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7) 없으면 그립고, 안보이면 보고싶은 사람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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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7)

요한3서

없으면 그립고, 안보이면 보고싶은 사람

정창균 목사_합신 교수

짧은 시간 함께 지냈어도 오랜 세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오랜 세월
을 함께 했어도 함께 지낸 의미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애틋
한 정과 포근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생각할수록 상처와 회한으
로 되살아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틋한 정은 잊혀지지 않아

없으면 그립고, 안보이면 보고 싶은 사람! 나이 들어갈수록 그리고 세상살
이 연륜이 길어질수록 여기저기에 그러한 사람이 있어야 그 세월 살아온 행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여러 사람들에게 안보이면 보고 싶
고, 없으면 그리운 사람이 되어주며 사는 인생이어야 이 세상에 그 만큼 머
문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노년의 사도가 너무나도 그리운 한 사람에게 그 심정을 토로하며 써 보낸 편
지인 요한삼서를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노년의 한 어른과 어쩌면 그의 
제자
였을 한 사람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생생한 그림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모
습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저는 어느덧 눈가에 이슬이 맺히곤 합니다. “사랑
하는 사람,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자네가 
영혼이 잘 된 것처럼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절히 바라네!” 가이오
를 그렇게 부르는 장로 요한이, 그리고 장로 요한에게 그렇게 불리는 가이오
가 저는 참으로 부럽습니다. 
자기를 장로라 부르는 이 사도가 가이오를 생각하며 이렇게 마음 흡족해하
고 또 저절로 간절한 축복이 쏟아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 사람 가이
오에 대하여 들려오는 소문들 때문입니다. 가이오는 진리를 따라서 진실 되
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칭찬어린 소문. 그것이 사도에게는 그렇게 큰 기쁨
이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쁘도다!”(3절). 그리고 그렇게 사는 이 사람이 그렇게 사랑스
러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 사도에게
는 믿음의 제자들이 진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 가장 큰 즐

n거움입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
다!”(4절). 개인적으로 용돈을 많이 주거나, 철 따라 양복을 맞추어 주고, 
자동차를 새로 바꾸어주어서 그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가 
복음과 복음의 다른 일꾼들과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진리를 따라 진실 되게 
헌신하며 살기 때문입니다(5-8절). 사도는 이것을 선한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11절). 
그러나 사도에게는 정반대의 이유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습
니다. 디오드레베. 사도는 이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엄하게 책망을 하리라는 다짐을 불러일으키는 사
람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감정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는 시
시하게 개인적인 감정문제로 한 사람에게 한을 품으며 사는 그런 사람이 아
닙니다. 
디오드레베! 그 사람을 잊을 수 없는 것은 진리 안에서 진실 되게 행하지 않
는 그의 행실 때문입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 생활을 “자기가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원리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자
기 자신을 내세
우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을 언제나 가장 우선적
인 행동의 원리로 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망령되게 폄론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지도 않
고, 끝내는 다른 사람의 선한 행실을 금하면서 교회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
게 만드는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것입니다(9-10절). 사도는 이것을 서슴
없이 악한 것이라고 단정합니다(11절). 그리고 이런 악한 것은 본받지 말라
고 합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을 생각하다 보면, 사도는 아마도 그와는 다른 모습으
로 살아가는 진실한 사람 가이오가 더 그립고 보고 싶어진 것이 틀림없습니
다. 한창 편지를 써 내려가던 사도는 마치 붓을 던져버리듯이 마지막 말로 
편지를 맺어버립니다.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속히 보기
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얼굴을 대면하며 말하리라.” 사도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내가 너에게 할 말이 많이 있는데, 그러나 편지
로 몇 자 끄적이는 것 같고는 양이 차지 않는다. 네가 보고 싶다. 네 얼굴
을 보며 여러 말을 나누고 싶다!” 
거짓이 없이 행하는 제자 가이오, 
그리고 그것이 큰 기쁨이 되고 그리움이 
되어 그를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선생 요한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지랑이 피
워 올리는 봄날 햇볕처럼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훈훈한 사랑 할 수 있기를

간간이 들려오는 떠나온 교회의 뒷 소식을 귓전에 들으면서 저는 사도 요한
과 그의 제자 가이오가 한없이 부러워지곤 합니다.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부
르고 싶고, 누군가에게 나도 그렇게 불리며 늙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