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 종교개혁의 근본 사상_황건 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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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근본 사상

황건 안수집사(남포교회)

어려운 시대엔 종교개혁의 초심을 생각하며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선수들에게도 간간히 찾아오는 슬럼프처럼 인생에 어떤 난관에 봉착하거나 신앙의 침체기에 들면 먼저 초기에 그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나 근본 원리를 점검해 보라는 충고를 듣는다. 현대 교회는 여러 도전에 처해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실이 아닌가 싶다. 이런 때일수록 신앙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체코의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얀 후스”란 종교지도자의 동상을 보았다. 그는 체코의 존경받는 신학자요 1517년 독일의 루터보다 전인 1378년부터 종교개혁 운동을 하다 1415년에 순교했다는 설명을 접하고 그와 당시의 종교개혁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얀 후스(Jan Hus, 1372~1415)는 영국의 종교 개혁자 존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위클리프의 예정구원론을 바탕으로 성경을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보았다. 결국 성경을 통해서 교회와 교황과 로마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로부터 파문당했고,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7월 6일 화형을 당했다. 그리고 그 유해도 라인강에 뿌려졌다. 하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체코 형제단으로 이어졌고, 후스의 사상은 마르틴 루터 등의 종교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후스의 처형은 체코인들의 강한 반발을 불렀고, 1415년 가을에는 여러 귀족들이 콘스탄츠 종교 회의의 결정을 거부하고 후스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한다. 이는 로마 가톨릭에 대한 도전과 봉기의 신호였으며, 민중봉기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30년간의 종교전쟁이 1620년 Bila Hora(White Mountain)전투의 패배로 막을 내리면서 개혁신앙을 고수하는 많은 후스파 체코인들의 순교가 이어졌다. 후스의 동상이 있는 프라하 광장 바닥에는 그 27명의 귀족들이 순교한 자리를 기념하는 27개의 X표시가 있다.

후스는 교회와 사제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에 해당된다면 교황과 교회에게 대항하라고 설교했다.

첫째, 만일 교황과 교회가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을 아는 경건한 자들을 무시하고 인간적인 전통에만 눈을 돌린다면 이것은 교황을 거절해야 하는 표시가 된다.

둘째, 교황과 영적인 고위층들이 경건한 삶을 벗어나서 세상적인 일에 얽매여 산다면 이것이 교황과 교회를 거절해야할 표시가 된다.

셋째, 교황과 교회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세상의 장사꾼들을 내세우고 자신의 세속적인 삶에만 욕심을 내어 교회를 압박하는 경우 이는 교황과 교회를 거절해야 할 표시가 된다.

넷째, 만일 교황이 자신의 명령서를 통하여 구원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탈취한다면 이것이 교황을 향하여 대항할 표시이다.

후스는 교회와 사제들의 삶의 모습을 판단하라고 했지만, 현대에서는 교회와 신도들에게 요구되는 신앙의 지침이라 생각된다. 얀 후스에서 마틴 루터로 이어지는 종교개혁가들의 대표적인 신학사상(Five Solas)인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Solus Christus), 오직 은혜만으로(Sola Gratia),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 오직 주만 영광 받으심 (Soli Deo Gloria)이 오늘날 매일 매순간세상의 도전에 직면하는 우리의 삶에서도 적용되고 있는가. 우리가 이를 고민할 때 흔들리는 신앙도 초심으로 복귀하는 신앙생활의 방향키가 될 수 있다.

지나간 2015년이 얀 후스(1369-1415)의 순교 600주년이었고 올해 7월6일이 화형 당한 지 606년이 되는 날이었다. 후스의 종교개혁 운동 후 600여 년이 지난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 신자들은 당시 종교개혁의 초심을 생각하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