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합신 21회 친구들의 ‘터키 기독교 유적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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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동기 여행기

 

합신 21회 친구들의 “터키 기독교 유적 답사기”

 

기독교 유적지를 함께 여행하며

신앙의 재충전과 더불어 확인했던 동역자들의 사랑

 

 

사탄의 위가 있는 버가모교회
콘야의 메블라나 박물관
로마 황제의 권위를 보여 주는 에베소교회

 

<답사기>

 

“우리 함께 가는 길”

 

SAMSUNG CSC

이재선 사모 | 일산평강교회

 

모교를 졸업하고 19년 만에 동기들이 뭉쳤다. 각자의 사역이 바쁘고, 사역지도 전국에 흩어져 있다 보니 동기모임을 해도 얼굴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팍팍한 현실을 깨고 무려 9박 10일(2019. 10. 1~10)의 시간을 내서 터키 유적답사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니 엄청난 대사를 치른 셈이다. 순진하고 열정이 넘치던 젊은 시절, 3년을 한 공간에서 배우고, 먹고, 자고, 미래를 꿈꾸었던 친구들이 어느덧 중년이 되어 함께 한 여행이다.

다른 기수와는 달리 제대로 된 동기모임 없이 지내다가 작년에 가족들을 동반해서 제주도로 2박 3일을 다녀오고 제대로 필을 받아서 준비한 여행이다. 누가 목사 아니랄까봐 그냥 편히 쉬어도 되는 휴양지들 다 놔두고 터키 기독교유적지 답사를 계획했다. 직업병이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돌아보고, 바울의 전도여행길도 조금 맛보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발자취도 따라가려다 보니 일정이 점점 늘어난다. 터키에서 사역하셨던 선교사님께서 흔쾌히 가이드로 나서 주셔서 지리적 배경에 역사와 성경 지식이 더해졌다.

들고 나는 시간 속에 동기부부 7팀과 2명의 자녀, 가이드 선교사님까지 17명의 답사팀이 꾸려졌다. 미리 만나서 우리가 갈 곳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자료도 받았다. 쏟아지는 자료와 영상으로 단톡방은 끊임없이 울어댄다. 깨똑.. 깨똑.. 이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하여 80여 쪽 분량의 가이드북을 만들었으니 보고, 확인하고, 배우겠다는 우리의 결심도 작은 것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 곳에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신앙의 선배들이 걸었던 그 길을 내 이 두 발로 걸어보고, 그들이 경이에 차서 바라봤던 그 곳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 이미 오래전 바람결에 날아갔을 그들의 흔적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속이 있지 않은가. 이리 긴 여행이 처음이었던 아내들은 무슨 옷을 입어야 되는지, 음식은 입에 맞을지, 고추장이라도 준비해야 되는 건 아닌지, 날씨가 어떤지, 전압은 어떤지, 환율은 어떤지, 소소하게는 드라이기를 챙겨야할지 말지를 두고 바쁜 나날을 지냈다. 우리의 영혼과 이상은 하늘을 향해 있지만 우리의 두 발은 이 땅에 딱 붙어있지 않은가. 이런 일은 여행 일정에서도 계속 된다. 카파도키아(갑바도기아)에서 신앙을 지키려고 깊은 굴을 파고 지하 도시를 이루며 살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우리의 신앙 현실을 돌아보며 새로이 신앙을 다짐하며 비장함에 빠졌다. 그러나 이내 식사로 나온 항아리케밥에 환호하며 즐거워했으니 신앙인의 삶이 녹록하지가 않다.

터키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독교 유적지들이 있다. 마음 같아서야 다 돌아보고 싶지만, 시간의 한계 속에서 우리가 정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크게 4구역으로 나눠서 동선을 짰고, 터키 지도를 놓고 보면 큰 삼각형을 그려 볼 수 있다. 일단 터키 남서쪽 이즈밀에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돌아보는 것으로 터키 답사의 문을 열었다.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냈고 이 지역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사도요한의 기념교회도 함께 돌아보는 일정이다. 이곳에서는 로마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당시 교회들의 개별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지리적인 요인과 문화, 길드를 통해 경제공동체를 이뤘던 당시 교회들의 믿음의 발자취들. 그 안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인할 수 없어 순교했던 믿음의 선배들의 행보들. 돌아와서 성경을 보니 신기하게도 그 장소가 떠오르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로 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즈밀에서 이동해서 빌립이 순교한 히에라폴리스(히에라볼리)와 파묵칼레를 돌아보고, 이방인 전도의 첫 관문인 얄바츠(비시디아 안디옥)와 바울이 박해를 받았던 콘야(이고니온)까지 이어진다. 콘야는 이슬람의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즘을 창시한 메블라나의 도시이다. 어디를 가나 수피즘을 상징하는 세마의식에 관한 모형이 세워져 있고 미니어처를 판다. 수피파 수도자들이 위아래로 하얀 원피스 같은 옷을 입고 팔을 벌려 빙글빙글 계속 도는 춤이다. 사실 춤이라기보다는 신과의 합일을 향한 기도 행위이다. 콘야의 맑은 하늘과 트램, 깔끔한 도시 분위기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건 곳곳에 세워져 있는 세마의식을 하는 모형들이다. 심지어는 호텔 로비에도 이 모형이 엄청 크게 세워져 있다.

