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베들레헴 : 그리스도와 목자_고양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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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고고학으로 조명하는 성경-단에서 브엘세바까지(1)

베들레헴 : 그리스도와 목자

고양주 목사(수원선교교회)

 

양의 우리와 문지기 : 마을 내부에 있던 (공동) 양우리와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

양의 문 : 마을 밖에 있던 양의 우리와 문 역할을 하던 목자(담벼락 사이로 열린 공간이 목자가 누워서 문을 대신 하던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4킬로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이스라엘 중부 산지의 능선을 연결하는, 소위 “족장들의 도로”의 현대 버전인 60번 국도를 따라 헤브론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이-팔 국경 역할을 하는 검문소를 지나 이곳에 도달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속하여 있으나 관광객 출입에는 큰 지장이 없는 편이며, 나사렛과 더불어 가장 많은 아랍-기독교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부터 베들레헴은 성경과 관련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이다. 야곱은 아내 라헬을 베들레헴 근처 에브랏 길에 매장하였다(창 48장). 룻과 보아스는 베들레헴 들판에서 아름답고도 역사적인 만남을 이루었다(룻 2장). 다윗이 유소년기를 보내고,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세워진 곳도 이곳 베들레헴이었다(삼상 16장).
베이트-레헴(house of bread)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베들레헴은 농경지에 인접한 마을이지만, 목축 또한 매우 성행하던 곳이었다. 그리스도 탄생 이야기에 목자들이 등장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고고학 칼럼 시리즈의 첫번째 글을 특별히 성탄에 즈음하여 시작하면서, 베들레헴과 얽힌 그리스도와 목자의 이미지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1. 성탄의 첫 증인들 : 목자 vs. 동방 박사

그리스도의 탄생 기사와 관련하여 누가와 마태는 전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성탄의 첫 증인으로 소개한다. 전자는 베들레헴 부근의 목자들을 후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언급한다. 아마도 평민과 엘리트,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대조적 상징성 때문에 이 두 부류가 첫 증인으로 언급되었을 것이지만, 이들이 아기 예수께 나아온 사건 사이에는 분명한 시차가 존재한다.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산모의 정결례(40일) 및 장남의 정결례(33일) 등의 목적으로 예수의 가족이 예루살렘을 찾았던 이후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주 탄생의 복음을 처음으로 듣고 그리스도께 경배한 증인들은 목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목자와 그리스도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그리스도 탄생의 첫 소식을 선포한 곳은 베들레헴에 인접한 벧-사훌(Beit-Sachoul) 들판이었다. 이곳은 다윗의 증조모였던 룻이 보아스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던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비록 이런 연결이 전승에 기초한 것이기는 하나 목축에 적합한 낮은 구릉지와 그 사이에 놓인 농경지가 만들어내는 지형적 특징은 충분한 신빙성을 제공한다. 아마 다윗 역시 어린 시절 이 부근에서 양떼를 돌보았을 것이다. 특별히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이 다른 곳이 아닌 이곳, 보아스와 룻, 그리고 다윗의 삶의 터전이었던 목자들의 들판에서, 목자들에게 선포된 것이 이와 관련 있으리라는 해석도 전혀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당시 목자들은 사회에서 매우 무시 받던 계층이었다. 서로의 양떼를 훔쳐오는 일도 있었고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손 씻는 규례와 같이 율법에 명시된 정결례를 제대로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종종 자신을 선한 목자에 비유하셨다. 구약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목자로 묘사되었으며, 따라서 메시아 역시 목자의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지를 묻는 헤롯에게 종교지도자들이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마 2:6) 대답한 부분에서도 이러한 사고를 엿볼 수 있다.
한 편, 베들레헴 지역의 양이 특별한 양이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조석으로 흠없는 양을 희생제물로 바쳐야 했는데, 이런 양을 원활히 공급받기 위해 성전 당국자들은 자체적으로 소유한 양 떼를 사육하는 곳이 베들레헴 근교였다는 것이다. 성전에 바쳐질 흠 없는 양들을 돌보던 목자들이 세상 죄를 지고가는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첫 증인이요 경배자로 서 있었다는 사실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3.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 양의 문

목자들이 밤에 들판에서 성탄의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은 시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겨울보다는 방목지에서의 노숙이 가능한 따뜻한 계절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겨울철의 경우 양떼는 마을 중앙에 있는 목재로 만든 공동 양우리에서 함께 밤을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관리는 문지기가 했으며 아침이 되면 목자들은 이곳으로 나아와 문지기의 허락을 받고 자기 양들을 불러냈다. 섞여 있던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에게 나아왔다.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목자’,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과 같은 표현들은 이런 상황을 배경에 두고 있다.
반면 노숙이 가능한 따뜻한 계절엔 야외의 석회암 동굴을 막아서 만든 야외 우리에서 야영을 했다. 이 동굴 우리의 경우, 돌담을 길게 쌓은 뒤 한쪽을 터 놓은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출입구의 역할을 하는 이 공간엔 문짝 대신 목자가 누워서 잠을 잠으로서 출입을 통제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을 빗댄 표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