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아버지의 안부인사
정창균목사
제가 목회를 시작한 이후 저의 아버님이 제게 물으시는 안부인사는 판에
박은 듯,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교회 다 평안하
냐? 장로님들 (네 목회에) 협조 잘 허고? 집안 다 평안하냐? 아이들도 다
건실허고?” 일단 저와 통화가 되면 언제나 아버님의 첫 마디는 이 내용에
이 순서였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 까지 오랫동안 장로로서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유별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한결같았던 그 어른의 교회 사랑의 모습은
우리 형제들에게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분은 특
별히 목회자를 존중히 여기고, 극진히 수종을 드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심방
가실 일이 있다고 찾으시면, 논바닥에 나가 계시건, 밭에 가 계시건 급히
돌아오셔서 정장으로 옷을 갈아 입고 허연 머리를 단정히 빗어내리고 젊은
목사님 뒤를 따라가며 수종을 들었습니다. “너희들은 교회를 잘 섬기고,
목회에 거침이 되지 말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습니다. 우리 자녀
들
가운데서 누군가 자기가 섬기는 교회 목회자에 대한 불평이나 비판을 하면
아버님은 언제나 말을 막으며 경고성 충고를 하시곤 하였습니다. “절대로
목회에 거침이 되지 마라. 교회를 분란케하는 일에는 절대로 개입을 해서
는 안된다.” 그런 정신으로 교회를 섬기고 목회를 협력하신 장로 아버지
를 기억하셨음인지, 하나님은 아들 목사인 제게 저의 아버지가 하셨던 것
처럼 교회와 목회자를 섬기는 착하디 착한 교인들을 붙여주셔서 저는 지금
까지 참 순탄한 목회를 해오고 있습니다.
장로로 오랫동안 교회를 섬기신 제 아버지는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
엇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평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안부
를 물으실 때 첫째 관심은 언제나 아들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가 평안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다 평안하냐?” 목회자를 지근거리에서 수종드
셨던 그분은 또한 목사가 목회를 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장로의 협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만 하시면
언제나 교회의 평안을 확인하신 다음에는 장로님들과의 관계를 물으신 것
이었습니다. “장로님들은
협조 잘 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
만, 제 아버님은 제게 가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집사 백이 장로 한
사람 못당하는 것이다.” 장로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좋
은 장로님 만나서 동역하는 것이 목회자에게는 지극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
을 어린 목사 아들에게 일깨워주시려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선량한 많은 교인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시험과 아픔들
의 근본 원인이, 그 교회의 목회자와 장로 사이가 원만치 못하여 생기는
일들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동시에 두
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뒷조사를 하는 형사처럼, 실수
를 가차 없이 잡아내려고 눈을 부릅뜬 냉정한 감독관처럼, 주도권 싸움으
로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는 철부지 부부처럼 그렇게 긴장하여 지내는 것
은 정말이지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불행한 것은 둘째치고, 교인들이
불쌍하게 됩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 관계가 아
닙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영원한 찰떡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로 맺어
진 당회가 되면 교인들은 목사님
과 장로님들을 생각만해도 감동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가도 목사님과 장로님을 보기만해도 위로가
되는 법입니다. 그러한 교회의 교인은 저절로 신바람이 나는 것입니다.
“교회 다 평안하냐? 장로님들 협조 잘허고?” 돌아오는 주일이 그 어른
떠나신 지 3주년이 되는 날인데, 장로 아버지의 그 음성이 다시 그리워집
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저의 자신에 찬 대답을 다시 들려드
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