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21세기찬송가와 시편찬송가에 대한 전망
| 21세기찬송가검토위원회에서는 ‘21세기찬송가’는 교회 예배 찬송으로 사
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난 제93회 총회에 보고한 바 있
다. 이에 예배 찬송에 대한 교회의 자세와 21세기찬송가의 대안으로 한국교
회가 추구할 예배 찬송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21세기찬송가검토위원회
주관 아래 ‘21세기찬송가와 시편찬송가에 대한 전망’이라는 주제로 대담
을 나누게 되었다. _편집자 주|
◈일시 : 2008. 9. 29. 오후 3시 쪾장소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회의실
◈참석자 : 서창원 목사 (예장 합동, 한국설교연구원 원장), 이성재 목사
(21세기찬송가검토위원장)
◈사회 : 이종섭 목사 (21세기찬송가검토위원)
이종섭 목사(사진, 이하 이름만 표기): 합신 교단에서 두 해 동안 21세기찬
송가검토위원장으로 수고하신 이성재 목사님과, 합동 교단에서 21세기찬송가
를 검토하셨을 뿐만
아니라 시편찬송가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해 오신 서창
원 목사님을 모시고 대담을 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인사
와 더불어 21세기찬송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성재 목사(사진, 이하 이름만 표기): 21세기찬송가를 검토해보면서 ‘이것
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정한 찬송가가 아니고
상업적인 동기에서 발간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교단에서 21세기찬송가검토위원회를 만들어 작업하면서 검토한 결과 합신 교
단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단, 대안으로 21세기찬송가
를 수정하고 보완하면 사용할 수 있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
번에 결정된 것이 21세기찬송가를 사용하되 가사와 곡을 수정할 것을 공회
에 요청하여 채택이 되면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더불어 개혁주의를 말하는 장로교회가 칼빈의 시편가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
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사소한 것 같지만 칼빈의 시편가인 통일찬송가 7장
은 21세기찬송가에서 빠졌습니다. 이런 문제와 더불어 시편가를 점진적으로
포함하도록 하는 문제까지 생각해야 합
니다. 안 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
까요? 한국장로교협의회와 같은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기관을 통해서라
도 시편가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해 관계가 민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을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서 목사님을 모신 것입니다. 신문지상을 통해서라도 독자들이 서
목사님의 의견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대담이 독자들의 눈을 떠주
게 하는 작업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창원 목사(사진, 이하 이름만 표기): 의미 있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찬송가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일에 제일 중요한 찬양 문제가 너무 성경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교회에서 통일찬송가를 사용할 때도 두 가지 입장을 가지고 사용했습니다.
찬송이 무엇인지 교육하는 일과 동시에, 먼저는 가사가 성경적이냐를 따졌
고 그 다음에는 가사가 개혁적이냐를 고려했습니다. 동시에 시편가를 번역하
기 시작했
습니다.
시편찬송가에 대해서는 신학생 시절에 처음 들었는데 당시 한국 교회에는 없
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면서 그 교단에서 시편가만 부르는 것을 보
았고, 왜 이들은 찬송가가 아닌 시편가를 부를까 하는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
습니다. 나름대로 추적해보니까 장로교회의 뿌리 자체가 시편찬송가라는 것
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시편가를 소개해야겠다고 결
심했습니다.
교단 연합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하나 된 찬송가를 쓰는 것은 명분이 있지만
개혁신학의 차원에서 보면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에 맞는
찬송가를 따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21세기찬송가를 저
는 반대했습니다.
시제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검토도 없이 받으면 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
습니다. 진리 차원이 아닌 상업적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
다.
21세기찬송가의 문제점을 개교회에 알려야 합니다. 적어도 그 안에 있는 이
런 찬송가들은 부르면 안 된다는 정도라도 구체적으로 밝혀 말해야 합니다.
우리 교단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이종섭: 21세
기 찬송가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
인 말씀들을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서창원: 연합적 측면에서 보면 찬송가를 주도한 사람들이 신학적 입장이 아
닌 교단의 색깔만 생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찬
송이라는 대원칙을 일탈한 마구잡이식 잡탕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
다. 따라서 21세기찬송가는 개혁주의 신학을 고백하는 교단에서 안심하고 사
용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찬송가를 만든 사람들에게서 찬송에 대한 기본 개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다 찬송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성삼
위 하나님의 성품과 그 사역들을 풍성하게 노래하는 것은 없고, 그냥 사람들
을 위로하는 노래들만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찬송하
는 것인데 가사는 다 회중들을 위해서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찬송가를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조차도 칼빈이 ‘영
혼의 해부학’이라고 말한 시편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에 필
요한 것이 시편에 다 있고 더더욱 시편은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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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편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되고 부르는 자도 은혜가 되는 것입
니다.
