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단상(21)| 나를 위해 기도하라_이기종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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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기도하라

 

< 이기종 목사 · 합신세계선교회총무 >

 

 

“선교의 명제 앞에서는 모두 ‘선교사적 삶’ 살아야

 

 

근래에 와서 신임 선교사들이 파송 예배를 드리고 선교지로 출발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금년 4월 이후로 신임 선교사 파송이 한동안 뜸했는데 그 이유는 허입심사 받으랴, 선교훈련과 영어훈련을 받으랴, 후원할 교회를 찾으랴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한 가정씩 출국하게 되는데, 파송식에서 느끼게 되는 남다른 감회들이 있다. 물론 한 가정이 선교지에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하여 파송되니 선교사나 파송교회에 축하하고 감사할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면담하고 지도하는 과정 중에 쓴소리를 하기도 하고, 번거로워 보이는 절차들을 요구하기도 했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랴. 최근에는 영어 과목 필기시험을 치르기도 했으니 맘속으로 미웠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송장을 받아든 그들과 아무것도 모르며 철없이 뒹구는 자녀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부모와 형제 같은 애틋한 마음이 든다. 장차 겪게 될 선교지 환경과 삶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름대로 준비되고 훈련됐다고는 하지만 신임 선교사는 아직은 연약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 주어야 한다. 위대한 선교사인 사도 바울은 서신서 여러 곳에서 “나(우리)를 위해 기도하라”고 요청했다(엡 6:19; 골 4:3; 살전 5:25; 살후 3:1).

 

선교지는 마귀의 공격이 더 심하기 때문에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한다. 사탄은 어떻게든지 선교사를 넘어뜨려서 자기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사탄의 최상의 전략이다. 건강, 물질 사용, 성적 유혹,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공격을 거듭한다. 건강 때문에 고통받는 선교사들이 많은 이유를 알 만하다.

 

선교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엄청나게 헌신되고 항상 충성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며, 모두가 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너무 과대평가 받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말했다(엡 3:8).

 

그렇다면 우리의 강함은 어디서 올 수 있을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만 강해질 수 있다.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만이 알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그 은혜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복음을 증언할 수 있고, 충성된 다른 사람을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딤후 2:1,2).

 

과외 학생모집하는 광고지에 보니 공부를 잘하려면 목표, 열정,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신앙생활도 잘하려면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열정이 있어야 기쁨, 헌신, 충성이 있으며, 자신감이 있어야 담대함이 나온다.

 

파송식은 그들을 그저 먼 선교지로 보내는 행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로서의 시작을 다짐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세상의 ‘동업자’(同業者)는 이익이 없으면 갈라서겠지만 ‘동역자’(同役者)는 같은 사명을 가지고 함께 가는 사람이다. “큰 교회에는 선교위원회나 선교부가 있으니 거기서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한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동역자이다(고전 3:9).

 

흔히 ‘보내는 선교사’와 ‘가는 선교사’라고 구분하여 말하면서 보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선교의 지상명령을 받은 제자들이기 때문에 선교라는 명제 앞에서는 보내는 자와 가는 자를 구분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선교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즉,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요,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