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교직자수련회 주제강의<1>교회의 직분자들에게 고함_박영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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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교직자수련회 주제강의<1>

이 원고는 총회교직자 수련회 첫째 날 박영선 목사의 강의를 편집자가 요
약, 발췌한 것으로 독자의 이해를 위해 제목과 소제목을 임의로 부여하였으
며 강의 내용 전부를 모두 전달하지 않습니다. 조병수 교수의 주제강의 
<2><3>은 다음호에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고함

박영선 목사_남포교회, 합신교수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는 말씀은 16
절부터 시작된 베드로의 신상고백으로부터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교회’를 계시하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는 이 본문에서 메시아 사역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베드로와 예수님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

우리는 이 본문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
다”(마 16:16)라고 고백했던 베드로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은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주여 그리 마
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만류하
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
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
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하시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예수
님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를 누
가복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
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
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
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
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
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 22:24-30).
여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눅 22:28)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자기
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
와 함께 하라’는 의미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나의 모든 시험’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시험, 즉 메시아로서 예수님은 자신의 시험을 어떻게 이해하셨는가를 아는 
것이 관건입니다. 메시아로서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의 성격을 가장 완전하
게 보여준 사건으로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 금식하고 
난 뒤 사탄의 세 가지 시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마 4:1-11). 
이때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의 성격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
설하
고 그 백성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
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
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마 16:21) 말씀하신 의도이며 예
수께서 이해하고 있는 ‘메시아의 시험’입니다.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
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인
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이해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은 바로 인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죄인된 인간과 자신을 동일시하신 예수님

바울 사도는 즉 메시아의 시험과 관련해 십자가의 죽음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
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
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
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
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
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
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
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1-5).
바울은 십자가의 죽음, 즉 메시아의 죽음에 대해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으로 
죽음으로써 아담의 족보를 닫고 부활하심으로써 새로운 아담이 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족보가 끝나고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을 시조로 하는 새 인간의 족보가 시작되기 때문입니
다. 
이런 점에서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죄인된 인간과 동일시되어야 합니다. 신이
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와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정치적, 사회적, 종교
적 시험을 당한 것이 마태복음 4장에 기록된 메시아로서 시험받은 사건입니
다. 이때 사탄은 예수님에게 초월적 힘을 과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나
님의 아들이면 신적 능력을 내보여 증
명하라’는 것이 시험의 핵심이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신이 아닌 인간으로 왔다”고 대답하신 것입니
다. 

3.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의 의미

예수님은 자신을 죄인된 인간과 동일한 자리에 두셨습니다. 이것이 메시아 
시험과 십자가의 죽음에 담긴 주요 내용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하나
님께서 구원하시려는 백성들과 동일시하라.” 즉 예수께서 죄있는 인간과 자
신을 동일시 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너희는 섬김과 겸손의 자리로 
가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의 요지입니다. 이
것은 구원받아야 할 백성의 위치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지시합니다. 이
러한 일에서 모범을 보인 인물이 바로 모세와 바울입니다. 
모세의 모범을 출애굽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
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
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
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 32:0-32). 
여기에서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는 모세
의 심정은 마치 범죄한 자녀들을 대신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아비의 
심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
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
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
3)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자기 동족의 구원을 위해 자기가 저주를 받아
도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주님의 말
씀을 따르는 자세입니다.

4. 자기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십자가의 대속에 대한 의미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
나가 바로 ‘예수님은 자신을 죄있는 인간으로 여기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
다. 
여기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교회의 연합에 대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연합에 대한 의미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에서 분명
하게 나타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
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
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
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
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여기에서 예수님은 성부와 예수님이 하나인 것을 근거하여 성자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하나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됨을 위해 예수
님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5.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야 하는 교회의 직분자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도를 비롯해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 해답을 변화산 사건(마 
11:11
-14)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일찍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
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 18:15)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종에게 주어진 사역의 성격
모세는 모든 선지자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따라서 모세로 대표되
는 하나님의 종, 즉 ‘나와 같은 선지자’로 표시되는 메시아직의 속성을 모
세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가 모세가 보여준 것처럼 ‘이 백성과 
나를 분리할 수 없다’는 정신이 선지자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
서 메시아는 바로 백성과 결코 분리되어선 안됩니다. 메시아와 백성은 하나
입니다.
또 다른 의미를 엘리야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 역시 모든 선지자들
을 대표하며 메시아를 예표합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
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라는 말라기 선지
자의 예언처럼 엘리야가 변화산에 나타났다는 것은 메시아의 날이 이르렀음
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엘리야의 나타남과 연결시켜 말라기 선지자는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

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
라”(말 4:6)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메시아 사역의 중요한 성격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입니다.

2)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신 목적
하나님께서 종들을 세우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게 하
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신 것처럼 하
나님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이 백성을 죽이려면 나를 죽여 달라’고 간청함으로써(출 32:7-14) 이스라
엘 백성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을 죽이려면 나를 죽여 달라’는 모세의 심정이야말로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예표하는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세의 간청은 하나님
의 작정하신 일을 성취하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을 들으시고 자기 백성을 진멸하시겠다는 마음을 바꾸시게 됩니다. 이처
럼 하나님께서 종을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을 성취하기 위함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바울 사도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
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
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
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
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
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
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
는 하나님 우편에 계
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29-
34).
모세가 예언한 ‘우리 중 하나’ 즉 우리와 운명이 같이 되신 분이 바로 예
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은 우
리가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부활의 영
광과 승리의 자리에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것
은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고, 교회를 가리켜 만물을 충만케 하
는 자의 충만이라고 하는 말씀에서 확인됩니다.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
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는 엘리야처럼 그리스도는 성도들, 즉 교회의 대표
가 되어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간구하신 기도가 바로 대제사장의 기도였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
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
라”(골 1:2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의 자리, 그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
회를 위해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교회 직분자들에게 요구
되는 자세입니다.

마치는 말 

예수님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신앙고
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죽
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
서’라고 만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예수
님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써 종의 모범을 친히 
성취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 즉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성공은 없습니다. 오로지 충성
만 있을 따름입니다. 직분자들에게 실력과 능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로
지 겸손과 헌신만을 요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실력을 빌려
쓰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충성하고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에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세
가 예언한 선지자의 반열, 즉 하나님의 종의 자리에 서 있는가에 초점이 모
아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가 증거한 바로 그 선지자의 ‘실상’
이십니다. 곧 자
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신 그 실상으로 예수님은 친
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가 죽어짐으로
써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게 되어야 합니다.

<발췌요약 | 송영찬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