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혁신보창사 25년특집|아시아 일곱 교회 강론<3>_버가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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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개혁신보 창사 25년 특집_3

아시아 일곱 교회 강론<3>: 버가모교회
요한계시록 2:12-17

로버트 머리 맥체인
(Rev. Robert Murray M Cheyne)

역자_이강호 목사/런던갈보리교회

처음에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에 대
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셨고 그 촛대를 옮기셨습니다. 지금 에베소
에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도 없습니다. 두 번째로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도 말
씀드렸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눈이 그 교회에서 책망할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1. 버가모 교회의 역사적 배경

이제 우리는 버가모 교회에 이르렀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그 교회에서 칭찬할 
것과 동시에 책망할 것이 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대해 사탄의 위(seat)가 있는 곳, 혹은 사탄의 보좌
(throne)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버가모는 소아시아의 지방들 중 하
나의 수도였습니다. 그곳은 대단히 번영하는 도시였으니 상
당한 부유함이 거
기에 있었고 왕이 거기에 살았고 상당한 학문의 자리였습니다. 
20만 권의 도서를 가진 도서관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양피지가 처음 만들어
졌고 그때부터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곳은 부유함과 왕권과 학문의 자리
였지만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같이 아주 빈번히 부유함 혹은 
상당한 인간의 지혜가 있는 곳마다 그러하듯이 마귀가 자기의 궁정을 가지
고 있는 곳이 거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머나에 대해 “내가 네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지만 버가모에 대하여는 매우 다르게 말씀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에베소에서 촛대를 옮기셨습니다만 버가모에 대해
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만일 그 교회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와
서 그들과 싸우겠다고 말씀하셨고 버가모는 오늘날까지 서 있습니다. 
1820년에 그곳에 있었던 최근의 여행자는 그곳에 15,000 명의 주민이 있는
데 이들 중 10분의 1은 명목상 기독교인들이고 두 교회가 있다고 전합니다. 
그같이 그 등불이 희미하게나마 아직도 타고 있습니다. 
2. 버가모에 보이신 예수님

이제 그리스
도께서 스스로 취하신 모습을 보겠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편
지를 보내는 교회에 적합한 모습을 취하십니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옛 성직자들은 이 좌우에 날선 검이 은혜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검은 은혜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하며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시 45:2)”라는 구절과 또 솔로
몬의 아가서에서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아 5:16)”라
는 구절을 취합니다. 그 검은 두 날을 가졌으니 한 날은 죄에 대해 확신시
켜 주고 다른 날은 평안을 줍니다. 
하나는 여러분에게서 죄들을 숨기는 휘장을 찢고 다른 것은 여러분에게서 그
리스도를 숨기는 휘장을 찢어 그분을 여러분에 보입니다. 한 날은 영혼에 상
처를 내고 다른 날은 그 의사를 보여주며 치료하는 약이 상처 입은 영혼 위
에 흐르게 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옛 목사들이 설명한 방식을 좋아하시는 분은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러나 이제 이 검은 심판의 검으로 생각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서 16절까지를 보면 그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나
라들
을 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히브리서 4장 11,12절을 볼 때 제가 아는 것
은 그리스도께서는 두 성품을 가지고 계시니 그는 구주이시며 동시에 멸하시
는 자이십니다. 그는 지금은 온전히 구주이십니다만 언젠가는 모든 나라들
을 멸하실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그 검으로 죄를 깨닫
게 되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평안에 이르러 그때에 그것 아래서 쓰
러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3. 버가모 교회에 임한 주님의 책망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에 주신 책망을 보겠습니다. 

1) 사탄의 위험에 노출된 버가모 교회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이 말
씀이 크게 위로가 되는 것은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모르시는 장소에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경건치 않은 가정 안에서 가시밭의 백합으로 사십니까? 그리스도께
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안다.” 여러분
은 경건치 않는 이웃들 사이에 사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
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나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
라.” 

마귀는 버가모에 자기의 보좌를 가졌었는데, 사탄이 여기 이 도시에도 있지 
않습니까? 사탄은 여기에 자기의 궁정을 가지고 있고 많은 대신들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서 군림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권세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씀아래서 마음을 굳게 닫고 있는가요? 그의 권
세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모두 멀리 떨어져 있단 말입니까? 
자주 지적된 바와 같이 많은 곳에서 앞서 간 기독교인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직 씨를 보존하고 계십니다. 버가모가 그렇습니다. 거기에 약간의 충실한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아직도 거기에 약간의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아마 이
것이 하나님께서 여기에 약간의 신자들을 남기신 이유일 것이니 한때 여기
에 충성스러운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등불이 아직 희미하
지만 타고 있는 것입니다.

