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박윤선을 말한다 <1>|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_박성은 박사

0
8551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박성은 박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

 

 

<필자 박성은 / 박윤선 목사의 4남으로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M.D.), 웨스트민스터신학교(캘리포니아)에서 M.A.R.를 받고 박사학위 과정에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I) 의대 임상 부교수,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통증의학 및 신경내과 병원 운영. 캘리포니아 Beuena Park 나침반교회 자원봉사 전도사로 봉사하고 있다.>

 

“당신은 진정한 개혁주의로, 인간의 부패성에 대해 깊이 느끼셨던 분이셨습니다. 혜란 누님의 글을 보셨다 하더라도 훼손에 대해선 그다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비록 세상적 기준으로 자상하고 상세하게 또한 방법론적으로 자식들을 사랑하지는 못하셨다 해도 늘 단순하고 진실하게 우리를 대해주셨던 모습, 오늘 따라 너무 그리울 뿐입니다.”

 

 

 

아버지, 지금 얼마나 기쁘고 좋으십니까? 저는 아버님 살아 계실 때 당신 밑에서 신학 수업은 못해서 한이 맺히긴 하였고 또 안수 받은 목사가 되지 못해 훌륭하게 설교자로서 직접 강단에서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선 목회자가 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일터, 즉 환자를 보면서 때에 따라 눈물로 기도도 해주고, 의심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변증적으로 가르치고, 확신을 주기 위해 이런 저런 말을 하며 권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끔 목회자나 신학 교수의 일을 하는 것도 그려 보지만, 그래도 전 제가 하는 이 일에 적지 않은 기쁨을 가집니다.

 

단순한 아버지를 좋아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당신의 온 삶의 열정을 당신이 “당신님”이라고 특별히 불러드리는 삼위일체 창조주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성경에 쏟으신 것을 저는 어릴 적부터 알았습니다.

당신은 항상 두툼한 손가락으로 낡은 가죽 덮개로 된 온갖 가장자리에 간단히 코멘트를 써놓은 너덜너덜한 성경을 손에 쥐시고, 당신이 좋아하시던 파카 만년필로 된 굵은 글씨로 이곳저곳으로 선을 그어가면서 읽고 계셨죠. 때로는 조용한 소리를 내시면서 읽다가, 원고지에 굵은 글씨로 몇 자 적으시다가, 성경 원어를 찾고, 또 다른 서양 주석가들의 주석들을 펼쳐보시고 조용히 웃으시곤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전 어머님의 잦은 주의대로, “아버지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바친 분인데, 내가 아버지 대접하려고 놔둔 것 건드려선 안 돼. 너희들도 커서 아버지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냐!” 하시면서 당시로선 조금은 싫증나도록 저희들을 다독이시던 것 기억합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기대하지 않았고 그런 단순한 아버지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어머니보다 더 좋아했으니까요.

당신은 평생 저희들의 옳지 못한 행동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교단적으로도 자녀들의 일로 많은 노고를 치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생명을 걸고 외치던 “교회끼리 소송은 안 됩니다”라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던 분들이 “자기 아들이나 잘 다스리라고 해!”라며 당신의 형님들의 비행까지 들고 나와서 강단에서 비평할 때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으셨겠지요.

그래도 당신은 그런 형님을 끝까지 도우셨고 위해서 끝까지 기도하시다 가셨죠. “기도는 내가 죽은 후에라도 이뤄져!”라고 하시면서요. 정말 그랬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맞았어요. 형님 세 분 다 참신한 신자로 이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를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니까요.

저희가 어릴 때부터 당신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당신을 재정적으로 도와 공부하게 했던 몇몇 미국인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가정예배 때도 기도하셨고 또 성탄절 때마다 카드를 보내셨습니다. 특히 Bouley(“뻘레이 할머니”) 여사는 그녀가 70년대 초반쯤 세상 떴다는 말을 들으실 때까지 계속 기억하시고 기도하셔서 우리는 그분이 누군가 하고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율법주의에 매이지 않은 용기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당신은 선교사들을 그리도 사랑하셔서 당시 전후 복구를 위해 여러 해 봉사하고 가는 출항 스케줄 상 주일 아침에 본국을 향해 홀로 영구 귀국하는 스푸너 선교사를 그냥 돌려보내기가 너무도 안 되어 “나라도 가서 꼭 위로의 말이라도 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곤 당시 경직했던 고려파의 신학 교육 수장으로 있음도 마다 않고 본국으로 떠나는 스푸너를 위로하러 급히 주일 아침 시발택시를 잡아타시는 것을 어머니 손을 잡고 봤습니다. 바로 신학교 사택 앞이었죠. 그 후 저는 잘 몰랐는데 많은 어려움을 당하셨더군요.

전 당신의 용기와 율법주의에 매이지 않으신 아버님 당신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후에도 아버님은 주일 성수에 대해서도 어머니와는 다르게 이런저런 권면은 많이 하지 않으셨고 주일은 예배에 집중하라고만 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주일 설교 마치시고 오후 서너 시간 편히 쉬시면서 저희더러 손발 좀 주물러달라고 하시곤 하셨던 것 저희들은 기억합니다.

