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최미화 사모_사랑의교회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서울에 와서 잃어버린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부
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오늘 잃어버린 오토바이에 얽힌 사연들을 이
야기할까?
우선 자전거 이야기부터 하자. 제주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와서 3년여 동
안 자전거를 4대나 잃어버렸다. 제주에서 살 때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서 그
땐 서울 생활에 대한 충격이 컸었다. 처음 잃어버린 자전거는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큰아들 정식이 친구가 빌려 타고 가서는 열쇠를 잠그지 않은
채 PC방 앞에 세워놓는 바람에 잃어버렸다. 그때 난 정식이를 심하게 나무랐
었다. 자기 물건 하나 제대로 관리를 못한다고…
그후로 새로 산 중고 자전거를 정식이는 얼마동안 잘 타고 다녔다. 아마 열
쇠 잠그는 일을 잊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2박 3일 수련회를 가면서 학교 앞
에 세워둔 자전거를 다시 또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수련회
에서 돌
아오던 정식이의 늘어진 어깨를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치 전쟁에
서 지고 돌아오는 패잔병의 모습 같았다. 자물통을 부수고 자전거만 가져갔다
며 망가진 자전거 자물쇠를 들고 왔었다. 그때도 난 정식이에게 잔소리를 했
었다. 며칠동안 학교 앞에 세워 둘 거면 타고 가지를 말았어야지 … 그러면
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을까? 극구 자전거를 안 타고 다니겠다는
정식이가 안쓰러웠던 아빠가 어느 날 새 자전거를 한 대 사들고 오셨다. 그리
고 한 달 정도 탔을까? 이번에는 새로 이사한 연립주택 앞에서 그 자전거를
또 분실하고 말았다. 전에 살던 주택은 대문이 있어서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집안에 들여놓기만 하면 됐는데 연립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곳이라서 현
관 안에 들여놓을 수도 없고 대문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현관 앞에 세
워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가려고 보니 접이식자전거인 딸 지
현이 자전거마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같은 자리에서 두 대의 자
전거를 잃어버린 셈이다. 그 자전거는 내 유일한 운동기구였고, 나를 어디든
실어다 주는 편
리한 운송 수단이기도 했었는데…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나면 얼마 동안은 눈에 보이는 같은 형태의 모든 자전거
가 다 우리 자전거로 보이는 웃지 못할 이상한 현상이 생긴다.
이번에도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며칠동안은 2층 계단을 내려가 집을 나설 때마
다 자전거가 서있던 자리에 눈길이 가곤 했다. 왠지 허전한, 그러나 자꾸 잃
어버리다보니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게 되는…
누군가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겠지? 경제가 어렵다보니 이런 일이
많네. 오죽하면 자전거를 가지고 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위로하면
서 또 한편으로는 내게 경제적인 손실이 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
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곤 했었다. 모든 일이 우연히 생기는 것은 아니라 믿
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주님
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오늘은 오토바이를 잃어버렸다. 인도에서 사역을 하시던 선교사님 가족이 우
리 교회를 방문하셨기에 구리시에 사시는 성도님댁 옥상(일명 하늘공원)에서
돼지고기 숯불구이를 해먹기로 했었다. 여전도회 회원들은
오후 예배를 마치
자마자 미리 가서 파티를 준비했고 남전도회 회원들은 축구경기를 하고는 7시
가 다 되어서야 출발을 했는데 난 딸아이 시험공부를 돕느라 남전도회 회원들
이 갈 때에 합류를 했었다.
인원이 많아서 성도님 차를 타고 먼저 출발을 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영
원이가 교회 앞에 세워 놓은 자기 아빠 오토바이를 누가 가져가면 어떻게 하
냐며 걱정을 한다.
“영원아, 오토바이는 잠겨 있기 때문에 가져갈 수가 없어.”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힘센 사람이 들고가 버리면 어떡해요?”
“걱정하지마. 절대로 안 가져가.”
그렇게 말을 했었는데…
아들 정식이가 집 열쇠가 없다며 전화를 하는 바람에 먼저 집으로 오고, 남편
은 선교사님과 성도들이랑 밤늦게까지 교제를 나누고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
으로 돌아 왔는데 소파에 앉으면서 하는 말이 오토바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허허~ 오토바이를 다 가져가다니…”
너무 기가 막혀서 웃음부터 나왔다.
“그렇잖아도 그 오토바이, 너무 낡아서 시동도 잘 안 켜졌는데 너무 속상해
하지 마요.”
“그래…”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 오토바이는 남편에게 많은 추억이 담긴 물건이다.
한 10년쯤 되었을까? 제주에서 목회할 때 교단 진흥원에서 중고등부 공과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원고료를 받아서 오토바이를 샀었다. 오토바이는 차
를 타고 다닐 때 받는 주차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단거리 교통수단이기도
했고,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서울 생활에서 교인들 심방용으로 정말이
지 유용하게 사용을 했었다.
그 뒤에 타고 다니면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던 노란색 오토바이였는데
그 오토바이가 사라진 것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잠을 자려고 누
웠는데 문득 전날 밤 꿈속에서 오토바이가 사라졌던 기억이 났다. 그랬다. 꿈
속에서 난 이미 오토바이를 잃어버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