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박윤선을 말한다 <마지막 회>| 위대한 개혁주의자이신 아버지_박성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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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혁주의자이신 아버지

< 박성은 박사 >

 

아버지, 당신이 하나님 나라로 가시기 며칠 전 “저 주석 이제 다 불태워도 한이 없다”고 하셨지요. 그러시곤, “사람들이 나더러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 내 마음에 그런 말을 속으로 즐기곤 했음을 회개한다!”고 말씀하시곤 계속 두 주간 회개의 기도를 하시다가 영광의 주님께로 가셨죠.

아버지 당신이 주님 앞에 서시기 이틀 전 “애야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러는데 주님이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한 구절이 마가복음 어디에 있는지 찾아서 읽어주렴” 하신 것 기억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곤 합니다.

그러시곤, 계속 긴 한숨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계속 되뇌이시다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시고 26년 전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 오늘 이다지도 당신이 뵙고 싶음은 웬일입니까?

 

가슴 메이는 것 두 가지

 

아버지에 대해서 두 가지가 가슴 깊이 메입니다.

하나는 아버지 당신은 항상 우리에게 위로 받기를 원하셨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 못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아버지 당신은 자식들 때문에 너무나 많은 마음고생을 하고 사셨지요. 정말 큰 형님들을 비롯해서 이 글을 쓰는 저까지도 당신에게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기도의 기회로 삼아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고들 말하지만, 지금 제가 자식을 키워보니 아버지의 멍든 가슴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한 가지는 아버님이 유학 차 화란에 가 계시는 동안, 전 어머님이 불의의 차 사고로 급사하셨다는 것이며, 동시에 힘을 다해 한국교회를 위해 사역하시다 50에 가까운 나이에 겨우 시도한 박사 학위 공부를 어쩔 수 없이 그 기회조차 놓치셨다는 사실입니다. 전 어머님을 잃은 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손실이며 피멍이 드는 일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거기에 학위 공부까지 날아가 버린 일은 정말 당신에게 크나 큰 손실이었음을 가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저의 친 어머니(이화주 님) 말씀에, 당신이 그 당시 화란 자유대학에서 보내온 학위 과정 거절 편지를 받으시곤 “땅에 콱 주저앉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더군요. 학자에게 학위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물론 당신은 학위 없이도 많은 일을 하셨지만, 그것 때문에 또한 많은 불이익도 당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래도 묵묵히 참고 남은 삶의 사역을 훌륭히 마치셨습니다.

전 너무너무 잘 압니다. 우리 아버지 정암은 그 누구와 비교해도 탁월한 학자라는 것 말입니다. 당신의 타고난 어학의 재능과 당신의 초인적인 집중력과 노력은 한국교회의 어려운 과도기를 위해 이룬 놀라운 금자탑이었고, 최고 학위 몇 개를 받아도 부족하다고 자부합니다. 아버지 당신은 정말 당대 몇 안 되는 놀라운 학자이셨습니다. 그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여 학업을 이루시고 한국교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봉사를 하신 위대한 학자이십니다. 누가 뭐래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가슴 메이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자식에 의해 당신의 소천 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과거 무덤에서 다시 파내서 화형에 처해졌던 위클리프처럼, 온 천하가 보도록 입으로 형언할 수 없는 말로써 당신을 또 다시 가슴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수도 없이 혼자 통곡했습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아버지를 지켜 드리지 못한 제 불찰을 용서하십시오.

아버님의 말씀에 가장 큰 효도는 형제들끼리 화합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죠? 그래서 저희들도 조금은 노력했지만 그게 미치지도 못할 만큼 아주 미미했나 봅니다. 아버지를 사랑했기에 누님들이나 형님들을 마음속으로라도 사랑하려 노력했고 특히 돌아가신 세 형님들과는 아주 좋은 관계로 서로를 품었습니다.

당신께서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셨던 형님들은 결국 다 회심하고 주님 앞에서 해후하셨겠지요. 그래서 땅에서 함께 지냈던 이야기를 들으셨을 줄 압니다. 그런데도 저희들이 누님들은 더 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제 잘못이고 제 불찰입니다.

