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책임
난국에 처한 한국교회를 성찰할 때마다 그 첫째로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가 거론된다. 이는 근자에 발표된 지난해 11월 22일∼12월 3일까지 실시한 예장 합동 목회자 600명 대상의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하다. 그에 따르면 목회자 98.9%가 ‘한국교회에 혁신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가장 많은 32.8%가 ‘개혁의 첫째 대상이 목회자’라고 했다. 교회적, 사회적으로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목회자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걸 지도자 탓으로만 돌림이 해법의 첩경은 아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에는 성도들의 미성숙과 오류도 작용했다. 거짓 선지자들이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었던(렘 6:13-14) 당대 이스라엘의 형편은 죄악적 사태를 직시케 하는 정론을 외면하고 평안하다는 말만 듣고 싶어 했던 백성들의 안일함도 거들었다. 제 입맛에 맞고 기분 좋은 이야기만 해 주는 지도자를 좋아하는 인본적 신앙 행태는 정상적 신앙과 삶에서 멀어지게 하는 부메랑이다.
한때는 평신도라는 말이 쓰여 ‘성직자’ 혹은 교회 지도자 그룹과는 다른 피교육자 입장에서의 일반 성도를 지칭했다. 이제는 그런 용어가 적절치 않음은 다 인식하고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 모두는 신도이고 성도이며 자기 신앙과 삶에 책임적 존재이다.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나 가정, 교회, 사회에서 책임을 질 성도로 성장, 성숙해 가는 것은 결국 개인들의 몫이다.
한 교회에서 쓰임 받는 ‘일꾼’이라는 개념이 제자도의 중심인 양 오해되기도 하지만 진정한 제자는 성도의 존재론적 가치와 정체성을 인식하고 훈련하는 내적 성숙을 먼저 지향해야 한다. 즉, 어떤 상황,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처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성도로서의 정체성에 흔들림이 없는 신앙인이어야 한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성도의 길잡이는 하나님 자신이지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계산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말미암아 행하신 일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이 아니다. 우리 주님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합당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다.”라고 했다. 선교적 가치가 강조된 현대 교회에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드리고 중요한 일을 해야만 한다는 조급함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것이 성경적 일꾼의 자세(딤후 2:15)이며 성도의 기본임을 알아야 한다. 토레이(R.A. Torrey)도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어떤 것들, 우리의 돈이나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라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진리 위에 서서 일상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의 토대가 중요함을 말한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권고의 첫 순종의 행위는 말씀을 바르게 듣고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Do)에 치우치기 쉽다. 하나님과의 관계, 신자로서의 정체성, 그 존재(Be)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 존재의 본질에서 행동이 나오고 향기가 흘러나온다. 베다니 마르다의 이유 있는 분주함이 굳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지만 말씀을 경청했던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고 주님께 평가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눅 10:38-42).
주님의 관심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근 50년 전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가 뒤늦게 깨달은 것도 그것이다. 그는 ‘제자입니까’라는 책에서 성도의 참된 신앙과 성숙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의 열정적 방법이나 활동 중심이 아닌 하나님과 그 말씀에 통치를 받는 존재론적 성도의 정체성을 제자됨의 근본으로 보았다. 그래서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질서와 지도자의 성경적 권위는 인정돼야 하고 그 안에서 성도들은 순종해야 한다(벧전 5:5). 또한 성도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한다(갈 6:6). 그러나 이는 모든 책임을 목회자에게 지우거나 자신의 신앙과 삶의 오류들에 대해 목회자 핑계를 대라는 뜻은 아니다. 양무리의 본으로 진리를 잘 가르칠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지만, 그것이 그런가 하여 말씀을 상고하고(행 17:11) 이단과 왜곡된 신앙론이나 사상에 현혹되지 않으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참된 경건을 추구할 책임은 성도 본인에게 있다(약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