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단비를| 고 이신우 선교사와 그 사역을 기리며 _ 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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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땅에 단비를

 

고 이신우 선교사와 그 사역을 기리며

 

고 이신우 선교사와 김영자 사모
  1. 이신우 선교사 이력

♦1945년 12월 29일 이상업 목사의 6남매 중 막내로 경북 김천 출생
♦1965년 대구 계성 중,고등학교 졸업
♦1971년 경북의대 졸업
♦1972년 김영자씨와 결혼하여 현2녀 1남을 두고 5녀 1남의 손을 둠
♦1976년 경북의대 부속병원서 마취과 수련, 동년 마취과 전문의 자격 받음
♦1979년 대구 국군통합병원 근무 및 전역
♦1982년 합동신학교 졸업
♦신학교 졸업 후 강남병원, 서안복음병원, 부천제일병원 광명성애병원 마취과 근무
♦1999년 ~ 2009년 하늘 마취통증의학과 개원
♦2008년 10월 23일한국 독립교회 선교단체 연합회에서 목사 안수
♦2010년 1월 ~ 2016년 12월 미안마 선교(고양시 소재의 의료선교회 파송)
♦2017년 1월 ~ 2019년 6월 인도네시아 선교
♦2020년 8월 17일 소천

 

  1. 이신우 선교사의 사역

[1] 미얀마 선교 (2010.01 ~ 2016.12)

  1. 개인 사역 (모비 따야공 지역)

(1) 병원 사역

– 따아공 낙후지역 2013년 개원
– 인술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전문인 선교사역

(2) 요양원 사역: 미얀마 현지 무의탁 노인들의 생존의 안정과 복음전도를 위한 사역

(3) 유치원 사역: 교육적으로도 열악한 따아공지역의 어린이 복음사역

(4) 선교사 및 현지 사역자의 치료 사역 : 미얀마에서 사역중인 선교사와 현지 사역자의 의료서비스 제공

 

  1. 연합사역(로뎀 연합선교회_선교사 7가정으로 구성)

(1) 교회사역: 목회자와 평신도 선교사가 참여하는 미얀마 양곤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예배와 전도사역

(2) 기숙사 사역

버마족 및 미전도 종족 중심으로 선발. 학구열이 높은 미얀마에서 지방학생을 기숙사에 유치하여 학습을 지원. 신앙 훈련을 병행해 실시함으로 향후 미얀마 지도층의 복음화의 현지선교자원의 동력으로 키움

(3) 한글학교 사역

미얀마 현지인의 한국유학, 한국취업 및 미얀마 내 한국기업 취업을 돕기 위해 한글을 교육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

(4) 영어교실사역: 영어를 교육하면서 복음을 소개하는 사역

(5) 컴퓨터교실사역: 컴퓨터를 교육하면서 복음을 소개하는 사역

 

[2] 인도네시아 선교 (2017.01 ~ 2019.06)

(1) 한글학교 사역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에게 한글을 교육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 암바라 교회 및 굿뉴스 교회에서 현지인 고등학생, 대학생 대상

(2) 방과 후 영어교실: 방과 후 학생들의 영어를 교육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

(3) 현지인 신학생 위탁 교육: 현지인 사역자 양성

(4) Bible Time(매일 성경) 교회에 보급: 현지 교회에 Bible Time(매일 성경)을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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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고 이신우 선교사를 추모하며

<김수환 목사 | 새사람교회>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신우 선교사님!

아무도 보아 주는 이 없어도 잘 피었다 지는, 패랭이나 달개비꽃과 같은 깊은 산속의 야생화처럼, 당신은 소리 없이 왔다가 또 소리 없이 가시는군요.

현대는 교회마저도 적당히 자신을 홍보하고 이미지화 하는 게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당신은 그것마저도 개의치 않으시고, 오직 은밀히 보시는 그분만 관심하기로 작정하셨나 봅니다.

천국에 가면 3번 놀란다지요? 꼭 올 것 같은 사람이 안 와서 놀라고, 전혀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와서 놀라고, 마지막 자기 자신이 그곳에 와 있어서 놀란답니다. 오늘은 조용했던 천국이 다시 한 번 놀라는 일이 생기겠군요.

그동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깊은 산속 야생화 같은 당신의 존재가 비로소 드러나는 날이기에 말입니다.

세상에서도 화려하고, 또 천국에서도 화려한 일은 단지 우리의 욕심일 뿐, 둘 모두의 공유는 불가능한 허상이겠지요.

신학교 졸업 후, 목회하기를 원했지만, 좋은 이력에도 불구하고 고음을 내실 때 갈라지는 이상한 음성 때문에 번번이 교역자 초빙에 실패하고, 거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목회에 대한 꿈을 접게 되었다지요.

“목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나는 이제 의술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리라” 생각하고 병원을 개업하고 열심히 환자들을 치료하셨지요.

어릴 적 개척교회를 하셨던 아버지를 추억하며, 특히 어려운 목회자들, 선교사들을 실비로, 혹은 무료로 치료해드리고, 재정적으로 열심히 후원도 하셨지요. 신학교 동기 중에 선교사로 계시는 몇몇 가정들을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열심히 도와 주셨지요.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께서, 목회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빚을 갚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노라 최선을 다해보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동기들은 선교하고, 개척교회 하느라고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편안하게 살고 있구나”하는 하나님과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과 송구스러움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결국 잘 나가는 병원을 다른 분에게 인수하고, 65세가 되던 2010년경, 선교사로 직접 헌신하게 되었지요.

미얀마에서 몇 년 동안 사역을 하시다가 70세가 되어 인도네시아 선교에 대한 비젼을 갖고 선교지를 옮겨 헌신하던 중, 발병되셨습니다.

아마도 열악한 선교 현지의 환경, 불규칙하고 부실한 식사, 무리한 사역들이 발병의 원인이 되셨나봅니다. 물론 인도네시아 선교의 꿈을 다 이루지 못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그 중심을 받으셨으리라 확신합니다.

당신의 후원으로 공부하는 3명의 신학생들과 매월 「매일성경읽기(Blble Time)」를 받아보는 200명의 깔리만딴 섬의 어린이들도 주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선교사님! 안심하시고 주님 품에서 안식을 누리십시오.

당신은 우수한 성적으로 우리 합신을 졸업하셨고(2회), 재학 중에는 반장님으로 동기들과 교수님을 열심히 도우셨지요. 그럼에도 타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몇몇 동기들이 이를 알고 만류를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혹시라도 당신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기대하고 있는 우리 합신 교단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훼손될까 봐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뒤늦게 안수받는 것이 뭐 그리 교단에 누가 되는 일이었을까요?…… 역시 박윤선 박사님의 1세대 제자답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합신이, 그런 합신으로 계속 남아 있도록 천국에서도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으시다는 말씀(롬11:29)을 기억합니다. 소명은 물론 우리를 하늘나라로 부르심에도 해당되는 말씀으로 믿기에 인간적으로는 너무 슬프지만, 기꺼이 찬양하고 경배드립니다. 남은 우리 동기들도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던 당신의 뒤를 따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살다가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날 날을 기약합니다. 그때까지 편히 쉬세요.

2020.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