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박윤선 성경주석에 대한 오해와 진실_안만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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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성경주석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안만수 목사, 화평교회 원로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사장 >

 

박윤선 목사는 지식의 자랑이나 학적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연구 실적을 책 속에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지식이나 정보 전달을 위한 백과사전 같은 주석을 쓰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주석이 설명하는 명확한 진리, 곧 주석의 주된 내용들은 모두 진리와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진리인 성경 말씀을 올바로 설명한 주석이라면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시대적, 문화적 한계가 없습니다.”

 

 

박윤선 주석과 관련해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이에 그 진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1. 원어 성경을 기준으로 저술된 박윤선 성경주석

 

우리가 그동안 사용했던 우리말 성경은 외국어 성경을 번역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직접 원어 성경으로부터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암 박윤선 목사에게서 직접 들은 바이고 이에 대해 아시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소위 시중에서 떠도는 것처럼 우리말 성경이 중국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을 번역했다는 말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원어 외에 다른 외국어 성경들은 단순히 참고 자료였습니다.

때문에 박윤선 주석이 중국어를 번역한 한국어 성경을 기준으로 저술되었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정암은 원어 성경을 직접 해설하며 주석을 저술했습니다. 이것은 정암과 고 이창숙 권사님께 직접 들은 말입니다.

물론 정암의 학문적 깊이와 이해도가 성숙함에 있어서 초기 주석에 부족한 점이 있었을 수 있으나 수차례에 거쳐 개정되면서 모두 보충되어 현재 그 어느 주석보다도 정확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석이 완간되기까지 개역성경을 사용하였지만, 정암은 원어 성경과 외국의 다양한 참고자료들을 연구하여 개역성경의 부족한 점을 보충했습니다. 결코 원어를 모른 채 한글 성경의 텍스트만을 기준으로 주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잘못된 해석을 지적했으며, 성도의 이해를 위해 더 나은 번역을 제시하였습니다. 다른 번역본보다 오히려 한글 해석이 자연스러운 점이 있을 경우에는 그 내용도 표시하였습니다.

박윤선 목사는 결코 지식의 자랑이나 학적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 실적을 책 속에 표하며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을 모두 뒤로하고 성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주석을 펼쳐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술어가 많이 보이지 않아서 마치 연구가 부족한 책이라고 생각을 하거나 박윤선 주석에 대해서 섣부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역자를 비롯한 성도들을 사랑했던 박윤선 목사는, 신앙이야말로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야만 한다는 것을 항상 강조했습니다. 때문에 지식이나 정보 전달을 위한 백과사전 같은 주석을 쓰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주석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깨닫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게 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입니다. 그 자신에게도 주석 연구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한 철저한 도구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생전에 만약 자신의 주석이나 연구 자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있다면 죽기 전에 모두 태우고 싶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1. 몸소 자신의 삶으로 저술한 박윤선 성경주석

 

박윤선 목사는 주석을 삶으로 써나갑니다. 용서에 대해 말하면 용서를 하려고 애쓰고, 사랑에 대해 말하면 사랑하면서 쓰려고 애썼습니다. 기도하라고 말하면 기도를 그 누구보다 많이 하며 하나님과 직접 교제의 큰 기쁨을 누리며 말하려고 몸부림에 몸부림을 쳤습니다. 공부하라고 말하면 공부하다가 죽는 것도 순교이니 걱정하지 말고 식음을 전폐하거나 잠을 자지 않고서라도 공부하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말에 힘이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렇게 살면서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주석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제시하는 하나님의 말씀들은 하나같이 그의 실천적인 삶의 땀과 피가 어려 있습니다. 삶이 녹아져 있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열정과, 믿음과, 소망과, 확신과, 생각과, 의지와,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에 지식 전달이나 정보 전달을 위한 다른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박윤선 목사의 저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다보면 그의 연구가 얼마나 방대했으며, 그의 학문적 깊이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게 됩니다.

그는 진리에 있어서는 단순 명쾌한 해석을 제시해줍니다. 이는 결코 얕은 지식과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복잡하고 거미줄처럼 얽히고 해결하기 힘든 인생 문제를 삶으로 겪어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연구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직접 살아내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은혜를 체험한 결과의 산물로 나온 것들입니다. 깊이 우려낸 곰국의 진액과 같은 경험의 산물들입니다.

그래서 박윤선 목사의 주석을 보면 오직 기도, 여주동행(與主同行), 말씀 순종을 위한 치열한 삶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조명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내용들을 통해 감동을 받게 됩니다.

