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예정의 불변성(제3장 4항)
<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
3장 4항: “이와 같이 미리 결정이 되고(predestined) 미리 규정이 된(preordained) 까닭에, 이러한 천사들과 사람들은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그리고 불변하게 계획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수효는 일정하며 한정이 되어 있어 그 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신자들은 결코 구원에서 떨어짐 없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주님께서 잡히신 날에 닭 울기 전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을 미리 아시고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후에 완전히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다시 회복될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자신이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차피 다시 일어서게 될 베드로를 위하여 공연히 기도를 하신 것일까요? 베드로가 돌이킨 후에 다른 형제들을 굳게 할 것이 미리 작정이 되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권면은 불필요하며 쓸모없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선택이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불변적으로 확정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어떤 경계의 말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구원을 확신하고 하늘의 복을 충만히 누리는 성도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그러한 확신과 기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간절히 애쓰는 경건의 노력을 결코 중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을 좇으며 죄의 길을 따르지 않으려는 신앙의 의무를 행하지 않는다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요컨대 선택의 불변성은 택함을 받은 자가 무엇을 하든지 그는 결국 필연적으로 구원을 받을 것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이라는 목적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편은 결코 양립할 수 없거나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디모데후서 2장 19절은 선택의 확실성과 불변성에 대한 전거로 개혁신학이 제시하는 중요 구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아십니다. 이것은 자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의 확실성을 말해 줍니다. 동시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나라는 말씀은 택함을 받은 사람들 편에서 이루어져야 할 신앙의 의무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불의에서 떠나 거룩함을 좇는 자들이 되도록 보호할 것을 또한 암시합니다.
끝으로 한 가지 예를 더 살펴보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 여기서 모세가 말하고 있는 “주께서 기록하신 책”이란 영원한 생명의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섭리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를 바라는 열망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세는 이제 어떻게 해서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에서 구하여 내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한 모세는 정녕 자기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는 것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죽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하나님의 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는 말로 자기 백성들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않도록 하여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로마서 9장 3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말도 생명의 책에서 지워지기를 바라는 기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여기서 바울이 뜻하는 바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생명에서 끊어져 분리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불경건한 일이 될 것이므로 참된 기도의 간구가 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한 것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동족들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열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을 때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의 작정이 변하여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주님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섭고 큰 것인지를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결코 구원에서 떨어짐이 없습니다(빌 4:3, 계 13:8, 히 12:23). 그리스도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계 3:5).
결론적으로 이러한 모든 은혜의 사실들은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천사들과 사람들의 수효는 일정한 수로 한정이 되어 있으며 결코 늘어나거나 감소하는 등 변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