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과 성육신의 의미_윤성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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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성육신의 의미

윤성목 목사(광주 서부교회)

언제나 12월이 되면 변함없이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합니
다. 크리스마스는 가장 먼저 백화점과 번잡한 도심의 밤거리에 휘영청 찾아오
고, 사람들은 차디찬 겨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 저기 울려 퍼지는 
성탄 캐롤에 연일 흥에 겨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성탄절은 그리
스도인의 축제가 아닌 온 세상의 축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
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저만치 뒷전에 물러나 있고, 이제 크리스마스는 산타클
로스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성탄이 지닌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관심도 없
는 채, 교회마저 세속화된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 속으로 자꾸만 걸어 들
어가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로마 이교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차지하고라
도,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는 실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형
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의 의미를 소외

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한 사랑과 정의의 실천을 위한 모범이라는 차원에서 이
해하려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땅과 저 세상에서 자신의 지복(至福)을 돕
기 위한 산신령의 현현(顯現) 정도로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신성인
의 삶을 살다간 성현(聖賢) 중의 하나로 여겨지던지, 아니면 구차하고 힘든 
인생살이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줄 신통한 무당이나 점장이 중의 하나로 여
겨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6장 38절과 3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자
신이 내려오신 이유가 다름 아닌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었다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갖는 의미는 하나
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자신을 보내신 이
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
의 성육신이 바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따라 이루어졌다 것입니다. 
B. 
B. 워필드가 말한 것처럼 구원의 큰 일이란 바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구
원 계획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주
권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며, 나아가 성도를 향한 놀라운 
위로를 경험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죄인을 향한 전적인 은혜로 구원의 큰 일
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확실성으로 인하여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 하나도 잃
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중심에는 다른 사람
이 아닌 “자기 백성”, 곧 교회가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자신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자신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엡 1:3-14).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증시하는 공동체로서 존재합니
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사명을 최
선을 다하여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성육신을 우리로 하여금 본받을 것을 말씀하셨
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철저한 겸손과 섬김의 마음
을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타오르는 선교와 전도의 열정 속에 혹시나 복음 
외에 다른 인간적인 방법을 첨가하고는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정성과 노력으
로 이 세상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는 않는지, 구령의 결과들을 자
신의 공로와 업적으로 뽐내지는 않는지 겸손하게 돌아볼 때입니다. 소외된 이
웃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관심이 자칫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한 채, 자기의 의
(義)를 위한 단순한 휴머니즘의 발로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았으
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개혁하며, 진리를 보수하려는 교회의 순결함을 위한 
수고가 혹시나 다른 지체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바리새적인 교만으로 나타나
지는 않는지 조심스레 자신을 살펴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의 사랑을 가장한 값싼 사랑을 
남발하면서 교회의 거룩함을 해치고, 하나님
의 진리를 무시한 그리스도인의 공허한 일치를 외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
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바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위함이었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입은 자로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을 위한 자로서, 그렇게 겸손하게 “죽기까지 복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
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