소위 학문적 깊이, 넓이 및 의미 그리고 영향력 등에 대해 살펴본다고 하면서 대개의 주석들은 세상의 학문적 평가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일 신자인 우리들도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영적 본질의 세계를 설명하는 책을 앞에 놓고서 이해가 부족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혹시 사역자라면 성도들에게 세상의 논리를 초월하는 믿음의 원리를 설명하고 우리의 정체성과 영적 실체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왜 신학을 논함에 있어 세상적 학문의 기준을 가져다가 잣대로 사용해야 하나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다면 깨달을 수 없으며, 그 말씀대로 직접 순종해보지 않고는 그 말씀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세상의 책을 읽듯이 읽는다면 그 말씀이 꿀송이 같이 달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냥 성경은 미련해 보이기만 하는 것입니다. 주석은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해주는 책이기 때문에 역시 세상의 기준으로 주석을 읽고 평가한다면 그 주석의 진수를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거듭난 자라면 주석을 한 줄이라도 읽을 때 그 자세부터 달라야 합니다. 주석의 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주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으로 읽어야 그 주석이 성도들에게 참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역사적, 문화적 한계를 초월한 박윤선 성경주석

 

또 한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박윤선 성경주석이 역사적 한계나 문화적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마치 그 내용을 유행가와 같이 지나간 내용이라는 듯 폄하하려는 자유주의적 시각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업데이트가 됩니다. 휴대폰, 컴퓨터, 각종 소모품들뿐 아니라 각종 지식,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결코 업데이트를 하지 않습니다. 아담에게 제시된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라면 지금도 변함없이 진리일 뿐입니다. 거기에 더할 것이 결코 없습니다.

신학의 역사는 하나님의 진리를 업데이트해온 역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식과 다릅니다. 진리는 처음부터 주어졌습니다. 현재까지 신학의 발전을 통해 깨달은 어떤 지식이 없기 때문에 과거 조상이 구원을 못 받은 일이 없습니다. 신학은 그 시대의 사람들, 즉 죄성으로 여전히 이기적인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계속 연구되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책들을 보면서 모든 책은 역사적, 문화적 한계를 가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진리를 설명하는 주석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물론 문화적 한계라는 표현이 적합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교적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성경 말씀으로 깨우치기 위해 마치 유교 문화적 단어들을 구사하고 예화를 들어는 것입니다. 이단을 비판할 때는 그 당시 유행한 이단의 예를 들어야 합니다. 역사적 한계라는 면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주석이 설명하는 명확한 진리, 곧 주석의 주된 내용들은 모두 진리와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따라서 진리인 성경 말씀을 올바로 설명한 해석이라면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올바른 해석이어야 합니다.

일례로 성경 말씀에서 인간의 전적 부패를 말씀하시는데 그에 대한 구절들을 모두 모아 설명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 연관 구절들도 모두 모아 설명하고, 당시까지 나온 모든 책들을 섭렵하여 전적 부패에 관한 해설을 덧붙였는데 그 내용에 오류가 없다면 그 내용은 어떤 시대를 초월하여 정확한 해설입니다. 여기에는 시대적, 문화적 한계가 없습니다.

다른 예를 든다면, 박윤선 목사는 ‘계시의존사색’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이는 성경 말씀을 해석할 때 어떤 구절의 뜻이 무언가 궁금하다면 바로 성경의 다른 곳에서 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찾는 것입니다. 이 ‘계시의존사색’이라는 것과 관련해 욥기 주석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절대 시대적, 역사적, 문화적 한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박윤선 성경주석에 대해 우리부터 성경 말씀에 따른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박윤선 목사의 삶을 올바로 조명하며 오해에 대한 해명을 하는 이유는 박윤선이라는 한 인간의 우상화를 위함이 아닙니다.

박윤선 목사에 대한 오해, 혹 있을 수도 있는 질투심을 포함하여 비롯된 섣부른 판단으로 말미암아 박윤선 목사의 인생을 평가하려 한다면 자칫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박윤선 목사의 인생을 통해 선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의 흔적을 지우려고 시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박윤선 목사와 삶을 같이하며, 같이 신학을 연구하고, 같이 성경 말씀을 배우고 동역한 우리들이라면 여전히 살아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에게, 우리나라에 주신 유익한 유무형의 자료를 포함한 신앙의 유산들을 최대한 활용함에 있어 거침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