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를 표준하고 사는가?
김수흥 목사(전 합신 초빙교수)
만사의 표준이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판단하고 죄를 정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성도들은 누구나 다 자기가 하나님을 표준하고 그리스도를 표준하고 말씀을 표준하고 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솔직히 자신을 표준하고 살지 않을까. 나 자신을 표준해 이웃을 판단, 비판, 정죄하며 사니 말이다. 이런 일은 특히 율법준수를 많이 강조하는 교인들과 교회 그리고 교단에 심하다. 자기 속의 율법의식을 표준하여 무수한 이들을 판단, 정죄하는 데 열심이다. 자기만 지키면 하나님께 큰 상급을 얻겠지만 자기 잣대를 남에게 적용하여 다수를 비판하니 불행한 일이다.
더욱이 결벽증에 걸린 이들의 눈에는 모든 이가 죄인이고 악인이다. 그들은 율법을 자기에게만 적용하면 위대한 성인(聖人)이 되련만 자신을 기준하여 다수를 판단한다. 특히 정치권도 심하다. 그들은 자기 표준으로 모든 사람들을 판단한다. 자기가 제일 적격자이고 다른 사람들은 많이 모자란다. 그러나 실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는 것을 보면 바로 그가 오히려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라가 혼란하다. 대선 후보자들도 모두 자기가 제일 낫다면 타 후보자들은 그 어떤 점에서든 많이 모자란다고 한다.
우리 자신이 표준이 되어 남들을 판단하고 정죄했다면 우리가 하나님 자리를 점령한 것이니 심각하게 죄를 자복해야 한다.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 역할을 했으니 죄를 자복해야 하고 또 남들을 정죄했으니 죄를 자복해야 할 것이다. 뼈를 깎는 자복이 없다면 하나님의 심판 아래로 들어가게 마련이다(마 7:2). 남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일에 열심을 다 했던 사람들이 깊이 죄를 자복하지 않으면 오래 동안 징계를 받는다.
우리는 차라리 믿는 사람들을 예수님 대하듯 대해야 할 것이다. 아내는 예수님 믿는 남편을 예수님처럼 대해야 하고, 남편은 예수님 믿는 아내를 예수님 대하듯 귀하게 여겨야 하며, 며느리들은 예수님 믿는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엡 6:5-7; 딤전 6:1; 딛 2:9-10; 벧전 2:18). 그리고 시아버지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과 사위들을 아주 귀한 존재로 여겨야 한다. 이유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영(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이 진리를 모르고 어떤 이들은 노회와 총회에서 다른 목사들을 함부로 대하다가 덕이 안 되는 결과를 본다.
혹은 타인에게 어떤 약점이 있기 때문에 비판하고 정죄한다고 말한다. 만일 타인에게 약점이 있다면 우리가 비판하고 정죄하기보다는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고치시게 해야 한다. 이는 마치 길 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경찰에게 보고해서 경찰이 해결해야 하는 것과 같다. 남의 약점을 내가 고치려고 애쓸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약점 중 하나는 남의 약점이나 허물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내 자신이 고쳐보려고 하다가 피차 큰 충돌을 한다. 우리는 범사를 하나님께 맡겨서 해결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지나가는 개의 귀를 잡아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잠 26:17). 이 말씀은 남의 일이나 다툼에 쉽게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개의 귀를 잡으면 개는 길을 잠시 멈추고 우리를 문다. 우리는 손해 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사의 표준이 되시니 하나님으로 하여금 판단하고 죄를 정하시도록 맡겨야 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의 원수까지도 우리가 심판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고 말한다(롬 12:19).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