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회의 용어와 회칙에 대한 의견 _ 정두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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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회의 용어와 회칙에 대한 의견

 

<정두섭 목사 | 소망교회>

 

“부적합한 용어들을 바로 잡아 표준화,
현대화를 이루며 꾸준히 보급해 나가기를”

“교단의 정체성이 담긴 총회 헌법과 노회 규칙을
법조문 표준에 알맞고, 쉽고 품위 있도록”

 

존 듀이는 문화는 언어의 조건이며, 동시에 그 산물이라고 했다. 언어가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가 언어를 만들어낸다. 바른 말은 건강한 문화를 창조하지만, 잘못된 말은 잘못된 문화를 낳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훌륭한 문화를 이룬 민족에게는 언제나 잘 다듬어진 언어문화가 있었다. 우리 민족이 고유한 문자와 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허락하신 아주 특별한 문화적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관, 나아가 교회 문화와 기독교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글 성경이 우리말 보급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교회는 언어문화 창달에서도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언어문화는 잘못된 신앙문화를 낳고 복음 전파에도 지장을 준다. 사람의 인격처럼, 언어문화도 다듬어지고 의식화되고 가꾸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메시지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쉽고도 정확한 어휘와 예화를 통해 설명해 주셨다. 그동안 공동새번역, 표준새번역, 새번역, 개역개정판 성경 발간 등 교회 용어의 현대화를 위한 여러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100여 년 전에 쓰이던 죽은 말들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기 때문에 노회나 총회에서 현대적인 용어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회와 노회와 총회 등에서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 말,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말, 권위주의적인 말, 시대에 맞지 않는 말, 통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말 등이 무분별하고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목사후보생 때 노회에 처음 참석하면서 받은 충격을 지금도 기억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처음 듣는 생경한 용어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회에 참석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때론 고통을 느낀다.

바람직한 것은 몇몇 교단의 총회와 여러 교단의 노회에서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의 용어와 회칙에 대한 현대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교단의 총회와 노회에서도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꾸어야 할 용어들이 있다고 보고, 또한 가능하면 총회와 노회에서 최소한의 범위에서 기본적인 기준을 제시하여 공유하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1. 회의 용어에 대한 의견

 

(1) 고퇴(叩槌)

개회·산회 선포 시, 정회·속개 선포 시, 의사일정 상정 시, 질의·토론 종결 선포 시, 표결 선포 시, 의결내용 선포 시 등 의(회)장이 회의의 주요 절차를 진행하면서 두드리는 도구를 전통적으로 장로교에서는 ‘고퇴’라고 한다. ‘고퇴’란 ‘두드릴 고’(叩)자와 ‘나무마치 퇴’(槌)자의 합성어이다. 이 용어는 국가나 사회 기관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명칭이며, 한국교회 가운데서도 장로교회에서만 제한적으로 쓰고 있다.

‘고퇴’라는 용어의 기원은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노회 창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절차위원장이 십자가와 태극 문양 등으로 장식한 망치를 마삼열 회장에게 전하면서 “이 물건이 영원토록 대한예수교장로회를 상징하는 마치(망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치(망치)’라는 단어가 ‘속되다’는 의견이 제기돼 한자를 찾아서 ‘고퇴’라는 이름으로 결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퇴’는 그 같은 연유에서 사용한 특수 용어일 뿐, 일반적으로는 거의 모두 ‘의사봉(議事棒)’이라 함으로 현대 통용하는 용어로 바꾸어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자벽(自辟)

회의에서 회장이 선거위원이나 특별위원 등을 지명할 때 ‘자벽’이라고 해왔다. 자벽(自辟)이란, 장관이 자기 뜻대로 관원을 추천하여 벼슬을 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벽 행위는 각 관아의 우두머리가 아무런 기준도 없이 자기 사람들을 특정한 자리에 대거 기용함으로써 심각한 폐단을 가져오게 되었다. 따라서 이 용어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의미나 정서가 결코 긍정적일 수 없었다.

이런 권위적이며, 부정적이고, 구시대적인 용어를 지양하고 ‘지명’, 또는 ‘임명’으로 고쳐 쓰는 것이 좋겠다.

 

(3) 흠석사찰

흠석(欠席)은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음’이라는 뜻이며, 사찰(査察)은 ‘조사하여 살피다’라는 뜻이다. 흠석사찰위원은 회장에 의해 지명되어 흠석사찰을 맡은 이를 말하며, 회의 중에 자리를 이탈하거나 조퇴하는 회원이 있는지를 살펴서 회의의 진행을 원활하게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개신교 초기부터 사용되던 옛말이어서 ‘질서위원’, 또는 ‘관리위원’으로 순화하여 쓰는 것을 권장한다.

 

(4) 회(回)와 차(次)

노회에서 회(回)와 차(次)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회(回)’는 일 년 정도의 일정한 기간을 주기로 단순히 반복하는 것에 대한 횟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그러나 몇 번의 성과가 누적되어 목표를 달성 또는 과제를 완성하거나 점진적이고 발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될 때는 차(次)를 쓴다. ‘회’는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어 끝이 없고, ‘차’는 누적될수록 목표에 근접하며 정해진 끝이 있다. 한 회기 중에도 회무 결정을 위해 회의는 몇 번이고 그 ‘차수’를 거듭하면서 ‘몇 차 회의’ 등으로 할 수 있다.

