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복음_성주진 교수

0
11

자연과 복음 

성주진 교수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집 앞의 단풍나무, 거리의 은행나무, 앞산의 이
름 모를 관목에 이르기까지 각종 나무들이 저마다 마지막 자태를 뽐내고 있습
니다. 이맘때의 가을은 자연이 연출하는 상실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까지 가을의 정취에 한껏 취
해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창조에 드러난 그분의 지혜와 능력에 압도당
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독교는 자연착취와 환경파괴를 위한 신학적 기초를 마
련해 주었다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한 프란시스 쉐퍼의 반
응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합니다. 그는 이러한 잘못이 플라톤적 이원론에 기인
한 자연과 복음의 분리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역사적 기독교가 
잘못된 신학과 성경해석에 기초하여 자연을 파괴하는 우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물론 성경은 자연과 축복의 하나님을 역사와 복음의 하나님
과 분리하지 않습
니다. 

자연에 대한 역사적 기독교의 경계심은 성경이 자연에 대한 우상숭배적 태도
를 정죄하는 사실을 볼 때 정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만 하더라도 아
름답고 장엄한 자연, 인간의 삶과 풍요를 좌우하는 자연은, 이방인에게는 언
제나 경배의 대상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끊임없는 유혹의 원천이었습니
다. 자연을 하나님 위에 높이고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취급함으로써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세계관은 기독교의 상존하는 위협이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낭만주의 운동 또한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러한 범신론적 경향에 대항하여 기독교진리를 변증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역사를 이원화하고 자연의 하나님과 역사의 하나님의 분리하는 현상이 일어나
기도 하였습니다. 잘못된 주장을 반대하다가 자연전반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
도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을 무신론적인 과학자나 극단적인 환
경론자에게 맡겨버리는 패배주의적 오류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성경은 자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을 뿐만 아
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하
여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역시 말
씀으로 구속의 역사를 빚어가고 계십니다. 이처럼 자연과 역사는 하나님의 말
씀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기 때문에 이 둘은 구분되지만 분리할 수는 없습니
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만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를 다스리시
고 결국 구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복음의 대척지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보여주는 비유가 널려 있습니다. 밤하
늘의 별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약속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시청각교재였습니
다. 서울의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별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
타까운 일인지요. 주님도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우리 손에 잡
히도록 쥐어주셨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 들에 핀 백합화는 주님의 가르침 가
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재였습니다.

따라서 자연을 무분별하게 손상하고, 파괴하고, 착취하는 것은 위대한 저자
이자 선생님이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사용하시는 
교과서를 찢는 행위와도 
같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뿐만 아니라 자연이라는 교과서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진지한 기독교저술 가운데에서 자연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이 나타나는 것은 실로 다행한 일입니다. 인간의 몸
에 대한 세속적 관심을 계기로 몸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오묘한 돌보심
을 보여주고, 무신론적 자연 담론에 대한 응답으로 자연에서 은혜의 원리를 
찾아 보여주는 일들이 좋은 예입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로 자연이 주는 치유와 쉼을 맛보지 못하는 현대인들
에게 자연은 새로운 휴식과 평안, 그리고 창조의 축복을 회복시켜 주는 하나
님의 기본적인 선물입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자연의 우상숭배적 유혹이 
사실상 사라지고 오히려 자연파괴를 유발하는 문화와 생활방식이 몸에 익은 
현대인으로서는 자연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인 반성과 보다 적극적인 
이해가 필요한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