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에세이] 새해, 아침을 열며_신규철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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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을 열며

신규철 장로(송월교회, 시인)

목소리

나의 목소리에는 왜 칼이 들어 있는가
아침이 오면 숲 속에서 참새들이 재잘대고
밤이 오면 별들의 고운 노랫소리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하늘에 울려 퍼지는 줄 알았더니
왜 내 목소리에는 시퍼런 칼이 들어 있는가
눈보라 속에서 언 가슴을 녹이고
불꽃같은 혀의 힘으로 그대를 일으키리라 믿었는데
가슴에 품는 것마다
내 목소리에는 왜 칼이 들어 있는가
사랑이여
나는 이제 내 목소리에 칼이 없기를 바란다
더 이상 내 목소리가
그대 목소리를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담장 너머 벚나무 가지마다 열렸다 닫히는 숨소리
꽃망울 툭툭 터트리며 후두를 지나
오랜 세월 내 안에 갇혔던 말들이
혀와 입술로 부드럽게 풀려지기를 바란다
살아간다는 것은 칼날을 조금씩 뭉개버리는 일
그러다가 와락, 당신을 만나고
외마디 외침으로 칼을 버리는 일

 

새해 아침, 지난해를 돌아보며 시 한 편을 썼다. 지난 한 해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볼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은 역시 ‘말의 실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70을 ‘종심(從心)’의 나이라고 했다. 나도 70을 넘어서니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지만 말에는 아직도 실수가 많다.
어느 모임에서 만든 카톡 방에 한 젊은이가 내 맘에 들지 않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나는 직설적으로 젊은이의 경솔함을 지적했고 그는 또 나에게 ‘보수 꼴통’이라며 막말을 해서 갑론을박하며 잠시 논쟁이 오고간 적이 있었다. 며칠 지나서야 서로 사과를 하며 매듭을 지었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그와 나와의 관계는 전보다 훨씬 소원(疏遠)해진 것이 사실이었다. 
말실수는 타인보다는 지인, 지인 중에서도 친한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친하니까 생각 없이 가볍게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얼마 전 판교에 사는 큰 딸과 전화통화를 하던 중, 나는 딸에게 크게 화를 내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훈계한 적이 있었다. 결혼하여 시댁 어른들과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 나와,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이다. 딸도 당황해하며 참견 말라는 듯 전화를 끊었다. 교회는 한 곳을 정해놓고 다녀야지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인데, 아이들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교회가 중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딸의 생각도 일리가 있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피력했던 것 같다. 손녀가 6학년이나 되었고, 먼 곳에서 그 교회에 14년이나 다닌 것도 대단한 일인데 말이다.
종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말을 절제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분노를 품은 말은 그 말 속에 칼이 들어있어서 상대방을 찌르는 비수가 되기 십상이다. 말하기 전에 우리는 주의 깊게 생각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 귀 기울여 듣는 데 익숙해야 한다. 말의 충동에 놀아나지 않고 안으로 곰곰이 생각하게 되면, 그 안에 지혜와 평안이 있음을 그때마다 알아차리게 된다.
말을 아끼려면 될 수 있는 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제삼자에 대해 충고를 늘어놓는 것은 일종의 악덕이다. 한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시 주어 담을 수가 없다. 말은 해야 할 때와 장소가 있으며 해서는 안 될 때와 장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을 해야지 그러지 못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된다. 말에 값이 드는 것도 아니며 좋은 말을 해서 손해되는 일도 없다. 그러기에 무슨 말을 하든지 겸손하며 듣기 좋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프랑스의 휴양도시 니스의 한 카페에는 이런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한다.
“커피!”라고 반말로 주문하는 손님에게는 1만원을. “커피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손님에게는 6천원을.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손님에게는 2천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