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받아내는 비결이 있다구요?
박신자 사모/순동교회
“방언 기도가 터진다!!
이젠 나도 방언의 능력과 희열을 만끽한다.
내 입에서 성령의 불을 토하는 기도가 뿜어져 나온다.
방언이란 무엇인지, 방언을 받고 충만히 누리는 법, 방언의 열매 등 방언은
사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완전히 해결해 주는 책”
어느 신문에 광고 된 책 선전 문구다. 그런데 아니 이런 책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이 사람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같은데 내가 읽어
본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책이었다. 우리나라에
서 잘 팔리는 기독교 서적 중 하나가 기도에 관한 책이다. 응답 받는 기도
의 비결이랄지 뭐 어떤 복에 관계된 기도의 책들이나 누가 기도해서 뭐 어쩌
고저쩌고 했네 하면 판매 순위에 올라갈 가능성이 많다.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것 정말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열심은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해야지 안 그러면 헛 다리만 짚게 된다. 방언에 관한 것도 마
찬
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방언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까지
말하기도 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 바른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방언이 무엇인가 ? 그것은 은사이다. 은사하면 거창한 것 같은데 같은 말로
하면 선물이란 말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냥 주시는 선물이다. 그 선물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 선물을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
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전 12:11)라고 하셨
다.
그 ‘뜻대로’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런
데 방언을 받는 방법이 있다니? 선물을 받아내는 방법이 있다니… 그럼 이
말씀은 무슨 뜻이란 말인가? 우리가 영적인 은사는 다 사모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받아내는 비결은 없다. 그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방언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가?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
는 자겠느냐”(고전 12:30). 이것이 성경적이다.
또
한 방언을 주신 목적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각 사람에
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6:7). 그런데 사
실 그것에 대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유익은커녕 오히려 교회의 지체들
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
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
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린도전서 14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고전 14장은
방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고 있는 곳이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이다. 그렇지만 방언을 한다고 해서 어깨
에 힘줄 것도 없고(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방언을 못한다고 기죽
을 것도 없다. 방언을 하면 신령하고 못하면 안 신령한 것이 아니다. 어떤
선물이든지 감사하면서 교회에 유익을 끼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