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호 우수상| 수의(壽衣)_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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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문| 우수상

수의(壽衣)

이경옥_대구영안교회

아무도 못 알아보셨던 마지막 3개월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찬송하는 
것은 분명히 기억을 하시고 제가 불러드리는 찬송을 함께 따라 부르시며, 혼
자 기도도 하셨습니다. 

신천동로를 달리다가 ‘홀치기 원단 수의(壽衣)’라는 작은 간판이 눈 속에 
들어오며 어이없이 꾸지람을 들었던 그 날이 생각납니다. 

하늘나라 가신 시어머니께서 손수 수의를 지으시며 영문도 모르는 어린 며느
리를 곁에 두시고는 명주 한 필을 꺼내놓으시고 천을 바닥에 쭉 펴놓으시고
는 그 위에 누워 키만큼 천을 자르시고는 한 숨을 한 번 쉬시고, 또 눈물을 
흘리시며 박음질하시고, 또 누우시고 각 신체 부위만큼 천을 잘라 재단하시
고는 또 우시고, 그렇게 속바지며 윗저고리며 두루마기까지 다 지으시고는 
또 한 번 입어보시고 한 숨 쉬시고, 우시고, 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렇게 서럽고 눈물나는 일을 왜 하시는지? 제가 오히려 속이 상했습니다. 

옷이 끝나자 이젠 손 겉싸개와 발 겉싸개를 만드시고, 얼굴을 싸는 것, 베개
까지 만드셨습니다. 
아들이 퇴근 해 왔습니다. 북받쳤던 울음을 터트리시고 아들 내외를 나무라
기 시작하셨습니다. 

“부모가 수의를 만드는 날이면 자식이 온 동네 사람을 불러다가 잔치를 한
다던데 너희들은 도대체 뭐냐?” 
뒤통수를 맞은 듯 했습니다. 이런 일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저희는 억울하
게 매를 맞는 기분이었고, 저렇게 자식을 나무라기까지 하시며 수의를 손수 
만드시는 저의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정말 밉기까지 했습니다. 
시집을 오니 2층 다락을 가르치며 ‘저 곳으로 네 기도처를 만들어라’, 성
미를 마구 퍼 담는 제게 ‘식구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며 한 숟갈씩 일주일 
내 모았다가 주일날 주머니에 넣어 드려라’고 하셨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바람이라도 쏘이려고 남편이랑 나가다가 ‘주일날 어딜 
가냐?’는 호통에 꼼짝도 못하고, 친정 조카 백일이라서 퇴근 후 다녀왔더
니 ‘오늘이 수요일 예배하는 날인데 어디 예배에 오지 않고 백일이 뭐가 그
리 중요하냐?’고 꾸중이셨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주일예배
가 다가오면 ‘미리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라, 주
일날 돈 쓰지 마라’는 등 매일 잔소리와 꾸지람은 정말 너무 괴로웠습니
다. 

늘 꾸지람과, 혼자 사신 외로움을 아들내외에게 분으로 다 쏟아내시니 너무 
힘들어 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는 남편 또한 어머니에게 대꾸 대신 제게 화
살을 돌려대니 전 견딜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 믿는 가정이라고 시집을 왔는데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꼭 율법주의 같이 신앙생활을 해야만 잘 하는 것인지 오히
려 반감만 생기고 어머님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 오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이 약한 저는 그렇다고 못되게 반발하지도 못하고 그 말을 듣는 시늉을 
하면서 함께 20년을 살았습니다. 직장에서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 올 때면 
‘오늘은 또 무슨 말씀을 하실는지?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 건지’ 
걱정하느라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은 항상 무거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면 언제 제 등 뒤에 어머님이 와 
계십니다. 가슴이 콩닥 콩닥 또 무슨 말씀을 하실까 조마조마 해 하며 식사
를 준비하고 
출근을 합니다. 
그냥 곱게 보내 실 때도 있지만 마음에 꺼리끼는 게 있으시면 그냥 보내시
지 않습니다. 꼭 집고 넘어가셔야 직성이 풀리시니까 출근길이라는 것 상관
하지 않으시고 한마디 역정내시고 보내십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끼리 ‘성지순례를 가기 위해 돈을 모
으자’는 말이 나와서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신 어머님께
서 제게 호되게 꾸중을 하셨습니다. “네가 교회를 두 동강 내고 싶냐?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느냐. 공식적인 교회 모임이 아닌 일은 하지 마라. 그
렇게 하다가 보면 친한 사람끼리 모여 교회 파당을 만든다. 당장 집어치워
라.” 곱게 말씀하셔도 될 일인데도 고함을 치며 혼을 내시는데 속으로는 
‘뭐 그런 일 가지고 그러시느냐’며 콧방귀를 끼고는 잔소리 듣기 싫어서 
그 일을 그만 두었답니다. 

