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세 번째 예고
막 10: 32-34
이천우 목사_부천개혁교회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이번의 말씀은 처음 하신 것이 아
니라 앞서 이미 두 번에 걸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의 말씀은 세
번째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에 의할 때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에서 예고하신 첫 번째에서
는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막 8:31) 이라고 하셨고, 갈
릴리에서 예고하신 두 번째에서는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
하고 죽은 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막 9:30)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의 예고는 요단강 건너 유대지경(요단강의 동편, 지금의
Transjordan 지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시는 도중인
여리고에 이르기 전의 어느 곳에서 하셨는데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
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
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 10:33-34)고 하셨습니다.
세 번에 걸친 예수님의 예고를 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신 것인데, 그 내용에
있어서 자신의 죽음이 어떤 과정을 걸쳐서 되어질 것인지가 점진적으로 점
차 구체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세 번에 걸쳐 예고된 예수님의 죽음
먼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예고를 대조하여 보면, 두 번째의 예고에서도 전
에의 첫 번째의 예고에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하셨는데 첫 번째에 비해서 중
점을 두고 가르치고자 하신 것은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에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막 8:31; 마
16:21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
야 할 것”, 눅 9:22에서는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
로들과 대제사장들
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
라고 말씀한 것과 비교해 보면 두 번째의 예고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조금 달
리 표현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예고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는 고난을 받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고에서
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하는 필연적인 것임을 다시 한번 말씀하시
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한다’는 것으로 말씀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의 예고에서 언급하였습니다만,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사
람’이란 단어는 본문의 문맥에서는 ‘사악하고 변덕스런 사람’을 의미합니
다. 이는 가룟인 유다의 배신을 염두에 두고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
로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는 것은 ‘인자는 배신을 당한다’는 것
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예고에서 말씀하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잡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해서 되어질 것
인지에 대한 보다 구
체적인 예시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사랑하는 제자에게서 배신을 당하여 그의 손에 의해서 예수님
을 죽이고자 하는 자들의 손에로 넘겨지는 것입니다.
가룟인 유다는 그에게 작정된 일을 하는 것으로써 인자를 파는 일을 하여 예
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영원히 비참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한 사람이지만(마 26:24), 그런 그에게서 넘김을 받아 예
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을
좇아서 목청 높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유대인들에게서 보
는 악한 죄성에 의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
은 싫어 버린바 된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사 53:3).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
리의 악함을 인하여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사 53:5).
예수님은 이번에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세 번째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
십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
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
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는 과정에서의 모습을, 그리고 십자
가를 지시고 끌려가시며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서 겪게 되시는 고난의 모습
을 보다 구체적으로 자세히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온전케 하기 위한 죽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
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섬겨 죽으러 가시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집니다.
사랑하는 제자 가룟인 유다에게서 배신을 당하여 그의 손에 의해서 예수님
을 죽이고자 하는 자들에게 넘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안합니다. 이후 예수님은 로마 법정으로 넘겨지는
데 빌라도와 헤롯 사이를 오고 가면서 마침내 사형 판결을 받고 친히 십자가
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으로 올라가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후 죽음을 당하시는 것은(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당
하심은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는 것으로도 표현됩니다. 예수
님이 당하신 고난
은 죽음에 이르는 고난이었다는 것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것이었습
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당하심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
에 있을 부활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의 방식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이 방식에 의해서 하나
님의 구원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에 의해서 이제 많은 고난을 받으신
후 죽음을 당하기 위해 그 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예루살렘으
로 올라가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
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
니’라고 말씀하여서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죽음을 당하는 장소
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고만 되어지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제
일어나 행동
으로 옮겨지려고 하는 상태에서 예고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
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라고 죽음을 당하는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는 과정
을 밝혔습니다.
3. 수치와 고난의 상징 십자가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인 가룟인 유다의 배신에 의해서 유대교 권력자인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집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들에게 ‘넘겨진다’는 수동태 동사가 사용되는 것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
음에는 하나님의 뜻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섭리에 따라 준비된 것의 실행인 것입니다.
가룟인 유다의 배신에 의해서 예수님을 넘겨받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안(선고)을 하게 될 것을 예수님은 예고하셨습니다. 그
리고 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 넘겨지게 됩니다. 그것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들은 그들이 비록 예수님을 죽이기로 선고할 수는 있지만, 로
마의 법은 그들
이 그 선고를 집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형 선고의
집행은 유대인이 아닌 사형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인 로마인이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선고는 하게 될 것이
지만 그들의 손으로 직접 죽이지는 못하고 예수님을 이방인에게 넘겨야만 합
니다. 후에 마태는 마태복음 27장 25절에서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는 것이 예
수님의 피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손들이 질 것이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을 빌라도 총독에게 요구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데, 이번에 예수님을 이방인에게 넘기는 (그리고 유대인 군중을 충동시킨)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예고함으로써 그들의 악한 죄를 드러내시고 있습니
다.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의 예고에서 자신이 어떻게 고난을 받게 되며 십자
가에 달려 죽음을 당할 것인지를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방인에게 넘겨진 후에 십자가를 지시고 끌려가시며 마침
내 십자가에 달려서 겪게 되시는 고난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자세히 예
고하여 알려주십니다.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
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마태는 마가의 기록보다 더욱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
리라”(마 20:19)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를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누가는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눅
18:32-33)고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를 언급하였는데 이는 조롱과 수치
를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방인 로마인에 의해서 조롱과 수치를 당하였는데, 그들
은 예수께 침 뱉고 채찍질하며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렇
게 예수님은 온갖 수치와 욕을 받으며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
하였습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의 예고에 담긴 의미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과 죽음을 당한 후 삼일만에 부활할 것인
데 이번 세 번째의 예고에서 새롭게 알려주시고 있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에게 넘겨져 저희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
인에게 넘겨 그들로부
터 수욕과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무엇 때문에 예고해 주시고 있는가 하는 것이 핵심의 초점입니다.