2) 충성된 증인 ‘안디바’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칭찬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예수님에 의하여 굳게 잡혔고 그리고 또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
도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는 것은 
대단한 신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됩니다. 그
리스도께 바짝 붙어 그를 굳게 잡으십시오. 아니 오히려 그분이 당신을 붙잡
으실 것입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
할 때에도.” 
이 안디바는 누구입니까? 누가 그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는 누
구입니까?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다른 책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를 아주 잊
어버렸지만 그리스도께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마음에 적어놓으셨
습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 
아마 여러분 중에 몇 신자들은 아주 가난해서 자기 집에서 반 마일도 나가보
지 못하고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의 무덤에서 눈물을 흘릴 사람 열
두 명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아십니다. 그가 여러분을 자신의 마음에 기록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서로 간에 그렇게 빨리 잊어버리는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깁니
다. 기독교인들의 우리 작은 모임에서 어떤 이들은 떠나갔습니다. 우리들이 
때때로 그
들을 생각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밝은 얼굴들과 그들이 말씀을 듣
느라고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들을 기억할 때 저들은 정말 귀한 기독교인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기억을 하지 못하는지요! 우리는 얼마나 빨리 
저들을 잊어버리는지요!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
분이 그들을 기억하십니다. 그것이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그들이 그분의 마음에 기록되었고 예수님께
서 그의 이름을 아십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 

3)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에 빠진 버가모 교회
그러나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들 속에 책망하실 것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
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
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
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셨을 때 그들을 감히 저주하지 못했
지만 발락을 시켜서 그들 앞에 걸림돌을 놓게 하였습
니다. 우리 중의 누가, 
여러분 가운데 누가 예식들과 설교 말씀과 떡과 포도주를 중히 여기고 드러
나게 기독교인들을 감히 반대하지 않지만, 그들의 길에 걸림돌을 놓는 그러
한 사람은 없습니까?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으니 내가 이 일을 
미워하노라.”
그리고 여러분 중에 여러분의 집안에 기독교인들이 아닌 사람들을 가진 이
가 있습니까? 부모들이여, 여러분 자신들은 기독교인일 수 있지만 만일 여러
분이 자녀들에게 단지 말로만 한다면, 자기 자녀들에게 말을 했지만 막지 아
니한 늙은 엘리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중의 누가 니골라당의 교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친구로 가지지는 
않았습니까? 조심하십시오. 이것이 버가모 교회의 죄였습니다. 그들에게 말
하십시오. “너희는 나를 떠나라. 하나님께서 나의 곡성을 들으셨도다.” 그
리스도께서 경고하시는 심판은 무엇입니까? 그가 말씀하십니다. “회개하
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
리라.”

4. 이기는 자에게 줄 ‘만나’와 ‘흰 돌’

마지막으로, 이기는 자들에게 어떤 상이 있습
니까!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여러분은 출애굽기 16장에
서 이것이 설명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갓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
은 과자 같았더라.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이것을 오
멜에 채워서 너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
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
함이니라 하셨다하고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그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숨겨진 만나이니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숨겨져 있습
니다만 우리는 숨겨진 만나를 먹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를 먹고 살 것입니
다. 그분이 “내가 너희에게 내 자신을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또 흰 돌을 줄 터인
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리스 경기에서 경주에 이기는 사람은 흰 돌을 받았습니다. 그
것에 쓰인 이
름이 있는데 그것을 가진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
로 만일 우리가 이기면 우리가 흰 돌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
에서도 그것을 가지게 될 것은 누가 신자가 느끼고 있는 평안을 말할 수 있
겠습니까?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죄 사함의 평안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가 진지할 때, 우리가 심
술궂은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속에 있는 평안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심하는 영혼들이여, 그리스도께 오십시
오. 여러분도 이 평안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이기는 신자들은 흰 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오! 그리스도께서 우
리들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어 주실 때, 우리가 가지게 될 평안을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 우리의 마음이 아주 깨끗해진 것을 느끼게 될 때, 우리
가 흰 옷, 곧 성도들의 의(義)인 깨끗하고 흰 세마포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 가슴에 타오르는 기쁨을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평안을 
가진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심판자의 왼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할 것입니
다. 우리는 지금 여기 싸움 중에 있지만 그것은 달릴 만한 경주가 아닙니
까? 이깁시다. 그러면 우리는 숨겨진 만나를 먹을 것이고 흰 돌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것을 받는 자 외에는 그 돌 안에 기록된 새 이름을 아는 사람
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