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 없는 언어들
김수흥 목사_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초빙교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긍휼 없는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군대에
서 언어폭력 때문에 문제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언어폭력인지 혹은
훈련을 위한 언어인지는 몰라도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어떤 한 사
람의 일등병이 최전방 초소로 배치 받고 나서 낮도 익지 않은 선임병으로부
터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수류탄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하여 여덟 명을 한꺼
번에 죽이고 또 몇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무서운 사고다. 참지 못한 일등병
은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지만 또한 선임병의 언어폭력도 문제
가 된다는 것이다.
TV드라마에서 쌍방간의 전화 통화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살벌함을 느낀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하고 갸우뚱하게 된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말들
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남의 이야기를 인정 사정없이 내 뱉는다. 전화통
을 붙잡고 말을 구사하고 있는 장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일 놈이고
지옥
갈 사람이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가족끼리도 차디찬 말들이 오고 가다가 싸움이 벌어지
고 헤어지며 심지어 법정공방으로까지 번진다. 아니 어느 때는 살인까지 서
슴지 않는다.
요즈음 또 인터넷 네티즌들의 언어폭력은 가히 소름이 끼칠 정도다. 때로는
격려의 말도 있고 훈훈한 말도 있지만 대부분 남이 보지 않는 뒤안길에서 마
구 남을 심판하고 욕질을 한다. 이제는 우리도 그런 언어폭력에 익숙해서 그
저 그러려니 하는 뱃심이 생겼다.
때로 한국 방송에서 북한 방송을 인용하기 위해 북한 방송의 아나운서가 사
용하는 언어를 들려주는 때가 있다. 그것이 세상 언어인지 지옥의 언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얼마나 살벌한지 섬뜩하기만 하다.
이렇게 폭력을 행하고서야 온전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긍휼을 행
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다(약
2:13a). 긍휼 없는 언어들로 빼곡이 차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긍휼 없는 심판
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목격하며 살아가고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도 충분하리라. 많은 남자들은 조강지처를 냉대하
다가
늙어서 조강지처한테 거꾸로 냉대를 당하는 일을 부지기수로 본다. 혹시 부
자들이 돈 좀 있다고 가난한 자를 냉대하다가 훗날 비렁뱅이가 되어 남에게
손 벌리고 산다는 뉴스를 심심지 않게 듣는다. 한 때 뜬다는 기업가는 어느
사이 바람같이 사라져버리고 벤처 기업가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다가 그만
어느 사이 폭삭 망했다는 뉴스가 자주 뜬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
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말세 심판에서만 이루어지는
말씀은 아니다. 현세에서도 많이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모두는 남을 불쌍히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 “긍휼(남을 불쌍히 여김)
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약2:13). 남을 불
쌍히 여기면 심판을 면하게 된다는 말이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산다. 필자가 목회하던 교회의 어느 젊은 여
성은 나이에 비해 남에게 큰 긍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항상 기도하며
항상 남을 생각하고 산다. 교회의 모임에서 혹시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모
진 말을 하면 금방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남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
얼른 돈 봉투를 건넨다. 하나님은 무심치 않으시다. 이런 일 저런 일로 복
을 주신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긍휼로 헤아릴 수 없는 긍휼을 받았다. 우리는 예수
님 앞으로 나아가 죄사함을 받았고(마9:2) 병 고침을 받았으며(눅17:11-14)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었고(요16:33) 또 배불리 먹는 은총을 받았다(요6:1-
13).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은 우리는 남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우리
의 심령이 못되어 남을 불쌍히 여기지 못하고 산다면 우리의 못된 심령을 가
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고쳐주시기를 소원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
께 가지고 간 문제를 그냥 되돌려 보내신 일이 없으시다. 모두 고쳐주셨다.
모두 해결해주셨다(마15:29-31). 우리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못된 마음을 맡
겨야 한다. 맡기되 해결될 때까지 부르짖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심령이 달라져서 평상시의 언어도 바뀌게 하며 인간
관계도 훈훈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변화의 사람, 긍휼의 사람, 사랑의 사람
이 되어 가정을 달라지게 하며 사회와 국가를 달라지게 해야 할 것이다.
언
제까지 긍휼 없는 언어를 구사하면서 한 생애를 비참하게 살아가야 할 것인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