존재였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 외에 또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인 루쥔과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바로 그런 뒤틀린 인간 내면을 소유한 대명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두 캐릭터는 라스콜리니코프를 닮은 듯하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악인들이다. 루쥔과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초인적 사상을 지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상적 초인은 못되었을지라도 결국 악을 실현한 실제적 초인들이었다. 루쥔은 돈과 지독한 이기심으로,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일탈적 쾌락과 살인(타인과 자신을 죽임으로써!)으로 또 다른 악을 구현해 내었다!

그러면 루쥔이란 존재가 어떤 인간 유형인지 그의 말을 한 번 직접 들어보자. 다음은 루쥔이 라스콜리니코프의 대학 친구인 라주미힌에게 “승리감과 우월감에 가득 찬” 채 늘어놓는 일장연설 중 한 대목이다.

“대성공, 요즘 말로 해서 진보는 이뤄졌습니다. 과학과 경제적인 진리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만약 제가 지금까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듣고, 이웃을 사랑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러면 저는 웃옷을 반으로 잘라서 이웃과 나눠 가졌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둘 다 반은 벗은 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개인적인 이익을 기초로 하고 있으니까요. 자기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자기 일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고, 또 웃옷도 온전한 채로 남게 되지요…… 이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감식안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사람 루쥔, 그는 한마디로 물질지상주의적인 사고를 지녔으며 이기적인 경제적 공리주의자라 할 수 있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공리주의와 개인 이기주의가 함께 가다니! 우리가 그동안 수업이나 사회적 상황 속에서 별다른 생각이나 가치평가 없이 배우고 사용한 소위 공리주의라는 사상이 이토록 비정하고 잔인무도한 사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루쥔을 말을 듣고 그를 증오하며 내뱉은 라스콜리니코프의 반박을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

“당신이 조금 전에 설교한 것을 끝까지 끌고 가봅시다. 그럼 사람을 찢어 죽여도 되는 거 아니오……?”

이 말은 루쥔을 향한 라스콜리니코프와 라주미힌의 반발인 동시에, 곧 19세기 러시아 지식층을 뒤흔든 무신적이고 비인간적인 서구 사상을 향한 도스토예프스키의 경고였다! 또한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이기적 기득권자들을 향한 예언적 경고이기도 하다!

그럼 어디 또 다른 악인인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어떤가? 그는 자기의 육욕을 채우기 위해서 살인과 그 어떤 비굴한 태도도 전혀 개의치 않는 그런 인간 유형이다. 또한 그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욕구에 지쳐버린 허무주의자가 되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것도 돈의 대명사와도 같은 길거리의 한 유대인 앞에서! 이 사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어쩌면 악이 그 내면에서 가장 극화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에게 이웃은 누구였던가? 그에게 사랑과 성(性)은 무엇이었는가? 한마디로 자기 육욕과 내적 허무함을 채우기 위한 도구, 그것도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는 일회성 도구에 불과했다! 그는 그것을 채워도 채워도 도무지 채울 수 없자, 결국 허무와 비탄에 빠져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대작들에서 루쥔과 스비드리가일로프 같은 악인들은 다른 캐릭터들을 통해 계속 되살아난다. 로고진, 스타브로긴, 이반과 아버지 카라마조프, 스메르쟈코프 등이 그들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또 다른 루쥔과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수가 19세기보다 훨씬 더 많아졌고, 이제는 그들이 개별자가 아니라 집단적이 되었다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이 오히려 19세기말의 러시아보다 더 파국적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불의한 여러 기득권층의 모습으로, 불로소득에 미쳐 날뛰는 특권층과 투기꾼층의 모습으로 지금도 죄에 죄를 더하며 파국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들의 시대는 곧 지나가리라! 심판이 있으리라! 그리고 그렇지 못한 비참한 형편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관 같은 방”에 갇혀 있다가 세상을 향한 분노를 퍼부으며 자신의 분노와 악을 쏟아낼 대상을 찾던 또 다른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뛰쳐나와 또 다른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여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