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를 통해 보게 된 우리의 자화상
남웅기 목사(바로선교회, 본보 논설위원)
보이는 것과 세상 박수에 취했던 빈껍데기 신앙의 참담한 결과를 더 이상 되풀이 말자
입양된 16개월 어린 정인이가 얼마 전 심한 학대에 시달리다가 고통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정인이는 비극적인 삶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는 누구보다 더 큰 메시지를 남겼고, 그 메시지의 실제적인 수신자는 바로 한국교회이기 때문이다.
요 며칠 사이 TV에서 정인이 이야기가 처음 쏟아져 나올 때 필자는 예사롭게 생각했다. 그러한 일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비명에 숨진 아이가 불쌍하다 생각했고, 감당도 못할 일을 맡아 나섰다가 화를 자초한 그의 양부모들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신학교 동기 단톡방에 올라 온 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인이를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지금 온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는 정인이 양부모가 모두 목회자 자녀라는 사실이 그 하나요. 그 부부 모두 기독대학으로 소문난 같은 학교 출신이란 게 그 둘이요, 정인이 양부는 CBS 방송국에 근무하는 직원이란 사실이 그 세 번째 충격이었다. 그 퍼 온 글에는 정인이가 학대 받은 구체적 사례까지 적나라하게 실려 있었다. 언론의 다소 과장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그 글에 의하면 정인이의 양부모는 변명의 여지없는 죄인이었다. 얼마 전 방영된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정인이가 받은 학대는 단순한 정황증거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관계로 입증된 것 같다.
단톡방에 올라 온 그 글은 ‘목사부모에게 교육받고 기독대학에서 공부하고 기독교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자가 악마화 되어 있다는 것이 2021년도 대한민국교회의 현주소’라며,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다.
이 글을 읽은 동기 목회자들은 충격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튿날엔 노회 단톡방에도 같은 글이 올라와 노회원들을 침통하게 만들었다. 충격으로 인해 우두망찰하긴 했지만, 그 때만 해도 필자는 제3자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가까이 지내는 동기 목사님이 정인이 입양과정에 직접 도움을 줬다고 했다. ‘그럴 분이 아닌데……’ 하며 당혹스럽다고 했다. 게다가 노회 소속 아무 목사님은 정인이 양모의 친정아버지인 목회자와 이웃하는 지인관계라 했고, 필자가 아끼는 서울에 사는 후배 목사님은 정인이가 자기교회 영아부 출신이라고 했다. 즉 정인이 가족은 그 교회 성도였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과 성도들이 전전긍긍하는 게 눈에 밟힌다. 전에 없던 일이다. 지금껏 사회에서 일어난 큰 사건들은 모두 나와는 두세 다리 건너서 일어난 제3의 사건이었는데, 이번의 정인이 사건은 바로 내 곁의 지인들의 생활권에서 경험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소름 돋는 깨달음이 왔다. 지금껏 사회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도 이처럼 완벽히 기독교와 밀착된 사건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은 강 건너편에 타오른 불이 아니라 내 집에 붙은 불이었다. 정인이 양부모의 행위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으면 되겠지만, 그것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 끝날 수도 없다. 그 불은 우리가 꺼야 한다.
비명에 죽어간 건 자연인 정인이만이 아니다. 온 몸이 타박상을 입고 갈비뼈가 골절된 채 죽어가는 환자는 곧 한국교회일지 모른다.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시요 그 지체가 성도라면, 지금 짓밟히는 건 곧 주님의 영광이요, 숨 막히는 건 곧 우리의 영적 상태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세상이 기독교회에 대해 전례 없이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때, 정인이 사건마저 전형적인 기독교회의 민낯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세상의 혐오감은 분노의 불길로 치솟을 게 틀림없다.
주님은 지금 신천지를 지렛대로 삼아 한국교회를 구석으로 몰아넣으시고, 우리 믿음의 거품과 거짓과 위선을 여지없이 드러내시는 것 같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항상 엄중해야만 한다. 알곡과 가라지로 나뉘는 갈림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번 사건에서 정인이 양부모의 행위는 한 개인의 그릇된 행위로만 의미를 축소해선 안 된다. 그 안에 한국교회를 정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인이 부모의 행위에 심한 충격은 받았지만 선뜻 돌을 던질 수 없는 건 그래서이다. 정인이 가족 이야기는 생판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자초한 수모는 박해받는 정인이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스스로 교회의 구별됨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은 우리의 행위는 정인이를 학대한 그 양부모의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과 세상 박수에 취했던 빈껍데기 신앙의 참담한 결과를 우리는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