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이 있는 신앙강좌| 순종에 따르는 고난_이복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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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에 따르는 고난

< 이복우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신학 교수>

 

하나님은 그들이 고난을 통하여 그들의 죄악 된 본성을 직시하고 그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완악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똑똑히 보기를 원하셨다

 

 

출애굽기 17장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1-7절은 르비딤에서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다툰 사건이고, 8-16절은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와서 싸운 사건이다.

전자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난 다툼인 반면에 후자는 이스라엘 외부에서 온 적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모세는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동일하게 하나님의 지팡이를 사용했다(5, 9). 필자는 1-7절을 중심으로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순종에 따르는 고난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애굽에서 나왔다. 그런데 나와 봤더니 평탄한 길이 아니라 사람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다. 절망이다.

또한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수르 광야로 들어갔지만 물을 얻지 못했다(출 15:22). 게다가 이스라엘이 신 광야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양식이 없다(출 16:1-3). 그래서 백성들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라며 원망했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났고,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그곳에 마실 물이 없었다(출 17:1).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다(출 17:8이하, 신 25:17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마음대로, 임의로 이동한 것이 분명 아니다. 그들은 오직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움직였다. 그래서 민수기 33:2에서는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진행한 것을 기록했다”고 말씀한다.

하지만 이렇게 순종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엄청난 고난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다가 죽음과 같은 고난을 당한 것이다. 말씀에 순종했더니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 닥친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고난을 당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다는 데 있다. 만일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그들이 여전히 ‘애굽의 종’이라는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면 광야에서 양식과 물이 없어 고생하는 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은 그들이 고난을 당할 때마다 습관처럼 반복하는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느냐”(출 14:11-12; 16:2-3; 17:3)는 원망에서 잘 드러난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애굽의 종이었던 그들이 하나님의 경이로운 부르심을 받고 애굽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에 참여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고난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증하는 표지였다.

 

  1. 고난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

 

그것은 한 마디로 ‘원망’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자신들의 기대와 어긋났을 때 계속해서 원망했다(출 15:24; 16:2, 7×2회, 8×2회, 9, 12; 17:3). 게다가 이들의 원망은 그 대상과 정도에서 부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마라에서 물이 없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했지만(출 15:24) 신 광야에서 양식이 없을 때에는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출 16:2). 또한 이들은 모세와 다투고(출 17:2, 7), 모세를 원망하고(출 17:3), 결국에는 모세를 돌로 칠 지경에 이르렀다(출 17:4).

그들은 폭도로 변하기 일보직전에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의 대상은 확대되고 그 정도는 점점 더 강해졌으며 그 방법도 과격해졌다. 그런데 모세를 향한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은 곧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었다.

출애굽기 16:2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이것을 출애굽기 16:7, 8은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고 말씀한다. 나아가서 출애굽기 17:2, 7에서는 이 원망이 곧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신 6:16 참조).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민수기 21:5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라며 원망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 백성을 물게 하셨고 죽은 자가 많았다.

이 사건을 두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9에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라고 말씀한다. 이처럼 모세를 원망한 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었다(시 78:18, 41, 56; 시 95:9; 106:14 참조).

그러므로 신자는 신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된 표지로 알아 원망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며 믿음으로 인내해야 옳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의 근원

 

출애굽기 15:24은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라고 기록하고 있고, 출애굽기 16:2, 3에서는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그리고 출애굽기7:3을 보면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고 말씀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원망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원망의 근원이 그들이 당한 고난에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에게 먹고 마실 것이 없기 때문에 원망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우겨대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원망의 근원이 그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밖에 있다는 강력한 항변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그들의 착각일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필요가 다 채워졌을 때에도 원망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명기 8:4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한다. 느헤미야 9:21에서도 “40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시 78:19)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그들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해서 범죄했고 원망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다(시 78:17).

이에 대하여 시편 78:22은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로다”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의 근원은 그들의 환경이나 그들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죄를 뿜어내는 부패한 본성을 가진 멈추지 않는 악의 공장이었다.

 

마치는 말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고난을 당하게 하신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그들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그들의 죄성을 들춰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고난을 통하여 그들의 죄악 된 본성을 직시하고 그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완악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똑똑히 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며 얼마나 불순종하며 얼마나 빨리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며 죄악이 그들 속에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고난을 통해 바로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신자는 원망이 일어날 때 자신의 죄인 됨을 두려움으로 돌아보고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부르심과 거룩한 신분과 기업의 영광을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