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역사와 구원역사(2)_김영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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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구원역사(2)

<글싣는 순서>

1. 성경에 나타난 역사의 동인(動因)
2. 구원 역사의 의미
3. 구원 역사와 기적의 의미

4. 역사와 구원 역사
5. 기독교 종말 신앙의 특이점

6. 그리스도인의 역사 의식
7. 한국 그리스도인과 역사 의식

<지난호에 이어>

4. 역사와 구원 역사

유대인들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의 민족사와 구원 역사를 분별하지 못했듯
이 새 언약의 시대에 살게 된 그리스도인들도 역사와 구원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앞두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때가 이 때입니까?” 하
고 제자들은 물었습니다. 역사와 구원 역사를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오순절 강림 이후에 자신들이 이제는 역사와 구원 역사를 동일한 것
으로 보던 잘못된 생각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옛 언약의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고 새 언약의 시대에 살고 있
음을 깨달았습니다. 복음이 유대인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만 백성을 위
한 것
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여러 나라 방언으로 설교를 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께서 임하
시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교회 역사에 보면 이런 깨달음이 또한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기독교가 313
년 종교의 자유를 얻고 380년에 마침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로 역사
와 구원 역사를 인식하는 교회의 분별력이 흐려졌습니다. 로마 제국과 기독교
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 나라와 교회를 구분하지 못했
으며 또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
게 되자 교회의 지도자들은 왜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
를 이교도들에게 침공을 받아 멸망하게 내버려두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
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은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로마는 
망해도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고 교회는 더 굳건히 서며 하나님의 나라는 더 
왕성해진다는 것이 어거스틴이 깨달은 바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
라의 운명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진리 이해가 옳
음이 입증
되었습니다.
로마를 침공한 게르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게르만의 왕국
들이 기독교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진리, 즉 어거스틴이 오랜 고
민과 사색 끝에 터득한 진리를 사람들은 또 잊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이 이슬람에게 점령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기독교
인들은 성지를 회복해야 한다면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역사와 구원 역사를 분별하지 못한 교회의 지도자들의 열심과 세상 나라의 왕
들의 이해 타산이 맞아 떨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죄와 자기 희생과 
평화의 상징인 십자가를 전쟁을 위한 군대의 표장(標章)으로 내세우며 동방으
로 이슬람을 공략하는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이를 십자군 운동이라고 하는데 
십자군은 11세기 말경부터 13세기 후반까지 7차례에 걸쳐 마치 구약에서 이스
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주변의 나라와 전쟁을 치렀듯이 
전쟁을 벌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그래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감행한 것입니다. 만 백성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된 신약
시대를 민족의 역사를 
구원 역사와 동일시하던 구약시대와 구별하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오늘의 테러와의 전쟁을 기독교 나라로서 이슬람 나라를 응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종교 전쟁, 즉 ‘성전(聖戰)’이라는 말은 구약
시대의 이야기지 신약시대에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세대주의의 영향으로 많
은 사람들이 오늘의 이스라엘의 운명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성취가 달린 것
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와 구원 역사를 혼동하는 분별 없는 생
각입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중세의 교황은 세상 권력까지 손에 넣으려고 했으며 실제로 
교회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문예부흥 때만 하더라도 교황청에 바
치기로 한 돈을 내지 않는 소왕국이 있으면 교황이 갑옷을 입고 군대를 진두
지휘하여 그런 나라를 공략함으로써 응징했습니다. 그것은 역사와 구원 역사
를 분별하지 못하고 구약의 시대와 신약의 시대를 구별하지 못하는데서 행한 
처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 걸쳐 동일하면서도 다른 점
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심으로 성취됨
과 동시에 폐지되었습
니다. 구원의 복음이 이제는 만민을 위한 것이 되었으므
로 정결의 법 또한 폐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하는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께서
는 말씀하십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가 아니요 오
직 성령이 너희에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알리는 선
교의 사명은 사도들뿐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신약의 성도들이 향유하는 귀한 사명이
요 특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자신들이 선민임을 자랑하
고 그것을 지키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넓은 사랑과 은총으로 구
원 역사에 참여한 신약의 성도들은 감격과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감사하며 만민에게 미치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특권을 향유합니다. “너희
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좇으며 삽
니다.
역사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종말은 사람들의 행사
에 대한 심판이요 지
구의 멸망이며 파탄입니다. 그러나 역사와 함께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역사의 종말은 곧 구원 역사의 완성입니다. 예수께
서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때 그의 오심과 더불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
는 것을 바라며 기다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복이요 특권입니다.

5. 기독교 종말 신앙의 특이점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또한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이 고
백하는 대로 세상의 종말이 있음을 믿습니다.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을 믿으며 믿는 자는 영원한 구원으
로,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형벌로 심판하실 것을 믿습니다. 역사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것, 그것이 기독교 종말 신앙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종말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후로 하여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는 견
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4절에 기록된 천년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천년의 기간이 없다는 무천년설을 말하는 반면에 구체적인 것으로 보는 이들
은 천년왕국설을 말합
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다는 견해
가 전천년설이고 이후에 있다는 견해가 후천년설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들 가운데 대다수가, 특히 동방교회의 교부들이 천년왕국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천년기를 상징적으로 본 어거스틴 이후의 중세 교회는 그
리스도의 재림 이후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는 신앙을 정죄했습니다. 그리하여 
천년왕국 신앙은 신령주의 그룹들과 민중의 신앙으로 잠적하여 전수되면서 12
세기 초부터 16세기까지 때로는 시한부 종말론 운동 혹은 폭력을 동반한 과격
한 종말 신앙 운동을 낳기도 했습니다.
루터와 칼빈은 어거스틴과 견해를 같이하면서 천년왕국 신앙을 배격했습니
다. 루터교와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 고백서들은 종말론을 두고는 루터와 칼빈
의 견해를 따르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대다수가 무천년설을 말하
는 반면에 신령주의적인 경건주의, 세대주의, 부흥주의 신앙을 가진 이들은 
천년설을 말합니다. 한국 교회가 주로 전천년설을 믿고 있는 것은 후자의 영
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