하루는 예단으로 해 드린 한복으로 주검 옷을 만드신다며 동정을 다 뜯어내
시고는 명주로 안감을 넣고 다시 예쁜 주검 한복을 지으시고, 제가 입을 상
복까지 천을 떠다가 만드셨습니다. 그러시곤 평소에 늘 “내가 죽으면 교회 
장지에 묻어 다오. 이 한복 입혀서 
묻어 삼베로 동이지 말고 이대로 묻어다
오.” 이러셨습니다. ‘죽고싶지도 않으시면서 돌아가시면 알아서 다 할 텐
데 뭐 죽은 이후의 일 까지 걱정을 하시며 궁상을 떠시나?’ 혼자 빈정거렸
습니다. 

전 이런 환경 속에서 제 몸을 숨길 곳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생
활반경은 집, 직장, 교회가 고작이었고 만나는 사람도 역시 교회 식구들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으로부터 성경
을 배우는 일과 열심히 교회 일에 봉사하는 일과 유일하게 제게 위로가 되
는 기도하는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면서 하나님을 알아 가게 
되었습니다. 

전 제가 신앙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알아가면서 제
가 형편없는 사람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의 율법 같은 신앙도 하나
님을 사랑하는 표현임을 조금씩 알아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덩달아 신앙
도, 인격도 갖추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머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전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무감으로 어머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것 또한 기도할 때마다 그렇게 
밖에 못하는 제가 
미워서 차라리 바보가 되어 무조건 사랑하고 모든 말씀에 
“예, 예” 하면서 반감 없이 섬기기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님이 너무 미워서 이런 기도도 했답니다. “하나님 전 어머님이 돌아가
시면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
러니 제발 누가 먼저 하나님 앞에 갈지는 모르지만 만약 제가 울어야 한다
면 울 수 있는 관계가 되게 해 주십시오.” 

기도가 응답이 되었는지 죽음을 앞둔 삼 년 전 중풍으로 어머님은 제게 천사
가 되었답니다. 힘들기도 한 기간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을 모
두 지워버리게 만든 기간이었습니다. 정말 천사처럼 변하셔서 저를 ‘엄마’
라고 부르시면서 따라 다니셨습니다. 

정말 불쌍한 마음이 들었고, 그동안 일찍 혼자되셔서 외롭고 힘들었던 마음 
읽어 드리지 못했던 것이 너무 미안했었습니다. 성격이야 어떠했던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면서 사는 모습을 제게 아니 저희 식구들에게 보여 주셨습
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셨던 겁니다. 

아무도 못 알아보셨던 마지막 3개월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찬송하는 
것은 분명
히 기억을 하시고 제가 불러드리는 찬송을 함께 따라 부르시며, 혼
자 기도도 하셨습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 하나님을 힘차게 부르시며 하나님
의 살아 계심을 후손에게 보이시며 아들, 손자, 며느리 손잡고 찬송 속에서 
떠나셨습니다. 그 아름다운 수의(壽衣)를 입으시고……

장사하는 날은 잔치 날이었습니다. 지금도 순간 순간 내가 얼마나 어머님께 
죄인이었는지 떠올라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오늘 저를 하나님 앞에 있
게 하신 하늘에 계신 어머님과 그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