 

(5) 증경(曾經)

총회에서 교단 대표로 뽑힌 사람을 ‘총회장’이라 부르고, 이미 총회장을 지낸 사람을 ‘증경 총회장’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흔히 본다.

증(曾)은 ‘일찍이’라는 뜻이고, 경(經)은 ‘지내다’라는 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찍이 지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증경’이란 말은 국어사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단어이며, 일반 사회에서는 거의 사용하지도 않으며, 이해하지도 못하는 말이다. ‘증경(曾經)’이란 말은 고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었던 노조린이 지은 시 중에 ‘증경학무도방년(曾經學舞度芳年)’이라는 표현에서 발견된다고 하는데, ‘일찍이 춤 배우느라고 젊은 시절을 보내었다네’라는 뜻으로 그다지 심오한 뜻을 갖고 있지 않다.

한편 한자어를 전통적으로 존중하며, 유교적 권위를 숭상하는 선비들이 이런 희귀한 용어를 우리나라에 들여왔고, 한국 교회도 교단을 위하여 일한 경력이 있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시하고자 이 단어를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장로회 총회록에는 총회장을 역임한 분의 명칭을 처음에는 ‘젼 회쟝’(뎨1회 총회록 1쪽, 뎨2회 총회록 1쪽)으로 사용하였는데, ‘증왕(曾往)회쟝’(뎨6회 총회록 78쪽)이란 명칭으로 잠시 사용하다가 1910년 뎨4회 독로회 때부터는 ‘증경회장’으로 부르다가 1921년 제10회 총회 시에 ‘젼 회쟝의 젼 쟈는 도말하고 대(代)에 증경(曾經)이라 개정함’(뎨10회 총회록 52쪽)으로 정식 가결하였다고 한다.

‘증경’이란 표현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시대가 달라졌다. 말이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천이 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그리고 조선 시대에 일부에서, 그리고 110년 전에 사용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죽은 언어이다. 권위주의적인 이미지가 있다. 굳이 증경이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증경 회장 뿐 아니라 증경 총무, 증경 서기, 증경 회계 등 이미 직분을 수행했던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불러야 할 것이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인자’라고 하셨으며, 섬기는 삶을 사셨다. 그리고 주님의 공교회의 모든 직분은 섬기는 직이다. 그러므로 ‘증경’을 ‘전’ 또는 ‘전임’으로 바꾸고, 바로 앞에 역임한 분에게는 ‘직전’이라고 바꾸어 사용하기를 기대한다.

일반 사회에서는 대통령도 전 대통령이라 부르고, 기업에서 전 회장, 전 사장 이렇게 부른다. 그리고 이미 여러 교단 총회나 노회에서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일어나고 있다. ‘개혁’을 강조하는 합신 총회에서 시대와 품격에 맞지 않는 용어들을 단호히 고쳐 새롭게 사용함으로써 한국 교회 앞에 참신한 효시가 되기를 소망한다.

 

  1. 회칙에 대한 의견

총회의 헌법이나 노회의 규칙은 교단의 신학과 치리와 비전 등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므로 그 의미가 대단히 중대하다.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 노회에 참석하면서 받은 또 하나의 충격은 노회 규칙이었다. 그것은 총회 헌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용어들, 그리고 오래 전에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표기들이 있었다. 회칙 문항이 통상 법조문 기술(記述) 원칙과 다른 곳들이 있었다. 그리고 회칙이나 규칙을 개정하는 과정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법을 만드는 곳은 국회이며, 이를 집행하는 곳이 정부와 사법부이고, 이 법조문을 작성하는 곳이 법제처이다. 법제처의 업무 중의 하나는 정부 각 부처와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위헌적인 요소나 다른 법령과의 모순된 내용을 수정하거나 법령의 체계 및 자구 등 법령의 표현 형식을 심사한다. 일반적·추상적인 법령의 의미를 명확히 제시하는 법령해석업무와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을 불편하게 하는 불합리한 법령을 정비하고, 국민이 어렵다고 느끼는 법령을 쉽게 고치는 법령정비사업을 관장한다. 법제처에서는 수년 전부터 어려운 용어들을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변경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북노회에서는 2013년에 노회의 규칙 전체의 구성과 틀을 바꿔 새롭게 노회 ‘규칙’과 ‘규칙 시행세칙’으로 나누어 변경하였다. 법제처에서 발표한 법조문 표기 기준에 맞추고, 가능한 쉬운 용어로 고쳤으며, 규칙 개정을 노회 즉석에서 수정하거나 작성하는 것을 지양하였다.

이제 성숙한 교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개혁을 추구하는 우리 총회와 총회에 속한 노회와 교회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용어들을 바로 잡고, 용어의 표준화와 현대화를 이루며 꾸준히 보급해나가기를 소망한다. 또한 교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총회 헌법과 노회 규칙을 법조문 표준에 알맞고,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품위 있게 가다듬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