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내 사랑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김은화/ 대구 바로선장로교회, 여전도회원
나는 참 유명한 잠보 중의 잠보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고입시험을 치르고 와서 며칠을 자던 중이었습니
다. 막내 동생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 보니 엄마와 두 동생이 걱정스
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처음엔 자는구나 하다가 결
국 동생을 불러서 흔들어 보라고 했다더군요. 혹시 죽은 게 아닌가 하고요.
딸만 셋에 저는 맏딸이었고 항상 착한 딸 좋은 언니였지만 방 두 칸에 한 칸
을 저 혼자 쓰는 조금은 철부지 언니였습니다. 밤은 저의 세상이었습니다. 라
디오를 켜놓고 음악감상하고 책 읽고 그러다 보면 항상 늦잠이었지만 늘 지각
은 아슬아슬하게 면했습니다. 참 운이 좋아서 어쩌다 아홉시가 넘어서 교실
에 도착하면 그날따라 선생님도 늦게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각
한 번 없는 12년 개근상을 타고 학교를 졸업 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목욕 한 번 가려고 시계를 맞
춰놓고 한 번도 가본적 없으니 저의 역사
상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딱
일주일 동안 새벽에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결혼 후 다니기 시작한 구미상모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를 한다는 것이었습니
다. 저의 구역장님은 저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집사님이었는데 저를 마치 애
기 다루듯 했습니다. 그때 둘째 딸 소희가 백일이 갓 지났고 정말 추운 겨울
이었거든요. 저는 당연히 갈 수가 없었고, 그런 저의 의사를 그 왕언니 같은
구역장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면 그 왕언니
는 당연한 듯이 애기를 업고 나오라는 것이었고 아래에는 그 남편 집사님의
차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단을 한 바퀴 돌아 두 사람을 더 태우고 일주일 동안 새벽기도에 나
갔습니다. 그때는 그 구역장님의 행동이 항상 그랬기 때문에 내게는 자연스럽
고 당연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
새벽기도라 그런지 그 큰 교회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모두 울고
고함지르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자실에서 울며 기도하고 찬
송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왜 울었는지 모르
지만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저는 몇 가지를 하나
님께 구했습니다. 저는 맏딸이었고 제 두 여동생들은 둘 다 저보다 몇 년씩
앞서 결혼을 했습니다. 제 바로 밑의 여동생이 결혼 10년이 다 되 가도록 애
기가 없어 저의 속을 태우고 있었거든요. 연년생인 저희들은 정말 누가 언닌
지 누가 동생인지 친군지 자맨지 모르게 커왔기 때문에 더구나 제가 결혼하
고 우리 두 딸들을 볼 때마다 더 동생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회 얼마 다녔다고 참 염치도 없이 하나님께 기도했지요. “하나님 우리 숙
이 애기 딱 하나만 낳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정말 교회 열심히 다닐께요”
하고요. 정말 엉엉 울면서 말이죠. 제가 새벽기도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이
것이.
지금 결혼 10년만에 태어난 우리 조카는 올 칠월에 두 돌이 지난 우리 집안
유일한 아주 건강한 사내아이입니다. 그 후로 몇 번씩 작정만 하고 실패해 오
다가 이번에 시작하게 된 이 새벽기도는 저에게 매일 매일이 특별새벽기도입
니다. 이 새벽을 위해 밤에 한 시 전에는 무조건 잠자리에 듭니다.
오늘은
한 시가 넘어 벌써 두 시군요.
처음엔 힘겨운 삶 속에서 뭔가 잡아보려는 내 욕심으로 시작한 새벽기도였지
만,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너무나 큰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새벽기도는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증거이고 제가 하나님께 보여 드
릴 수 있는 최선의 감사표시입니다. 너무 받은 게 많은데 저는 드릴 것이 없
으니 저는 다만 하나님 아버지께 보여드리는 거지요. 저도 아버지를 이만큼
간절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 잠보가 아버지가 깨우시니 벌떡 일어났
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