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단상(20)| 가을 사색_이기종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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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사색

 

< 이기종 목사 · 합신세계선교회 총무 >

 

 

한국의 가을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높고 푸른 하늘, 울긋불긋 물든 단풍, 탐스레 익어가는 과일, 황금빛 벌판과 논두렁길, 들판과 산하(山河)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이 정겹다. 광활한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지고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는 중앙아시아에서 만나는 가을 분위기와는 아주 다르다.

 

한편 가을은 이것저것 우리를 사색하게 만든다. 한 해의 결실에 대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올해 무엇을 심었고, 그리고 거두고 있는지 살필 마음이 절로 드는 계절이다.

 

선교회 본부사역을 하다 보니 선교사들의 선교편지를 많이 읽게 된다. 그들은 해외에 나가 있어도 때때로 고국의 명절 음식, 계절의 변화를 마음으로 그려보며 향수를 적어 보내곤 한다. 송편, 토란국이 그립기는 하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의 선교편지는 현지정세, 사역이야기, 가족안부, 기도제목 순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어려움 때문에 힘들게 쓴 편지를 대하기도 한다.

 

가족이 중병으로 투병 중인 사람, 자녀교육의 방향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사역자 또는 현지인과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 물가와 임차료 폭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 좀 쉬고 싶어도 쉼을 갖지 못하는 사람, 사역에 진척이 없어 고민하는 사람, 철수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사역의 열매 때문에 힘들어하는 선교사들도 적지 않다. 보통 선교지 부임 후 3년이 지나면서 파송교회와 본부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그런 저런 이유로 5-6년이 지나도 본국사역(안식년)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선교사역의 열매는 지역과 대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선교활동을 극히 제한하거나 위험한 지역에서 사역하는 경우에 열매는 아주 늦게 나타날 수 있다.

 

7년 전 어떤 선교대회에 참석했을 때 중동의 S국에서 사역하는 모 선교단체 소속의 선교사를 만난 일이 있다. 식당 한 구석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의 사역에 대해 물었다. 무슬림 대상으로 12년 동안 사역을 했지만 그의 전도를 받고 돌아온 사람은 아직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그 후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사역의 진정한 열매는 무엇일까?

 

빈센트 반 고흐는 죽기 직전 10년 동안에 900여 점의 그림과 1,100여 점의 습작들을 남겼는데, 그의 명성은 죽은 지 11년 후부터 인정받고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씨를 뿌리는 일이다. 아니 어떤 때는 씨를 뿌리기 전 자갈밭에서 돌을 고르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돌을 고르든, 씨를 뿌리든, 물을 주거나 거두든지 추수 때의 기쁨은 동일하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선교지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영혼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사람이 여러 모양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고, 땀을 흘리고, 수고했음을 보게 된다. 결국 선교는 여러 사람들의 수고의 합작품이며,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거두시는 것임을 알게 된다.

 

16년 전에 중국서북부 지역에서 지평선(地平線)을 바라보고 끝없이 펼쳐지는 황무지를 달려 지나가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황무지에 버티고 선 나뭇가지의 가랑잎처럼 그저 땅에 떨어져 한줌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로서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비록 내가 하는 일이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낙심할 필요가 없다.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에 순종한 것이라면 그 결과에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작품의 일부분을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씨를 뿌리고 수고하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거두실 것이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요 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