 

아버지의 교훈대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교훈대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특별히 이복형님과 누님들의 자녀(제 조카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많은 염려와 기도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혜란 누님은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네 자녀들에 대해서 ‘난 염려 안 해! 하나님이 언젠가 알아서 해 주실 거야’라고 믿고 기도하시겠고 저 또한 그리 생각하고서 기도하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형님들과 큰 누님의 자녀들도 제 기도와 노력의 대상입니다. 미미한 노력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모두 제 부족한 기도에서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항상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천진난만한 아버지의 신앙을 저는 본받을 겁니다. 좀 욕을 먹어도 아버지의 개혁주의 신앙 체계가 저에게는 가장 귀한 모델이며, 누가 뭐라 해도, 아버지가 해석하신 복음은 다른 모든 신학의 주의 주장들보다도 제 중심에 와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의 온 기독교계가 들썩이고 있는 전대미문의 출판물과 그 안에 기록된 결단코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에 대해서는 너무 괴롭고, 저것이 한국교회를 또 한 번 심하게 잘못되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서 하루하루 견디기 어렵습니다만, 그것으로 인해서 발생한 아버지 당신에 관한 오해는 더 이상 바로 잡거나 제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그저 침묵정진과 기도일관을 목표로 삼겠습니다. “난 기도할 뿐이라!”라는 시편 109편 4절 말씀을 자주 인용하시며 다른 사람에게 악한 말을 결코 하지 말라고 하셨던 아버지가 더 생각나는 시절입니다.

보고 싶은 나의 아버지, 이제 모든 사명 다 끝내시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교제하는 그 놀라운 환희와 행복으로, 아니 하나님에게 집중되어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젠 아랑곳없으시겠지요. 또한 하나님이 다 처리하실 것을 믿고 평안 가운데 계시겠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난 괜찮아!” 하시며, “성은아 너무 걱정 말아라. 주님이 계시니 알아서 처리하지 않겠니? 혜란을 위해 기도하길 바란다”라고 하시는 것 같고 당신의 쓰다듬으시는 따뜻하고 굵은 손가락이 느껴집니다. 당신이 주문하신 대로 잠깐 사는 세상을 염려와 분노와 고뇌로 신앙생활을 망치지 않으렵니다. 기도하고 침묵하고 그리고 또한 정진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은 제가 걸어가야 할 구체화된 이정표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단순하고 순진했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신앙의 챔피언이고 아버지의 신앙은 제가 걸어가야 할 구체화된 이정표이며, 아버지의 성경 무오설은 제가 피로써 지켜야 할 신앙의 지표입니다. 항상 말씀하시길, 먼저 성경은 오류가 결코 없다고 전제를 세우고 성경 편에 서서 연구하라고 하셨죠. 귀에 생생합니다.

사랑하는 착하신 아버지! 아버지는 위대한 개혁주의자이십니다. 아버지를 참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저의 자랑이십니다. 조금 후에 영광의 나라에서 아버지를 부둥켜 얼싸안고 기뻐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아버지, 당신의 유산(legacy)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서 참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아버지 당신은 진정한 영웅이시며 자랑입니다.

신구약 성경주석을 완수하셔서 열악한 과도기 한국교회의 강단을 부요하게 하셨으며, 성경 무오설을 생명같이 여기시며 한국에 정통신학을 파수하셨으며, 기도의 모범과 영성으로 보수 신학을 기름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양신학교 강사로 시작해서 만주 봉천신학원과 그 후 해방을 맞아 고신과 총신과 합신에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진정한 개혁주의의 중심에 서는 길을 보이신 것과, 당신이 주신 인격적 감화와 개혁주의적 영성은 주님 오실 날까지 이 땅에 뿌리를 내릴 것을 바라보며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퇴락을 미리 염려하셔서 은퇴하신 후 십여 년 동안 팔십 노구가 다 허물어져 갈 때까지 고민하시고 흘리신 피와 땀은 우리 모두에게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영적 리더의 귀감으로 남을 것을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버지 정암 박윤선 목사님! 전 당신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주님 다음으론 그 누구보다 다시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아버지로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