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믿음인가, 죽은 믿음인가?
신자에게 있어 믿음과 회개는 늘 함께 한다. 이것들은 중생, 곧 거듭남에 따르는 새 생명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난 새 생명은 필연적으로 참된 믿음과 진정한 회개를 수반한다. 이것은 거룩한 새 생명이 지니는 당연한 특징이다. 마치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울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지닌 신자라면 성 삼위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과 죄에 대한 자각 그리고 돌이킴과 의에 대한 순종으로 자연스레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생명 없이 지식으로만 믿는다 하는 역사적 믿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의 모습이다.
이처럼 참된 믿음과 진정한 회개는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에 역사적인 죽은 믿음과 일반적인 뉘우침과 그 양상부터 다르다. 이런 점에서 개혁자들은 이 믿음과 회개를 가리켜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라고 했다.
잘 아는 것처럼 거듭남, 곧 중생이라는 이 ‘생명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 선행(先行)되었기에 그에 따른 생명의 자각과 반응은 필연적으로 뒤따라오게 된다. 따라서 믿는다고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삶의 고백이 없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역사적 지식에 머무르지 않는, 전 인격을 동반한 실천적 믿음만이 참된 믿음이며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지속적인 회개가 진정한 회개이다. 그런데 전적인 신뢰와 회개의 역사는 결코 일시적이거나 단회적일 수 없다.
따라서 신자에게 믿음과 행함은 늘 함께 가야한다. 죄로 죽은 무력한 사람에게서 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죽은 영혼을 그 자체를 살리신 새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그러하다.
이것을 가리켜 진정한 회개는 참된 믿음을 전제하며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빙크는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켰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뉘우침이요, 그로 인하여 점점 더 그런 죄를 미워하고 거기서 피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새 사람이 된 신자라면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선한 행실로 사는 일에 관한 욕망과 사랑을 갖는 것이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을 양산하고 있는 텅 빈 조개껍질 같은 한국교회가 깊이 돌아보아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