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지
< 김진옥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
“에프렘 사본이 유명해진 이유는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말씀 때문”
사진 출처: gallica.bnf.fr,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현대에 들어서 성경이 기록된 사본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성경 말씀은 다양한 필기재료에 기록되었다. 파피루스, 양피지, 도자기파편(ostraca), 나무판, 천조각 등등 성경말씀의 자취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양피지에 기록된 사본 가운데 독특한 방식으로 기록된 것이 있다. 이름하여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그리스어로 ‘다시 긁어냈다’를 뜻하는 이 사본들의 특징은 맨눈으로는 말씀을 식별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사본들은 먼저 기록된 글자들을 지우고 다시 사용한 재생지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성경이 기록되었지만 후대에 말씀을 지우고 다른 글을 기입함으로써 먼저 기록된 성경을 식별할 수 없게 된 경우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약품처리와 적외선촬영으로 완전히 해독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팔림프세스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에프렘사본이다(Codex Ephraemi Rescriptus). 에프렘사본은 사본비평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본으로, 현대 사본비평학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는 그레고리와 알란드에 의해서 04(C)으로 분류되었다.
5세기에 기록된 성경을 담고 있는 이 사본은 12세기 경 신학자 에프렘(Ephraem the Syrian, A.D. 306-373)의 신학논문을 기록하기 위해서 말씀을 지운 경우에 해당한다. 말씀을 지우고 에프렘의 논문을 기록하는 필사자에게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양피지는 비쌌으며, 또한 그 재질의 유연성 및 내구성으로 인해 자주 재사용되었다. 지워진 성경 위에 쓰인 에프렘의 신학논문 그리고 그 밑에 오래전에 먼저 기록되었지만 지워진 하나님의 말씀, 이 두 글의 관계가 참 아이러니하다.
에프렘사본은 어떻게 유명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에프렘의 신학논문 때문이 아니었다. 이 사본이 유명해지고 가치가 있어진 이유는 거기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다.
이전에는 어떤 한 신학자의 글을 담은 사본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지만, 성경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어느 사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부여된 것이다. 단지 말씀이 거기 숨어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 오래된 사본의 가치를 높이 상승시킨 것이다.
성경은 사람을 비유할 때 여러 가지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그릇의 비유이다. 사람은 무언가 담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배운 것을 그 삶에 담는다. 본 것을 담는다. 들은 것을 담는다. 또한 삶 가운데 느낀 것을 담는다. 넘치는 기쁨을 담기도 하지만, 쓰라린 눈물을 호리병에 담을 때도 있다. 잔잔한 삶의 평화를 담기도 하고, 불같은 분노를 담는다.
우리의 삶은 우리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양피지와 같이 부드럽고 유연해서 무엇을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우리, 과연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어제 본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감동을 계속해서 담아 놓을 것인가? 아니면 실연한 애인의 이름을 저 깊은 곳에 각인하여 담아 놓을 것인가?
우리의 그릇이 오로지 물질에만 몰두하여 돼지저금통과 같게 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이것저것 지난하게 담겨져서 휴지통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도 바울은 “질그릇 안에 보화를 담았다” 말씀하셨다(고후4:7). 다시 사용된 재생지가 숨겨진 말씀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가치 있게 하는 것이다.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야 한다. 그분이 우리 삶의 가치이자 충족이요, 전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