그런 측면에서 21세기찬송가에는 시편가가 전혀 없습니다. 시편의 정신을 따
르는 가사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가사가 성경적이지 않은 것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시편찬송은 하나님의 은혜 담은 구속사 증거하는 ‘예배음악’
◈… 올바른 찬송에 대한 교육적 관심과 정서순화 교육 강화해야
이성재: 21세기찬송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가사의 문제와
곡의 문제입니다. 가사가 훌륭해도 곡에 맞지 않으면 문제입니다. 곡이 좋아
도 가사가 저속하면 곡이 의미가 없습니다. 주일이었던 지난 추석의 예를 들
어보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아는 집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주일이 겹친 추석날에는
찬양대도 많이 빠질 것 같아 지휘자가 ‘어둔 밤 마음에 잠겨’(통일찬송가
261장)라는 찬송가를 찬양곡으로 연습을 시켰는데 이건 예배 찬송이 아니라
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 찬양곡이 될 수 있는지 자문을 구해온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찬양곡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고 그 집사님은 더군다나 ‘계명
성
’이라는 말까지 들어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예배에 부를 수 있을까 싶어
나에게 자문을 구한 것입니다.
그에 앞서 집사님은 찬양대장에게 항의를 하자 대장은 다시 담임목사님에게
여부를 물어보자 그 담임 목사님의 말이 더 가관이었답니다. ‘찬송가에 들
어있으면 공인된 것인데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그 주일 찬양대에 서지 않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집사님 말이 옳습니다. 그 노래는 찬송이 아닙니다. 가사 전체 내용이 찬
송이 아닙니다. 제가 두 해 동안 위원장으로 있었던 21세기찬송가검토위원회
에서 가사를 검토했습니다. 신학적, 문학적, 음악적 문제들이 너무 많이 걸
립니다. 신학적 문제만 하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고 자의적인 해석도 많습니
다. 그래서 일단 보류하자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종섭: 두 분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21세기찬송가에 대한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런 문제를 야기시
킨 원인으로서의 ‘예배 음악’에 대한 관점, 또는 한국 교회의 음악적 현실
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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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우선, 예배 음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증거해야 하는 것인
데 요즘의 한국교회에서는 그 색깔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예배 태도에 대
한 경건성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까지도 없어 보입니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서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확언이 미약합니다.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드럼은 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관에 문제가 있
다는 증거입니다. 로버트 E. 웨버는 이 시대의 교회가 합리적인 것을 추구
한 결과 감정주의와 오락주의에 빠짐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와 찬양으
로 주님을 바라보는 수직적인 관계가 무너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서창원: 지금의 한국 교회는 하나님 중심에서 이탈했습니다. 즉, 회중 중심
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내산 위에서 모세가 대면한 하나님과, 같
은 시간에 산 아래에서 아론이 대면한 하나님과의 차이가 한국 교회 안에 존
재한다고 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어도 우상이라고 보지 않고 하나님으로
보고 제사를 드립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시내산의 하나님보다는 마음껏 뛰어
놀고 재미있게 지내
는 교회와 그것을 바라보고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닌가 합니다. 회중 지향적
인 교회가 많고 그래서 또 많이 모이고 헌신도 열심히 합니다. 산아래 교회
가 일찍 일어나 제사를 드렸고 금덩어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새벽기도 안 해도 자기들을 위해서는 새벽기도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
다.
이종섭: 이 목사님의 ‘예배음악이 구속사를 증거해야 한다’는 말씀은 개혁
주의 찬송가학의 근간이 아닌가 싶고요, 또 서 목사님의 시내산 위와 아래
를 구분하신 내용은 정말 한국 교회에게 가슴 뜨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
다.
결국 그런 문제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21세기찬송가의 수준도 발전이 아닌 퇴
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산아래 있는 교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찬송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도 모세도 산 아래에 있는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결
국에는 시편을 주시기까지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의 한국 교회의 찬송에
대한 문제점을 넘어설 수 있는 찬송의 본질이나 대안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
을
가지고 계신지요?
