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신앙’_장대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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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신앙

<장대선 목사, 가마산교회>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흔히 설교자들 가운데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혹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계신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시는 이들을 보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실존적 혹은 감정적 경험을 강조하는 표현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메시지는 흔히 전도설교로서 전달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여러분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건 간에 하나님을 만나면 그 만남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니,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다. 마치 신약성경에 나오는 38년 된 중풍병자처럼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종교, 소위 ‘구도자적 종교’를 추구하는 것은 개혁한 기독교(Protestant)만의 독특성과 핵심을 버리는 매우 안타까운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처럼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찾는 방식, 무엇보다 우리의 감정에 기반을 두고서 하나님과 신비적으로 만나는 방식이란 기독교 신앙 이외에도 모든 종교심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개혁된 기독교(Reformed)는 하나님을 만나는데 주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며, 더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요구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데 주목적이 있는 신앙체계이다. 그러므로 ‘교회’(Church)를 일컫는 한자 표기를 ‘敎會’로 하고, 가르치는 회(會)로서의 기독교 신앙에는 항상 가르친 내용을 잘 집대성한 ‘교리’(Doctrine)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개혁하며 나온 ‘로마 가톨릭’(소위 천주교)은 다른 모든 자연종교와 동일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패턴 가운데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교리서들을 보면 이를 확연히 알 수 있는데, 예비 신자들과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로마 가톨릭 교리서 어디를 보아도 당장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대한 것들로 시작하고 있다. 신학에서 말하는 ‘인식론’으로부터 그들의 교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그들(로마 가톨릭)의 신앙 패턴에서는 교리서가 별로 중요치 않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실존적 체험과 만남, 그리고 사제들을 통한 권면, 그리고 제사적인 종교예식(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신앙의 내용이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교리서들은 간략하고 얇은 책으로 되어 있다. 물론 사제들과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에게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같은 대단한 분량의 서적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해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인 개혁파 교회들(Reformed Churches)에서는 저마다 여러 ‘신조들’(Creed’s)과 ‘문답서’(Catechism)들을 가지고 있고, 특별히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에는 상당한 분량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전수되어 왔다.

특별히 장로교회들의 표준문서들에서는 항상 ‘성경’에 대한 이해와 개념들을 가장 먼저 다룸으로써 신앙의 기초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조주로서 마땅히 요구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도록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장로교 신앙의 독특성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는데 있다. 또한 그처럼 알게 된 하나님을 확신하고 신뢰하는 가운데서 우리들은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만남을 이루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정말 만나고 싶다면 먼저 ‘성경’을 읽으라고 가르친다.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성경을 알고,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을 알아 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들은 하나님을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눈을 감고 볼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눈을 뜨고 곧 성경을 읽는 초롱초롱한 눈에 비로소 찾아지고 만나게 되는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신교 신앙인들이 지금도 눈을 감고서 열정과 뜨거움만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물론 하나님을 찾는다는 표현이 곧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문학적 기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가장 먼저 초점을 두고 “신구약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순종을 위한 유일한 법칙이다”(소요리 제3문답)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모르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찾아지지도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이며 그 후에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 천주교를 배척한 개신교의 신앙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을 찾는 것에 빠져 있는 모든 종교적인 추구들을 배척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