다음은 카파도키아(갑바도기아) 지역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낮은 곳으로 향했던 데린쿠유 지하도시. 지하교회 17년차! 나름 지하교회 베테랑이라고 어깨에 힘 좀 주던 나조차도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지하교회. 지하 굴에서 한줄기 빛도 없이 웅크리며 일생을 살아내고 믿음을 지켜냈을 성도들을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이단의 사설(邪說)에서 신학을 지키고자 광야 동굴에서 신앙공동체로 살았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괴레메 동굴 교회 또한 다르지 않다. 믿음의 교부들을 따라 스스로 세상에서 나와 자신들을 묶어 버리고 고립을 택한 이들의 숭고하고도 처절한 고백이 있는 곳이 카파도키아였다.

마지막 지역은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무어라고 불러도 다 통용이 되는 이스탄불이다. 이 작은 도시 이스탄불이 있어서 터키는 유럽에 속한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 비잔티움 건축의 정수를 보여 주는 아야소피아 박물관, 술탄의 위용을 자랑하는 블루모스크, 왕실의 수도를 공급했던 예레바탄 사라이, 오스만 제국의 왕들이 머물렀던 천혜의 요새 톱카프궁전,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러스해협, 각종 볼거리, 먹을거리들이 자기 좀 데려가라고 유혹하는 바자르(지붕이 있는 시장) 등이 이스탄불을 채우고 있었다.

여러 사전 지식을 가지고 도착한 터키는 참 생소했다. 이들의 역사가 어떤지 문화가 어떤지 수없이 공부를 했음에도 실물로 둥근 모스크와 초승달 문양을 봤을 때의 충격이 참으로 컸다. 구석진 어느 마을, 혹은 휘황찬란한 도시 어디에 한 개쯤은 있을법한 십자가는 한 개도 보지 못했다. 대신 시골의 외진 어느 골목을 지나가도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건 각종 모양의 모스크들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둥근 돔 위에 액세서리처럼 예쁘고 앙증맞은 초승달이 사뿐히 올라가 있다. 크고 뾰족하게 세워진 첨탑들이 위엄을 더해 준다. 우리가 돌아본 기독교 유적지들은 이제 폐허 위에 나뒹구는 돌무더기로 남아 있다. 사도바울의 열정으로 복음이 증거 됐던 곳, 예수님의 제자들과 수없는 신앙인들의 피 위에 세워진 복음은 가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의 유적을 찾아온 우리를 맞아 준 것은 초승달이었다. 새벽마다 호텔에서 들었고 길거리에서 들었던 애잔에 대한 기억도 특별하다. 애잔은 하루 5번 예배시간에 맞춰 구슬프게 코란을 읊는 것을 말한다. 한 마을이 들을 정도로 그 소리가 크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메카 방향으로 절을 하며 기도를 한다. 조용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건너편 마을에서 울려오던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비록 형식일지라도 이들의 삶에 이슬람이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터키 사람들의 친절함은 여행 중 덤으로 받은 선물이다. 숙소 근처 동네를 산책하며 만났던 많은 주민들이 있었다. 메르하바(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메르하바로 받아 주고, 균아이든(아침인사)이라고 인사를 하면 균아이든으로 받아 준다. 인사를 하면 세계 어디서든 공통적으로 묻는 것이 어디에서 왔냐는 것이다. 되지 않는 터키말로 더듬거리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대답이 ❝oh! our brother’s country❞였다. 정말 깜짝 놀랐다. 2002년 월드컵 때 수없이 들었던 터키는 우리 형제의 나라라는 게 사실이었다니. 축구 해설자들이 뭐 소개할 말이 없으니까 그냥 하는 말이려니 생각했는데 말이다. 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거의 열이면 열 형제의 나라를 외치니 놀라울 뿐이다.

