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9) 죽지 않는다는 확신, 죽어도 좋다는 각오_정창균 목사

0
17

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9)

다니엘 3장 14-18절

죽지 않는다는 확신, 죽어도 좋다는 각오

정창균 목사_합신 교수

20년쯤 전, 제가 부목사로 섬기고 있던 교회에 김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었습
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전도하기 위하여 여러 해 동안 무진 애를 쓰시던 분
이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빤질거리는 개구쟁이 아이처럼 목사를 만나주지도 
않으면서 갖은 말대답과 나름대로의 논리를 들이대며 예수를 믿지 않던 당대
의 똑똑이 남편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 두었던 김 집사

그런데 간경변을 앓던 그 분이 어느 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별
로 길지 않은 동안을 저와는 참 다정한 관계를 즐기며 예수 믿은 것을 좋아
하면서 사시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분은 제게 던지
듯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이 고집쟁이를 이기셨습니
다.” 그리고는 즉각적으로 말을 고쳐 다시 하셨습니다. “아니지요, 하나님
의 은
혜지요!”
남편 돌아가신 후 김 집사님은 남편을 천국 보냈다며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
하고 즐거워하시는지… 그런데 남편 떠나고 일 년쯤 되었을 때, 김 집사님
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몹시 고통을 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단 발
병을 하면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방바닥을 뒹굴기도 하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저는 거의 이 틀에 한번 꼴로 심방을 가다시피 하며 집사님
을 붙들고 기도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고, 병원에서는 원인도 찾아내지 못
하였습니다. 
집사님 시댁 쪽으로 무속인이 있었고 그래서 시댁에는 그 쪽으로 가까운 사
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김 집사님이 이러한 병으로 고생한다
는 것을 알고는 자주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당신이 예수를 믿어서 그러는 것
이라고, 지금이라도 예수를 버리고 우리에게로 오면 당장 그 병을 고쳐줄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제가 다시 심방을 갔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이 한 숨을 쉬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오늘 아침에 또 전화가 왔어요. 예수를 버리고 지
금이라도 자기들에게로 오면 당장 병을 고쳐준다는 거예요.” 그리
고 나서 
집사님은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이를 악물듯이 말
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그러나 내 병 고치자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는 
없잖아요!” 
그 분은 끝내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 고통과 빈정댐을 묵묵히 받아넘기면
서 하나님 편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런 집사님을 보
며 유학을 떠났고 그후 얼마 안 있어 그 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소식을 머나
먼 외국에서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저는 다니엘 3장을 묵상할 때마다 김 집사님이 떠오
르곤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두라 평지에 금칠을 한 장대한 크기의 신상
을 세우고, 그 신 상 앞에서 성대한 의식과 함께 기세도 당당하게 온 나라
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든 백성은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
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
으리라!” 모든 백성에게 그 신상에 절하는 것이 살고 죽는 문제가 된 것입
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친구는 국가 고위직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들은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왕을 격노케 하였습니다. 왕은 이
r
들을 회유하였습니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줄테니 내가 세운 신상에게 절하
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 그리고 경고와 협박을 하였습니
다. “앞으로도 계속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신상에
게 절하지 않으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으리라.” 
그리고 왕은 세 친구가 섬기는 하나님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빈정대었습니
다. “내가 너희를 풀무불에 던져 넣으면 그 어떤 신이 너희를 건져낼 수 있
단 말이냐!” 
이에 대한 세 친구의 입장은 분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
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내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낼 것입니
다!” 느부갓네살이 섬기는 신과 세 친구가 섬기는 하나님과의 싸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세 친구는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도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죽
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
입니다. 
“왕이여,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지 않고 죽게 한다 할지라도, 우리
는 당신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
하고, 당신이 세운 금신상에게도 절을 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십시요!” 그들은 단순히 죽지 않는다는 확신으로만 왕
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있
었던 것입니다. 혹시 죽고, 망할지라도 나 잘되자고 하나님을 버릴 수는 없
다는 결단이 그들의 신앙의 진수였습니다. 

죽어도 좋다는 각오되어 있어야

죽지 않는다는 확신, 죽어도 좋다는 각오! 그들의 신앙은 바로 그것이었습니
다. 제가 김 집사님에게서 본 신앙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 병 고치자
고, 하나님을 배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20년 전의 그 분의 모
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