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관객들
꽤나 큰 극장에 연극을 관람하기 위하여 관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무대 뒤
에서는 배우와 연출자가 이제 막 연극의 막을 올리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연출자
가 다급하게 배우를 불렀습니다. “극장에 불이 붙었다는 연락이 왔다. 빨리 무대로 나가
서 관객들에게, 극장에 불이 났으니 질서있게 신속히 대피하도록 알려 주라.” 배우가 무
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그러나 힘이 있게 말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질서있게 이 곳을
신속히 떠나십시오!” 그러자 관객들은 이 배우를 향하여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대로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배우가 무대 뒤로 와서 연출자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제게 박수를 치고는 아무
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연출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리 다시 나가서, 이 극장에 불
이 났으니 질서있게 신속히 이 곳을 빠져나가라고 말하라!” 배
우가 다시 무대로 나갔습
니다. 그리고 이전 보다 더 다급하고도 극적인 음성과 몸짓으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극장에는 불이 났습니다. 신속히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질서를 지켜서 대
피해주십시오!” 배우의 말이 끝나자 관객들은 다시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감동
적인 음성과 제스처에 관객들은 감동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배우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는 극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을 보려고 잠시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자리에
서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꿈쩍도 않고 모두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배우는 다시 무대 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연출가에게 보고
했습니다. 연출가가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이미 시간이 늦어지고 있어! 빨리
나가서 이미 시간이 촉박하니 빨리 대피하라고 관객들에게 외치란 말이야!” 배우가 뛰어
나갔습니다. “여러분, 큰 일 났습니다. 이 극장은 이미 불길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시간
이 없습니다. 신속히 대피해 주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
든 관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는 우뢰와 같이 기립박수를 쳐댔습니
다. 그 배우의 실감나는 연기에 보내는 찬사였습니다.
키에르케골이라는 철학자가 오래 전에 한 이야기를 제가 약간 각색한 것입니다. 키에
르케골은 이 이야기의 제목을 “설교”라고 붙였습니다. 불이 나서 곧 타 죽게 될 처지에
있다는 긴박한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한 사람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대피
하게 하지는 못하는 무능한 설교에 대한 빈정댐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설교를 통하
여 선포되고 있는 메시지에는 관심도 없이 다만 극장의 관람객처럼 설교를 즐기는 관객
교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웃음이기도 합니다. 선포되고 있는 말씀의 내용과 요구에는 아
무런 관심도 없고, 그것을 얼마나 재미있게 하는가, 얼마나 감동적으로 하는가, 얼마나
세련된 연기로 하는가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오늘날의 많은 교인들을 이 철학자
는 이렇게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교회들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문제입니다. 소위 “좋은 설
교”를 찾아서 마치 유명한 가수에게 오빠 부대 몰리 듯 교인들이 떼를 지어 이리 저리
몰려다닌다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을 잘 배워서
그대로 살아보고 싶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그러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교인들은 제대로 된 설교를 듣고 그대로 행동하기 위하여 듣는 것
이 아니라, 그 설교자가 그 설교를 어떻게 하는가를 보려고 설교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강단은 무대가 되고, 목사는 직업 연기자가 되고, 교인들은 연기를 즐기
는 관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집에 있으면서도 뛰쳐나가
대피하는 사람은 없는 위험한 상황이 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려는 생명의 원
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끌어 모으려는 사업의 원리에 의해서 설교를 내세우는 우
리 설교자들의 책임이 무한대로 큽니다.
그러나 헌신의 철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담주지 않고 편안한 설교를 즐기려는 관객
의 철학에 의하여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책임도 또한 작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득
예레미야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
들은… 제사장들은…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
는 너희가 어찌하려느
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