우리 17명을 실은 버스가 한국의 7.5배나 되는 광활한 터키 땅을 부지런히 달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도에서나 볼법한 지평선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시시각각 바뀌는 지형들을 보며 탄성을 내지른다. 지루해 질만 하면 선교사님께서 마이크를 잡고 터키의 이모저모를 말씀하시고, 그 또한 힘겨워 눈꺼풀이 내려앉으려고 하면 동기들의 왁자지껄 시답잖은 농담이 시작된다. 이번 여행으로 졸업한지 19년 만에 만난 동기가 있다. 해외에 선교사로 나가 있었기도 했지만, 아무리 동기여도 그 만남이 쉽지 않음이다. 세상은 4차 산업이네 하며 IT기기로 더 빠르게 발전되지만, 우리의 만남은 늘 아날로그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나야 하고, 그 만남 안에 지나간 무수한 시간들은 한 순간으로 응축된다. 세상 편한 것이 동기 아니던가. 어떤 말을 해도 유쾌하고 혹 누구의 뒷말을 해도 말이 새어날까 염려되지 않고,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으니 이만한 여행 파트너가 없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소위 ‘맥심포럼’이었다. 수많은 유적지에서 아고라를 봤다. 아고라 광장에서 철학과 종교에 대해 무수히 토론했을 테지만 우리에게도 작은 아고라가 있었다. 카파도키아 수한호텔 3657호에서 맥심커피(PPL은 아니다.) 한 잔을 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나눴던 깊은 얘기들. 누구에게든 쉽게 털어놓지 못했을 아픔을 꺼내 보이고, 나누고, 그 아픔을 듣고, 함께 보듬었던 그 밤 그 풍경들이 새삼 성탄을 앞둔 지금 따뜻하게 다가온다. 눈물이 있었나. 아닌가. 지금 내게 따뜻하게 흘러내리는 게 눈물인가. 이것이 동기가 주는 힘이지.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여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봐주는. 우리에게 터키 답사 여행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단지 기독교 유적지를 보고 신앙을 결심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확인했던 우리의 사랑!!

 

 

“사도 요한과 바울, 그리고 무명의 형제자매들에게 미안했다”

 

최에스더 사모 | 서울광염교회

 

터키 성경지리 답사 여행을 다녀 온 소감을 한 문장으로 줄여 보자면 ‘나의 무식은 끝도 없다!’이다. 개신교인에게 터키 여행은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천년을 버텼던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찬란했던 비잔틴 유물을 구경하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무너진 이후 지금까지 철저히 이슬람 국가가 된, 과거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려니 했다. 거기다 개인적으로는 동, 서양이 만난다는 특별한 지점에 가본다는 허영과 그 민족의 색채가 뚜렷한 공연 하나는 꼭 보고 오리라는 욕심에 홈쇼핑에서 하루걸러 한 번씩 판매하는 터키여행 상품에서 보여주는 맛있는 현지식에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참, 일곱 교회. 일곱 교회를 돌아본다는데 일곱 교회 터가 남아 있다 한들, 마치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에 지었다는 예수탄생교회와 승천하신 곳에 지었다는 승천교회에 가보는 기분일 것 같았다. 먼저 깃발 꽂아 놓고 우기는 사람을 이길 재간이 없어서 다 같이 인정하고 마는 모습이랄까.

그러나 터키는 그렇게 단순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 터키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는 게 옳다. 일곱 교회의 이름은 어마어마한 고대 로마 도시들의 이름이었다. 교회를 찾으려면 도시를 찾으면 됐다. 무너진 그 도시 어딘가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렸던 곳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일곱 도시를 하나하나 찾아서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의 궤적을 더듬어 보았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 거친 숨소리, 부르튼 발. 남루한 차림, 그러나 빛나는 눈. 편지를 쓰는 굽은 등, 곱은 손, 속에 가둬둘 수 없어 뜨겁게 외쳤던, 목마르게 외쳤던 복음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들에게 쏟아졌던 냉대와 박해, 배고픔과 매질과는 대조적이게도 이 땅은 너무나 풍요롭고 아름답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기암괴석을 보고 탄성을 지르다가도 이 이름다운 땅에서 그들이 느꼈을 이질감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신앙을 지키며 살기 위해 만들었던 지하도시도, 신학을 지키기 위해 파고 들어갔던 동굴도 가슴 아픈 곳이었다. 적들도 알아본 성소피아 성당의 가치. 덕분에 파괴를 면하고 서있지만 성당 내부에 부적처럼 곳곳에 붙여진 검은색의 대형 원판. 그들의 신과 지도자의 이름이라니 이 건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이 성당을 지은 사람들이 본다면 차라리 무너지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규하 선교사님을 따라 터키를 돌아보는 내내 밀려드는 나의 무식에 충격을 받은 나는 남편에게 부탁했다. 꼭 다시 터키에 오자고. 이렇게 무식하게 와서 보고 가기엔 사도 요한에게도 사도 바울에게도 이름 없이 살다간 그 땅의 형제자매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터키에서 본 달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붉기도 했고 푸르기도 했다. 그 달은 그 땅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봤을 것이다. 오늘도 달은 뜨고 무너진 폐허를 어슬렁거리던 늙은 개 한 마리는 이 밤, 어느 곳에 가서 단잠을 자려나.

