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조류 앞에 선 교회의 위기
최재호 집사_뉴스엔조이 기자
시작하는 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원주의(多元主義)와 상대주의(相對主義)가 창
궐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다원주의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
지 못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 가치는 종종 각자가 소유한 가치
와 기준을 존중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가 가질 덕목이라고 생각하게 합니
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너는 너의 진리를 가지고, 나는 나의 진리를 가진
다’, ‘너는 너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논리가 되겠습니
다. 일면 상대에 대해 관용하고 너그러우며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기에 참 좋
은 가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의 진리나 가치 기준과는 많은 차이를 가집니다. 아니
상대주의나 다원주의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지도 모
릅니다.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사상과 가치관이 교회 안에도 침범해
온다는 것이며,
이미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현상이 교회에 어떤 문제
를 가져올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오직 하나뿐인 진리로서 ‘복음’
우리 모두가 주지하듯이 기독 신앙은 절대 진리를 고백하고 신앙합니다. 그
진리는 성경말씀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도 할 수 있고, 진리 되
신 그리스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진리란 없으며 오직 말씀 속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
한 진이라고 고백합니다. 또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의 길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신은 없으며 인간존재의 궁극적 가치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에만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은 가치 없는 존재이며,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결코 인간
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인한 은혜를 붙잡습
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런 내용들은 모두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것 아
니면 저것’ 분명한 입장인 것입니다.
반면 오늘날 창궐한 다원주의나 상대주의는 어떠합니까. 절대 진리란 존재하
지 않으며
모든 것을 상대적 개념으로 바꿔 버립니다. 상대적 진리만 존재하
기에 내가 가진 진리 못지 않게 상대의 진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또 절대적
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고(至高)한 가치는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다르다
고 생각합니다. 부처를 믿거나 알라를 믿어도 궁극적인 구원과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하다면 우리 인간에게 더 이상 구원이나 복음은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
다.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복음(福音)’은 더 이상 ‘복음(福音)’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는데, 그래서 어찌할 수 없는데, 하나님으로부
터 제시된 유일한 길이 있다’는 것이 복음 아닙니까.
하지만 다원주의는 하나님께 도달할 길,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하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개신교회와 로마교회, 원불교 등 종교간 대화도 하고 일치운
동까지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추세가 바로 교회를 허무는 위
험 요인이 됩니다.
2. 혼돈의 시대에 사는 교회들
얼마 전 로마천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을 전후해 한국교회 뿐
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개신교 지도자들이 일상적 애도(哀悼)의 뜻을 표하
는 것
에 지나쳐 그의 신앙과 삶에 대해 극찬하며 그를 치켜올리는 것을 보았
습니다.
그 대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연합 기구들은 물
론, 미국의 빌리 그래함 목사 등도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종교인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관용’이니 흐뭇한 종교
의 모습으로 칭송했습니다.
물론 관용이나 너그러움은 인생의 덕목이긴 하지만 그것의 대상이 무엇이냐
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교황의 관 앞에서 교계 지도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시대적 흐름이나 가치관과 무관하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나 상대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가치나 흐름에 매우 민감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교회된 우리의 신앙의 순결과 거룩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한 목사의 설교관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설교의 목적인가
아니면 도구인가에 대한 그의 견해를 놓고 이런저런 논의가 진행됐던 것입니
다. 제가 카페지기로 있는 부흥과개혁(cafe.daum.net/ tknewsnjoy)에서도 예
외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의 핵심
이 지금 논의하고 있는 다원주의나 상대주의
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리 되신 성경 말씀이 목적이 되어 말씀을 그대로 드러내고 전하는 일이 설
교자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좀 지나친 생각이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성경
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이 계시한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거나 위
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우리 모두가 주지하듯,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드러내어 교회가
그 영광을 인식하고 수용하며 자연스럽게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하는 삼
위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것도 가장 완전하고 충만
하며 가장 지혜롭고 효과적으로 인생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말씀
을 그대로 전하는 것보다 설교자가 더 효과적이고 지혜롭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이야말로 불충과 불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편을 들어주어야 할 것처럼, 또는 하나님을 변론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우리의 변론이나 거듦을 필요로 하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아닙니
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경은 절대 부족하거나 불완전하지
않습니다.
각종 개혁신조들에는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인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에 대
해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삼위 하나님이나 그분으로
부터 계시된 성경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은 손이 거들거나 보완해야 할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3. 설교자는 오로지 진리만 증거해야
스펄전 목사의 예를 들어서 ‘청중을 고려하는 설교’란 주제에 대해 쓴 글
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청중을 고려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것을 어떻게 풀
어서 설명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교회가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려해 거기에 맞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성경의 원저자인 성령보다 더 지혜롭고 완전해지려는 유혹을 받
는 존재입니다. 오직 성경입니다. 성경의 의미를 그대로 잘 풀어서 설명하
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설교를 잘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화학 조
미료를 진탕 풀어놓은 매운탕처럼’ 이것저것 섞어 놓는 것은 교회의 몸을
존재 목적에 맞게 유지하는 것에도 위험할 뿐더러, 건강에도 결코 좋지 않습
니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에 길들여진 시대적 요구는 설교자에게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은 너무 편협해 보이고, 관용이 없으며 독선적이라고 또 그
대로 전하는 것은 너무 딱딱해서 교회가 도저히 수용하기 힘들다고 속삭입니
다. 그런 까닭에 체형은 커졌지만 체력은 저하된 우리시대 아이들처럼 교회
의 덩치만 키워놓았습니다.
혹자는 ‘양이 있어야 질이 뒤따른다’고 합디다만 이것은 교회에 대한 이해
가 부족하거나 무지한 탓이라 여겨집니다. 교회에는 교회된 신자와 교회 아
닌 불신자만 있을 뿐입니다. 그가 교회당 안에 있다고 해서 교회 아닌 자가
교회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된 이는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잉태되고 출산되어 어머니
인 교회의 품에서 양육받는 것이 정식 코스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젖이
성경말씀 아닌 바울의 경험담이나 간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 다원주의적 사고는 불신자에게 그가 죄인임을, 그가 멸망받고 심판받을
존재임을 정확하게 선포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인생의 죄됨을 깨닫고 유일
한 구원의 길이 되신 그리스도께 나아오지 못하게 합니다. 또 그것은 교리
적 분명함도 사라지게
합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이 공존하고, 하나님의
선택과 공로주의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적당하게 섞이고 혼합되
어 있게 됩니다.
물론 이것도 시대적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장로교회와 감리교회, 오순절과
개혁주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덩치를 키울 수 있다면 어떤 것
도 도입할 수 있으며 성공하면 선하고 좋은 것이 됩니다. 얼마나 위험천만
한 사고입니까. 하지만 우리 시대의 가치는 이것이 배타적이고 고루한 생각
이라 몰아붙일 뿐 그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주지 않습니다.
마치는 말
교회는 이러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분명한 정체성을 회복하고 보
존해야 합니다. 사실 교회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 그것이 시대적 환
경이나 사람들의 정서나 판단에 좌우되지 않아야 함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판단만 있는 것이지 인
간의 좋고 싫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분명 우리는 연약하고 쉽게 흔들리고 무지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에 우리에게 절대 표준과 기준이 되는 성경말씀이 있고, 함께 부름 받은 교
회가 있으
며,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인 말씀과 성례와 기도가 있습니다. 교회
를 바르게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직분이 있고 그 직
분에 의한 사역(다스림과 질서)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세상적 가치와 기준에 현혹되거나 혼합될 그런 존재가 아닙니
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관이요 그 영광을 드러내야 할 존재입니
다. 우리 모두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참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그
러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