서창원: 우선 합동 교단의 일을 말씀드리면서 풀어가고 싶습니다. 우리 교단
에서는 내년 6월까지 시편찬송가를 편찬해서 한국 교회 앞에 내놓기로 하고
현재 작업 중에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찬송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본
질적 차원의 일이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내년은 칼빈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
칼빈의 시편가를 이어받는 찬송가집을 출판하는 것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
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종섭: 합동 교단에서 시편가를 만드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기대와 더불어 우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동안 시편가와 관련한 노래집들이 개별적으로 간간이 그 모습을 보여 왔는
데 제가 보기에 가사 번역 수준이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또 어떤 시편가는 저희 교회에서 다량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음악의
프레이즈를 고려하지 않은 가사 번역 등의 문제 때문에 결국 몇 개월 못 가
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반복해서 보게 될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꼈던 문제는 시편가를
작업
하는 곳에서 사전에 좀 더 포괄적인 작업을 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
었습니다. 즉, 연합적 차원이라면 연합적 차원에서, 기술적 차원이라면 기술
적 차원에서 말이지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일반적인 악보집보다도 너무 수준
이 낮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사에 한해서 말이지요.
서창원: 그 문제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
면 좋겠습니다. 또한 재정적 부담이 많아서 이 문제도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
습니다. 연합적 차원에서도 개혁주의 교단들이 다 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
다. 합신 교단과도 함께 동참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편가공회를 만들
면 어떨까요?
이성재: 시편가를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 이종섭 목사님이 잘 말씀해 주셨구
요. 저는, 서 목사님이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서 시편가를 만든다고 했
을 때 두 가지 의견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칼빈 당시의 시편가를 번역하는 것이 물론이겠지만, 칼빈도 처음에 117장의
시편가를 만들었다가 1613년도에 가서야 150편의 시편가를 완성할 수 있었습
니다. 그 흐름을 보면 곡들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칼빈
500주년을 맞이해서 시편가를 만든다 했을 때 어느 것을 토대
로 하는 것인지 궁금하구요. 또 하나는, 그 당시 곡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냐, 아니면 현대적인 문화적 흐름을 고려해서 만드는 것이냐에 대한 문제입
니다.
시편가가 너무 늦게 나왔다는 느낌을 갖게 할 정도로 짜임새 있는 시의 운율
과 문학적 표현으로 번역되었고 악곡 역시 가락과 장단이 가사와 함께 절묘
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엮어져 나와야 할 텐데 자칫 사장될 것을 만들
면 기념사업 한 건 했다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서창원: 물론 당시 사용하는 악보가 아니고 화성곡으로 편찬하는 것으로 합
니다. 지금 부르는 찬송하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을 60곡 정도 프랑스
에서 가져온 것이 있습니다. 문학적인 표현을 맞추기가 어렵고 성경의 의미
를 무시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여러 모로 어려운 작업입니다.
일단 개인별로 10곡씩 번역을 하도록 했습니다. 나아가 그 당시의 칼빈 시편
가를 참고하면 꽤 많은 곡을 수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을 내년에 하
도록 한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내년이 칼빈 탄생 500주년이기 때문입니다.
이종섭: 당시의 시편가에 대한 말씀이 나와서 저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
니다. 칼빈의 시편가를 참고해서 시편가를 만든다고 할 때, 칼빈의 시편가
도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시편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구요. 또한 현재 유럽에서 사
용하는 네덜란드나 스위스 교회의 시편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또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코틀랜드 시편가가 오늘날의 정서에 가장 부합하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스코틀랜드 시편가를 더욱 많이 참고했
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나아가 칼빈의 제네바 시편가가 스코틀랜드로 건너갔을 때 그 모습이 약간
달라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 교회가 편찬하는 시편가도 어느 정도 발
전적으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언어적 차
원이 제일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구요.
서창원: 좋은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도 스코틀랜드 시편가를 소개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나아가 한국 작곡가들에게 위탁을 해서 작사 작곡하
는 것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세계
개혁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시편가를 서로 함께 부르기도 합니다.
한국도 개혁교회의 입장에서 함께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역적 특성
을 감안해서 만들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장기적인 입장에서 바라보
아야 할 것입니다.
