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은혜를 받은 자
정창균 목사/새하늘교회
유대 땅 나사렛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약혼을
했지만 남자와 육체 관계를 맺지 않은 순결한 처녀였습니다. 어느 날 가브리엘이라는 천
사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그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넨 첫 마디
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것 이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처녀는 놀랍기도 하고, 고
민도 되었습니다.“이것이 무슨 말인가?” 천사는 이어서 왜 이 처녀가 은혜를 받은 자
인지를 밝히기 시작하였습니다. “네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
을 것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이 처녀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어서 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
다. 천사는 이 숫처녀에게서 태어날 그 아기의 이름까지 지정해주었습니다.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남자와 정을 통한 것이 밝혀지면 동네 사람들이 끌어다가 돌
로 쳐죽여 돌무더기에 묻어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세상에 이 처녀는 살고 있었습니
다. 남자의
몸을 접한 적이 없는데도 아이가 생기는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놓고 “은혜
를 받은 자”라니… 사실이 밝혀지는 날에는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운 상황
을 놓고 하나님께 은혜를 얻어서 된 일이라니… 무슨 은혜가 이런 해괴 망칙한 은혜가
있을까? 마리아는 천사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
는 남자와 몸을 부딪혀 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
까?” 가브리엘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
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너에게서 나실 그분은 거룩한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유대
민족이 대대로 그렇게 기다려 온 메시야의 오심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상 다윗
의 위를 받으실 분이요, 영원히 야곱 집의 왕 노릇 하실 분이요, 무궁한 나라를 세우실
분”이 그의 몸을 통하여 오실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천사는 기다리고 있고,
마리아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마리아는 결단을 하고, 그의 입에서는 결단의 한마
디가 터져 나왔습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주님,
그것이 주님
의 뜻이라면 저는 주님의 계집종이오니 주님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질 것
뿐입니다’ 그제서야 천사는 마리아를 떠나갔습니다. 이런 마리아가 헐레벌떡 자기 집
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세례 요한을 잉태하고 있었던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하여 말
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이 누가복음 1장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탄생 내력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
마다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참 은혜라는 것이 무엇인가, 참 은혜를
받은 자는 누구인가를 곰곰 생각하곤 합니다. 내게는 원통하고 억울하고, 때로는 돌에
맞아 죽을런지도 모를 위험한 일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과 연관을 맺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은혜라는 말씀일텐데… 그런데 우리는 흔히 그 반대를 은혜로 생각하고, 기대하
며 사는 건 아닌지…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가 잡혀가서 고문을 받고 정신병원 입원으로,
자택 요양으로 억울한 세월을 보내며 한때 폐인처럼 되어버려서 그를 아는 우리 모든 사
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한스런 응어리를 갖게 했던 친구가 어제 찾아왔습니다. 우
리 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그곳에서도 최고의 수재라는 평을 들었던 친구였습니다. 몇
년 전 어느 곳에서 제 아내와 함께 만났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얼굴
이 몰라보게 평안해졌고, 건강해보였고, 생각도 말도 겸손하고 진지하고, 긍적적 이었습
니다. 얼마 전부터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
하고 보니 목사인 제 생각이 나고, 제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존경하는 목사님이어서
보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는데 도중에 자리를 떠나 어디를 다녀오면
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앞이라 담배를 피울 수가 없어서 담배 한대 피우느라고.” 그
친구는 돌아가면서 한마디를 했습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나에게 섭리가 있었어.”
지금까지의 자기의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그 섭리를 고마와 했습니다. 그는 또 말했습니다. “도서관에 수백만권씩의 장서가 있는
데 그중에 단 한권의 책만 남기라 하면 나는 성경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억
울하고 원통한 세상을 경험했으나 제 생각에 그 친구는 분명히 “은혜를 받은 자”였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