예수님의 예고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과 죽음은
참으로 처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의 예고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수
님은 자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제자들의 마음에 감정적 동정심을
유발시키고자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당할 모습을 분명하게 알려주심
으로써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버림을 받는 것에서의 고난의 성격
을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악한 죄를 알게 해주
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자신 스
스로가 순종하는 것에서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아들
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라고 말합니다. 예수께
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몸소 겪음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을 배웠다고 말해주는 것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죽음을 하나님의 뜻에 따르
는 순종에서 나온 것
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순종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지는 온갖
수욕과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시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이 일
을 무엇 때문에 당하여야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왜 이처럼,
무엇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는 것이며, 그래서 이를 예고해 주시고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마
20:28).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로서 하실 일을 수행하시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갖 수욕과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
을 당할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당하시는 것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인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하시는 고난과 죽음에는 많은 사람, 곧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
의 죄를 대속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루
살렘에 왜 올라가는 줄 아느냐? 나는 그곳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
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줄
것이다. 이방인들은 나를 조롱하고 수치를 줄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침을
뱉으며 채찍으로 때리고 십자가에 매달고 못 박아 죽일 것이다. 내가 이 모
든 고난을 받으며 죽음을 당하는 것은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여 온 바인 그리
스도,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
난을 받고 죽음을 당함은 너희의 죄를 대신하는 것으로, 너희는 죄에서 구원
받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눅 18:31)라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에서 예수님을 두고 말하
여 온 선지자들의 예언이 사실로 이루어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
다.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되고 있는 ‘여자의 후손’에 의한 구원 약속을 시작
으로 해서 모세의 언약에 예언되고 있는 대속의 원리, 이사야에 의해서 말해
지고 있는 메시야 사상 등 그 모두에서 메시야(그리스
도)이신 예수님이 고난
과 죽음을 당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말해져 왔었습니다. 그것은 죄에서의 구
원이요 죽음으로부터의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 이후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함께 예고해
주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삼일 만에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입니
다.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는 것은 그 이후에 올 일인 부활을 내다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이지만 그 결과는 그
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질 생명의 근원인 부활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기에 예
수께서는 생명의 부활을 하셔야만 하며, 여기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대속주로
서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
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생명의 부활을 하셔
서 생명의 주가 되실 것인데, 이는 대속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서 먼저 그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을 죄에서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원
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5. 마치는 말
우리가
받은 죄에서의 구원, 죽음에서의 생명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으로 말
미암았습니다.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따라서 다른 복음
으로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이 왜 그리스도이신가를 아는 것에 있으며, 그래서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아는 것에 있으며, 이 일을 하시는 것에 의해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과 영생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바라보는데 있습
니다.
우리는 자신이 생활을 어떻게 하면서 살았는가에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에서 선과 악의 기준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며, 여기에 따라
서 상과 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 안에 거하신 하나님의
영이시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지금 너에
게서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주이신가?”를 그에게서 다루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현장에 서 역시 함께 십자가에 달
려 있었던 한 강도가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로 인해서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예수님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
으시다”
며(눅 23:41),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라고 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로 모시고 섬
기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갖게 하시는 관심은 주이
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주가 되셔서 그들이
행한 것에 ‘화’와 ‘복’이 되십니다. 우리의 죄악을 전적으로 담당하시
고 하나님의 저주를 다 받으신 십자가의 피로 우리가 입을 저주의 ‘화’에
대하여 주가 되십니다. 또한 생명의 근원인 부활로 우리가 받을 ‘복’의 주
가 되십니다. 그래서 영생의 기쁨으로 유쾌한 날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한 성령께서 그에게 갖게 하시는 믿음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그리스도
이신 예수님을 주로 섬기며 온전히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뿐
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주가 되심을 이루어가십
니다. 그러니까 확장해 가시는 것입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께 나아오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 전파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장애가 있으며, 훼방이 있으며,
배척
이 있습니다만, 그 무엇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능력을 말합니다만, 믿음의 능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어느 사람이 나타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믿음의 능력은 믿는
자 안에 거하신 성령께서 그가 그리스도를 주로 섬겨 온전히 바라보게 하
며, 그리스도를 배척하며 부인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믿는 주이신 그리
스도께서 하신 일인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전함으로
써 그리스도께서 구원이심을 드러내게 하시는 데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