이종섭: 결국은 개혁주의 신학을 가진 목회자가 꾸준한 목회활동을 통해 문
화적인 일꾼들, 다시 말해서 개혁주의 마인드 아래 작사하고 작곡할 수 있
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칼빈도 그런 일꾼들을 통해서 시편가를
만들었으니까요.
이성재: 시대가 너무 격변하는 시대여서 복음송도 늘 새로워집니다. 사람들
도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젊은 청소년들에게 찬송가를 가
지고 교육시키면 교회에 오지 않는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합동측이나 통합측에 복음송을 부르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찬송가
를 미리 가르치고 부르기도 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내실 있게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교회가 신 지향적인 시편가를 비롯한 기존의 예배 찬송을 바르게 부
를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
다. 제네바 교회가 시편가 찬송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칼빈의 ‘찬양학
교’ 운영의 결과였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서창원: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면 복음성가는 유행가적인 측면이 많아서 사라
지게 되지만, 찬송인 시편가는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고전음악과 같
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혁교회의 찬송 스타일은 고전음악적 회중가입니다.
대중음악은 아닙니다. 이런 찬송가를 우리가 부르고 아이들이 부르고 해야
합니다.
이성재: 시편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찬송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편가와
같은 영감이 넘쳐나는 곡들을 작곡할 수 있는 작곡가들이 필요합니다. 작곡
과 교수이니 찬송가를 작곡할 수 있다는 말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존 낙스
가 제네바에 갔다 와서 스코틀랜드 시편가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때 개혁주
의적인 신앙을 가진 훌륭한 시인들과 작곡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
다.
이종섭: 저 역시 수준 높은 찬송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
다. 한국교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찬송가들을 보면 작사나 작곡에 깊이가
없습니다. 깊이가 없다보니 개혁주의적인 작사나
작곡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더군다나 사회의 음악적 토양이 전반적으로 천박해지다 보니 교회 안에 있
는 성도들조차 그 영향을 쉽게 받아서 찬송의 토양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
려 나빠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찬송과 관련한 교회교육
이나 어린이 찬송가에 대한 현실을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 보는 것도 의미
가 있을 것 같은데요?
서창원: 어린이 찬송가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점보다는 다른 이야
기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구 교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시편가를 가르칩니
다. 시편 150편을 다 암기하고 있습니다. 노래로 부르면서 말입니다. 그것
도 4부로 부르기까지 하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시편을 암기하고 노래
하는 것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어린이 찬송가도 내년에는 시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성재: 일본에서 있었던 칼빈의 시편가 여름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
습니다. 1982년으로 기억됩니다. 그 세미나에서는 학문적인 연구발표와 가
창 세미나가 함께 열렸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시편가만 불렀습니다. 아이들
도 시편가를 불렀습니다. 반주 없는 아카펠라로
아주 잘 불렀습니다. 우리
한국의 개혁주의 장로교회도 이처럼 시편가를 만들어서 새롭게 부를 수 있도
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종섭: 서 목사님께서 합동측 시편찬송가 편찬을 맡아보고 계시니, 앞으로
어린이 찬송가를 편찬할 때도 어쩌면 관계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일이
진행된다면 어린이 찬송가만큼은 개혁주의 교단들이 다 함께 사용할 수 있도
록 하나의 찬송가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 일이 힘들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결국엔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고, 또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찬송가에 대한 교육적 관심이나
정서를 순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마쳐야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긴 시간 대담에 응해주신 목사님
들께 감사드리구요. 마지막으로 서 목사님께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
습니다.
서창원: 현 교회 음악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그래
서 개혁주의 입장의 시편가를 널리 알리고 확립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합니
다. 이성재 목사님이 감사하고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오늘 너무 감
사합니다. 두 목사님과 공감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
어서 좋았습니다.
그동안은 설득을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미 공감하고 대화를 나누니까 감격스
럽고 하나님도 기뻐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엘리야가 “나 혼자 남았습니
다” 할 때 하나님이 7천 명이 남아 있다 하셨던 것처럼 진리 안에서 고민하
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성재: 희망이 보입니다. 합동측에서 시편가를 편찬한다는 것은 다른 교단
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확신합니다. 한국 교회가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시편가를 편찬해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교회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 21세기 찬송가의 건실한 개편을 다시 한번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이종섭: 저도 목사님들과 대담을 통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앞
으로도 두 분 목사님들이 가는 곳마다 일하는 곳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
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