 

“복음에 대한 열정이 회복된 터키 유적지 탐방”

 

김용배 목사 | 주안에교회

 

동기 목사님들과의 터키 방문을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많은 동기가 함께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들뜬 마음과 설렘은 감출 수 없었다. 연초 우리 팀을 가이드하시는 선교사님과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터키 여행 대단원의 막이 올랐다. 단체 카톡방에 수시로 올려 주시는 선교사님의 터키 역사와 성경 자료는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알아야 보인다’는 선교사님의 말씀대로 자료와 동영상을 보며 사전 이해를 하려고 힘썼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방문할 지역들을 구글 지도와 먼저 방문했던 분들의 후기들을 읽으며 그곳과 친숙해지도록 애썼다.

기다리던 터키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들과 실제 현장의 모습을 퍼즐 맞추듯이 맞춰가며, 초대 교회 당시의 그림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무엇보다 선교사님의 설명은 풍성하고 열정적이었다. 현장에서 듣는 성경의 교훈은 특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당시의 상황이 달랐지만 하나님 말씀의 교훈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소아시아 7교회 지역의 현장을 돌아보며 황제의 권위와 위엄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크고 엄청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군왕들, 특히 로마 황제와 다른 우상들을 찬송하는 행위에 대한 도전을 했다. 이 도전은 하나님 외에 자신들을 지배하거나 억압하고 얽매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 저항은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목숨까지 드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신앙과 예배는 정치적이라는 누구의 말마디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란 물음 앞에 그들은 단호했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세워진 크고 작은 석재 건축물들을 보며 2천년이 지난 이 자리에서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이 돌들은 황제가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위엄을 더 크게 여겼던 그리스도인들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여정 가운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곳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에 들렀던 비시디아 안디옥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유대인의 회당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성경은 바울이 이 회당에서 몇 주 동안 복음을 전했고, 온 시민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자 모였다고 말한다. 그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으며,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였다. 이 회당에서 대만 시은당 교회를 섬기는 손무근 선교사님의 3분 설교가 있었다. 나는 한국인으로 낯선 땅 대만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과 2천 년 전 바울의 설교 모습을 함께 떠올렸다. 시간의 갭은 있지만 이 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오직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면서 ‘만약 이곳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복음을 전하며 이 땅을 살아간 사역자들!’ 이러한 생각들의 끝에 나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다시금 던지게 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 복음이 전해진 현장과 그 복음을 믿고 신앙을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았던 성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나를 돌아본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들뿐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믿음의 선배들이 지녔던 복음의 열정이 나에게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터키 탐방은 이러한 내 안의 연약한 모습이 다시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회복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2019년 10월, 먼 이국땅에서의 시간들은 앞으로 내가 걸어갈 그 길에 성실함을 놓지 않게 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레옹 베르트에게 vs 어렸을 적의 레옹 베르트에게”

 

이영국 목사 | 새론교회

 

1997년 풋풋한 사명감으로 한 교실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이 함께 터키 여행을 할 기회를 얻었다. 꿈만 같다. 1년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한 여행이다. “합신 21기 친구들의 터키 기독교 유적 답사”라고 명명했다. 설렌다. ‘이원복’은 ‘먼 나라 이웃나라 시즌2’를 시작하며 터키를 첫 번째로 다룬다. 터키를 ‘세계 문명의 배꼽’이라고 소개한다. ‘유시민’은 ‘세계 도시 기행’에서 ‘이스탄불’을 ‘단색에 가려진 무지개’라는 타이틀로 소개한다. 무지갯빛으로 휘황하고 찬란해야 할 세계 문명의 옴파로스는 어떻게 단색의 휘장에 가려진 것일까? 궁금타! 어릴 때 읽은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통해 조금의 힌트를 얻어 본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이 터키인이란다. 터키의 천문학자는 자기가 발견한 별을 학회에 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유인즉슨 전통복장을 한 채 학회에 참석하였기 때문이다. 후에 어떤 독재자에 의해 복식법이 바뀌는 바람에 양복을 입게 되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발견을 인정받는다. 집보다 조금 큰 별, 너무 작아 바오밥나무는 감당할 수 없는 별, 꽃과 함께 활화산에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별,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별….. 작은 별에서 동심은 시작된다. 후에 여섯 개의 별들을 여행하는 동안 동경은 사라진다. 어린왕자의 별을 ‘소혹성 B612’라 명명하는 어른들이 사는 일곱 번째 별(지구)은 동심과 동경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도 가운을 입고 성례와 예배를 집전하며 성도 숫자와 재정규모로 판단 받는 중견 목회자가 되었다. 바울의 선교지이며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포진하고 있는 터키 여행을 통해 푸른 소명을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