선교사들의 노고를 늘 생각하셔서 당신의 생일에는 늘 한국 주재 선교사 가족들을 집으로 대거 초청하시곤 해서 어머니께서 교회 요리 잘 하시는 집사님들을 불러 모으시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 당신은 말씀은 별로 많이 하시지 않았지만 정말 이해심 많은 분이셨다고 저는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70-80년대에 장발로 다닐 때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 깎으라’고 하셨지만 당신은 대체로 침묵하시다가도 가끔 “그거 아이들 요즈음 추세인데 그냥 두라우. 당신 말대로라면 나도 지금 상투를 틀란 말이요?”라고 하시며 우리를 변호해 주시곤 하셨죠.

당신은 우리가 가족끼리라도 모였을 때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그들의 성취에 대해 조금이라도 폄하하는 말을 할 때면 늘 우리를 경계하신 것으로 우리 모두 기억합니다. 정말 아버지가 옳으셨어요. 제가 곁에서 봐도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말을 하신 기억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내 생각을 들여다보면 냄새 나서 다 도망가 버릴 거다

 

아버지 당신은 진정한 개혁주의로, 인간의 부패성에 대해 깊이 느끼셨던 분이셨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지금 살아서 혜란 누님의 글을 보셨다 하더라도 당신 자신의 명예 훼손에 대해선 그다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내가 그랬지 않았는가? 당신들 누구라도 나하고 삼일만 가까이 있어보고 특별히 내 속에 들어와서 내 생각을 들여다본다면, 냄새 나서 다 도망가 버릴 거라고 말일세. 사실 난 내 딸 혜란이가 말한 것보다 더 나쁜 놈이라오”라고 말입니다.

당신은 늘 인간의 죄악상에 대해 뼈저리게 일러 주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여 “구원을 받았지만 항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예배 시간에 어린 저희들에게도 귀가 닳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신뢰할 바가 아니고 사랑할 바라”고도 말입니다. 인간은 의롭다고 칭해진 것이지 의로운 것이 아니므로 계속 성화해 나가야 한다는 개혁주의 진수에 충실하셨고, 인간이 아무리 악을 행해도 안타까워는 해야 하겠지만, 놀랄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울 신학에서 악한 생각을 도모하는 인간을 헬라어로 ‘삵스’로 표현하였으며 단지 신체적인 몸을 뜻하는 헬라어 ‘소마’와는 구분해서 말한 부분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물론 이 부분은, 흑백 논리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정암이 인정하는 대로, 바울이 두 단어를 기계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혼용된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나, 확실한 것은 정암은 인간에 대해 말할 때 ‘죄로 향하는 몸’(‘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나니’, 롬 8:6)을 말할 때와 ‘중성적 의미로서 몸’(‘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롬 12:1)에서 말하는 ‘몸’과는 날카롭게 구분하시곤 했다.]

제가 “아버지, 난, 교회에서 녹을 받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할 거예요!”라고 말한 적을 기억하십니까? 그러자 아버님은 저의 교만한 마음을 걱정하시면서, “너 사람이 원래 다 진흙인줄 모르네? 사람은 자기가 뭘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돈을 받아도 별 것 아니고 안 받아도 대단한 것 아니다. 사람은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책임을 지는 것이 더 효과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이 두 가지 다 잘하기 어렵다! 너무 장담하지 말아라. 겸손해라”라고 저에게 경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지 말라

 

아버지, 당신은 소시 때부터 동양철학에 심취하시고 대학 중용 시경 서경 등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섭렵하셨고, 또한 유교의 이단설이라 말씀하시며 장자나 노자에 대해서도 가끔 가정예배 때 인용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놀랍게 당신은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분이셨습니다.

항상 짙은 스킨십으로 우리를 대하시고 함께 만들어낸 애칭을 자식들과 쓰기도 하시며(예를 들어 막내아들을 ‘거북님’이라고 부름) 우리로 하여금 거의 버릇없는 자식같이 만드신 당신. 식사하실 때 옆에서 함부로 눕곤 하면, 어머니께서는 “어른 식사 하시는데 누워있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지, 당신은 별로 관계도 안하셨고 허례허식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차리지 않으셨던 당신. 며느리나 딸과 차의 뒷자리에 동석하시면 항상 그들의 손을 깍지 끼어 잡고 계시던 당신. 비록 세상적 기준으로 자상하고 상세하게 또한 방법론적으로 자식들을 사랑하지는 못하셨다 해도 늘 단순하고 진실하게 우리를 대해주셨던 모습, 오늘 따라 너무 그리울 뿐입니다.

아버지 당신은 권위에 대하여 성경적 진리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동양철학을 하신 당신은, 지나친 것들은 성경적 원리에 의해 제거해야 되지만, 일반은총의 깨달음에 의한 동양적 윤리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가정예배 시에 말씀하시던 것들 중, “부모는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는 다른 어떤 권위보다 더 깊은 권위를 소유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동양 윤리에서 말하는 “부모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온유와 울음으로 손을 붙들고 호소할지언정 부모에게 고함지르고 험한 말이나 혈기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유교적 진리는 그 자체로선 구원은 못 주지만,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 건질 수밖에 없는 어떤 절박한 상황에서, 자기의 부모를 생각해서, 부모의 자식인 동생을 자신의 아들보다 항상 먼저 위험에서 건져야 한다”는 유교적 윤리는 지나치다고 하시며 잘못된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셨습니다(필자는 여기서 정암이 한 말은 분명히 기억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어디서 정암이 그런 글을 인용하셨는지 아직 찾아 봐야 합니다.) 참 균형 있는 좋은 가르침이라 여겨집니다.

항상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신 이유에서 권위를 가지듯, 우리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육신적 이유가 되고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그 점에서 특별히 가지는 부모의 권위도 무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이 너무 와 닿는 이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