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업자득 (自業自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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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 (自業自得)
정창균 목사/ 본보 편집위원  진리의 교회

신학교 복학을 위해서 신혼살림을 끌고 학교 아래 골목집에 사글세 방을
얻어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20년 전입니다. 큰 길로 나와서 학교 쪽으로
조금을 걸어 올라가면 왼쪽으로 작은 건물이 있고 그 이층에 개척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그 아래 집에 살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하다
가 그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저희 부부는 그 목사님댁에 안내되
어 들어가서 차도 한 잔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저
는 복학을 다른 학교로 하게 되었고, 6개월도 못살고 그 동네를 떠나게 되
었습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은 채 몇 해를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인가 갑자기 그 교회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 가봤더니 교회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부흥이 되어서 이사를 간건지, 잘 안되어 문을 닫은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시 얼마를 지나다가 우연히 그곳을 잘 아는 분을 만나게 되
어 그 교회 소식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참으로 기가막힌 대답

들었습니다.
그 교회는 개척한 지 여러 해가 되었어도 교인이 몇 안되어 목사님은 여러
모로 어려운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래 동네의 큰 교회에서
교인 한 사람이 이 개척교회의 목사님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목사님에게 목회가 얼마나 어려우시냐고, 목사님 곁에서 목회를 돕고싶다
고, 등등 개척교회 어려움에 고생이 찌든 목사님에게는 귀에 솔깃한 이야
기들을 늘어놓았겠지요. 그리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드디어 기도를 들으
시고 헌신된 일군 한 사람을 보내주시는구나 하며 잠시 흥분도 하셨겠지
요. 그 사람은 조건이 붙어 있는 제의를 목사님에게 내놓았습니다. 교회도
옮겨오고, 열심히 충성을 할 것이니 장로를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내 목사님과 이 사람은 합의에 이르렀고,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개척교회로 옮겨왔고, 잠시 후에 장로도 되었습
니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그 후에 터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장로가 된
그 사람이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목사도
장로고, 장로도 장로이니 설교를 우리 둘이서 나누어
서 합시다.” 세상천지
어디에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겠느냐고요? 제 자신도 믿기지가 않았습
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생을 할지라도 말이 안되는 일은 하지 않고, 말 되
는 일들만 하는 인생들이었다면 이미 세상이, 정치판이, 이 나라의 많은 교
회들이 오늘 우리가 보고 한숨짓는 이 모양 이 꼴은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 교회는 그것이 문제가 되어 한참 동안을 싸우다가 문을 닫고 없어져버
렸습니다.
문득, 단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자기 자신이 저
지른 잘못의 과보(果報)를 자신이 받는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미 우리가
교회 안팎을 불문하고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문제와 괴로움들과
왜곡된 역사의 현장들의 상당 부분이 우리가 뿌린 것의 결과를 거두고 있
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저런 질 낮은 정치인들
을 갖게 된 것도 사실 상당 부분은 이 백성의 자업자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말도 안되는 씨들을 여러 방면에서 뿌리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교회는 교회 빚을 갚기 위하여 안수집사를 수십명씩 세우는
데, 기본료가 이천만원이라는 소
문도 들리고, 그렇게 해서 안수집사가 된
사람 가운데는 예수 믿은 지 3년여 밖에 안되는 사람도 있다는 소문도 들
립니다. 교회는 집단적으로, 교인은 개인적으로, 그 결과가 심상치 않아 보
이는 많은 일들을 겁 없이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자업
자득을 신랄하게 경고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
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
나?”(렘5: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