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의 꾀(민 31:16)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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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하이델베르크 63>

발람의 꾀(민 31:16)

이윤호_선교와 비평 발행인

“세상의 가치관과 혼동될 때 교회도 무너져”

108문> 제7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모든 부정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따라서 거룩한 혼인의 관계
에 있든지 독신으로 있든지, 우리는 어떤 부정이라도 마음으로부터 미워하
고, 순결하고 단정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109문>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에서 간음, 또는 그와 같은 부끄러운 죄만을 금
하십니까?
답> 우리의 몸과 영혼이 모두 성신의 전이기 때문에 우리가 몸과 영혼을 순
결하고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정한 
행동이나 몸짓, 말이나 생각이나 욕망, 또한 그리고 유혹하는 모든 것을 금
하십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약속의 땅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습니
다. 그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직면한 여러 가지 도전들 
중 
하나는 이미 정착을 하고 있던 이방 민족들의 영토를 지나가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통과를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
의 땅을 향하는 여정은 전투를 동반하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결코 녹녹치 않았던 가나안 여정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전투를 위해 잘 훈련된 군사들이 아니었습니다. 변
변한 전투 장비조차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이 이미 전투대열을 정비하고 있
는 군대와 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
코 힘없이 쓰러질 군대는 아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
직이는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의 승패는 객관적 전력의 우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 여
부에 달려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승리가 
보장된 군대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승전보는 주변으로 전해져, 모압과 미디안 사람들의 귀에까지 이
르렀습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이미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정면 대결에
서 승리를 기대할 수 없었던 모압과 미디안은 묘책을 고안해 내었습니다. 브
올의 아들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한 후 전쟁을 치르는 것이
었습니다. 
그렇지만 발람이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
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의 입을 주관하셔서 저주 대신 오히려 축복
이 선포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후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닌데 이만 명 이
상의 이스라엘 백성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
노하심의 결과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이라 불리는 이방신을 섬기는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후에 성경말씀이 밝히는 바 이 범죄의 원인은 ‘발람의 꾀’에 있었습니다. 발
람은 첫 계획의 실패로 낙담했던 모압과 미디안에게 새로운 계략을 제시했습
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공격하는 대신에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배반하
게 함으로써 그 민족을 자멸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발람은 어떤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 하는 자리로 이끌었을까요? 바
로 음행을 통해서입니다. 발람은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도록 했습니
다. 뜻밖에도 그 계획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많
은 이스라엘 남자들이 그들과 음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발람
의 계획대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방 여인들이 우상숭배 하는 자리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초대했을 때 그들
은 기꺼이 동참하여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어울렸습니다. 결국 이방 신
을 숭배함으로써 그들과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
다. 
이스라엘의 관심은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이방민족들과 싸울 때 그들의 마음은 비장했을 것입니다. 전투에
서 승리한다는 것은 곧 약속의 땅으로 근접하고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
다. 
반면에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사들에게 이방 여인들과 간음하는 것
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는 허용될 수 있을 것이라
는 마음을 지니고 말입니다. 한두 번 음행 한다고 해서 약속의 땅을 향하는 
행진을 멈추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올바로 파악한 이는 오히려 발람과 그의 꾀를 따르는 자들이었습니
다. 음행이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시키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사
실을 그들은 발견했습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이 만약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그
들의 존재 의미 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전쟁보
다 음행으로의 유혹이 더 효과적인 공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당했던 공격은 우리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때로는 소
리 없는 공격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음행을 하도록 합니다. 
특히 음행에 대해서 무한히 관대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마땅히 죄로 여겨야 할 음행이 개인의 권리나 우리시대의 문화로 여겨지는 
것은 비단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가치관부터 구별해 내야

교회가 아무리 영적 성숙과 성장을 향해 매진하더라도 육체의 음행에 대한 
세상 가치관을 올바로 판단하고 있지 않다면 이미 ‘원수들의 꾀’에 넘어가 
버린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발람의 꾀’에 넘어갔던 광야교회처럼 말입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