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십일조 황대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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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십일조

황대연목사/ 한가족 교회 

주일예배를 마치고 잠시 차 한잔의 여유를 나누던 오후, 교회의 전화벨 소리
와 함께 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황대연목사님이십니까…? 저…그냥 목사님을 한번 뵈고 싶어서 전화했습니
다.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아, 그러세요? 그럼요. 오세요! 그런데…실례지만 어떻게 저희 교회 전화 
번호를 아셨습니까?”
“예…작은 쪽지를 보고 알았습니다.”

저는 교회 위치를 알려주었고, 그는 기회 되면 한번 찾아 뵙겠다고 하고 전화
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다시 울린 전화벨 소리엔 그
가 지금 택시를 타고 교회 앞까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급한 사연이 있는 사람인가보다…’
조금 있다가 약간은 주저되는 듯,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한 남자가 교회에 
들어섰습니다.저는 우선 자리를 권하고, 커피 한잔을 탑니다. 그는 부시럭거
리며 주머니에서 작은 인쇄물을 한 장 꺼냅니다. 낯익은 ‘쪽지’에는 어느 날 

쓴 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읽은 듯 빨간 색연필로 줄까지 쳐져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 글을 읽고 그냥 목사님이라면 뭔가 통할 것 같고, 목사님이
라면 뭔가 좋은 말씀을 해 주실 것 같아 그냥 무작정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저는 어제 공주 교도소에서 4년만에 나왔습니다…”

‘교도소…?’
계속되는 그의 말은, 한 때의 실수로 두 번에 걸쳐 11년간의 수인(囚人)생활
을 하게 되었고, 증오와 복수심, 적개심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한 전도자를 통
해 그 안에서 예수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옥중(獄中)에서 성경을 읽으
며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이젠 새 사람으로 살 결심을 했다고 했습니
다.

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토록 뒷일과 가족을 책임지마고 장담하
던 ‘의리의 친구’들은 한, 두달 정도 돌아보고는 모두 사라져버렸답니다. 그 
사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는 마음도, 생활도 상처받고 지쳐 이제는 멀리 
떠나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출감(出監)하는 날,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 새 삶을 살겠다’고 마중 나
오겠다는 ‘친구와 동생들’
을 단호히 거절하고 피붙이 누이동생과 함께 올라왔
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뜬눈으로 세우고, 인생 첫 단추를 이제는 잘 끼워야겠다고 
교회부터 찾아 목사님 말씀 듣고 기도 받고 싶다고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이제 와서 누굴 탓하며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다 제 잘못입니다. 이
젠 내 아내에게 날 받아달라 할 면목이 없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으
로 보여줄랍니다. 2, 3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지금 어느 식당에서 고생하는 
아내와 합칠 것입니다…”라는 들으며 그의 처절했던 삶의 여정(旅程)들이 가
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하나님의 말씀 몇 구절을 드리며 
격려합니다.

“목사님, 교도소에서 한 달에 7천원씩 작업비를 줍니다. 저는 이번 수형생활
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그 은혜가 감사해서 십일조를 떼었습니다. 목사
님, 얼마 되지 않지만 좋은데 써 주십시오…”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미리 준비해 온 듯 약간 꾸깃한 편지 봉투 하나를 꺼
내 놓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의 새출발하려는 결단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목사님, 너무 기쁩니다. 제가 이 교
회를 계속 나온다는 장담은 못하지만, 어
느 곳에 가든지 이 교회를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이 벌레 같은 놈을 위
해서도 목사님, 기도해주십시오…”
그는 그렇게 기쁘다며 갔습니다. 

그가 간 후 탁자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봉루를 봅니다.
3만원…
수인(囚人)의 작업비 7천원에서 뗀 십일조 7백원씩, 4년 가까이 모았어야 되
는 돈입니다. 그야말로 ‘이제는 두 번 다시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알알이 새
출발에 대한 결심이며, 탄식과 통회의 결정체(結晶體)입니다.
그의 험난한 바깥 세상 적응에 주님께서 축복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