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예정의 이유와 목적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3장 5항: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의 영원하며 불변한 목적과, 그리고 그의 뜻의 비밀한 의도와 선한 기쁨을 따라서, 생명으로 예정이 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그들에게서 어떤 믿음이나 선행들 또는 그것들이 끝까지 유지될 것을 미리보시는 일과 상관이 없이, 즉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행하도록 하게 하는 조건들이나 원인들과 같은 다른 어떤 것들을 미리 보지 않은 채, 그저 순전히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택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목적”
본 항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살필 것은 선택의 예정의 이유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선택의 예정을 하시는 이유가 자신에게서가 아닌 다른 어떤 이유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진술합니다.
선택의 예정을 하심에 있어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서 어떤 믿음이나 선행들과 같은 것들을 선택의 조건이나 원인으로 삼아 그것들을 미리 보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즉 외적인 피조물의 어떤 조건도 하나님으로 하여금 선택을 예정하도록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진술은 신앙고백서 제3장 2항을 설명하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소위 “예지예정론”이 잘못된 것임을 밝힘으로써, 선택의 예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확고히 합니다.
예정의 이유와 관련하여 개혁신학과 알미니안 신학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 데에는 하나님의 작정에 관련하여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의 작정은 항상 단일합니다. 하지만 알미니안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작정을 선택의 대상을 정하는 조건과 관련한 작정과 그 조건에 상합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미리 보고 그를 선택하는 작정으로 구분을 합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9장 13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에서 말씀하고 있는 야곱과 에서의 예정에 관련한 해설에 있어서 개혁신학과 알미니안 신학은 다르게 이해를 합니다.
개혁신학은 앞의 본문이 야곱이라는 특정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또는 에서라는 특정한 사람을 유기하셨음을 교훈하는 것을 이해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은 항상 대상을 향하여 특정적입니다. 그러나 알미니안 신학에 따르면 앞의 본문이 하나님은 단지 야곱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선택하고, 에서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유기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음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어 말하기를 야곱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미리 보시고 선택의 예정을 한다는 “예지예정”을 주장합니다.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알미니안주의가 잘못되었음을 확고히 선언하면서, 오직 선택의 예정은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앞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이라는 특정한 사람을 오직 자신의 기쁜 뜻을 따라서 선택하셨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는 말씀이나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 9:15)는 말씀, 그리고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9)는 말씀 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서 특정한 사람들 선택하신다는 개혁신학의 해석을 분명하게 지지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의 비밀한 의도와 선한 기쁨을 따라서” “그저 순전히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의 예정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택의 예정에 대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다 알려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도 하나님께서 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시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을 선택을 하지 않으시는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사람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한 의도와 선한 기쁜 뜻에 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에 따라서 사람의 어떤 믿음이나 선행들을 조건이나 원인으로 삼지 않고 오직 순전히 거저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선택의 예정을 행하셨음을 올바르게 고백을 합니다. 예정의 선택은 하나님의 뜻 이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으며, 그의 뜻은 항상 선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개혁신학이 밝히고 있는 선택의 예정과 관련한 성경적인 교훈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선택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이러한 선택의 예정이 과연 선하신 하나님의 작정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의 선택의 예정에는 어떠한 냉정한 무자비함이나 자의적인 불의함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충만함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은 주권자가 자의로 그의 권력을 폭력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이 이루어지며 또한 실행이 된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개혁신학은 선택의 예정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해 불의와 변덕을 말하는 잘못된 주장을 일소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의 예정을 하심으로써 자신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시는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예정을 통해 선택된 자들을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며, 이 모든 선택의 예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토록 하십니다. 이것이 여기서 살피고 있는 신앙고백서 5항이 밝히는 선택 예정의 목적입니다.
선택의 예정은 먼저 택함을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 목적을 갖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며”(엡1:4), “그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엡 1:5) “그의 기업”(엡 1:11)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은택은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이 영광은 후에 사라지거나 감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예정을 통해 이러한 영광을 선택한 자들에게 부으심으로써, 결국 이들로 하여금 이제 이 모든 일을 통해 받은 은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도록 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선택의 예정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며 목적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