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기념하는가?_이윤호 장로

0
14

하이델베르크<28>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기념하는가?

이윤호 장로_‘선교와 비평’ 발행인

45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첫째, 그리스도는 부활로써 죽음을 이기셨으며 죽으심으로 얻으신 의에 
우리로 참여하게 하십니다. 둘째,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 새로
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러
운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부활절을 절기로 지킵
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활절에 받는 삶은 계란이 큰 기쁨이 되기도 했습니
다. 십자가나 교회와 같은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계란은 그리스도와 성도
의 부활을 기억하게끔 하는 작은 도구였습니다. 

부활절에 받는 계란 남달라

부활절에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교회에 입고 오는 하얀 한복이 또한 머릿속
에 남아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옛날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 섰던 여인들

n과 앞으로 있을 우리 몸의 부활을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부활절에서 빠질 수 없는 큰 행사로 연합예배를 들 수 있습니다. 사
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미리 정해 교단 교파의 구별 없이 수
많은 성도들이 함께 모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하나 되었음을 내외
적으로 확인하는 이 행사는 교회의 위상을 드높이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방편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
다. 부활은 성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승
천을 앞둔 예수님께서 마지막 하신 일들 중 하나는 바로 제자들로 하여금 부
활의 확신 속에 거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의
심하는 그의 제자에게 친히 그의 손을 보여주시고 옆구리의 상처까지도 만져
보게 하심으로써 교회의 터가 될 그의 제자들이 흔들리지 않는 부활신앙 위
에 거하도록 하셨습니다. 부활에 대한 굳건한 신앙 없이는 교회가 설 수 없
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교회가 확장해 나갈 때도 우리 주님은 부활 신앙이 없는 
확장을 결
코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성령의 간섭 속에서 이스라엘
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사도행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
도행전 기록자가 보통의 그리스도인을 증인이라 호칭한 경우를 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증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의 메시지를 직접 들었던 그의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전인격적으
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휼한 사람들을 통해 성령께서는 최초 교회의 모습
을 형성하고 확장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이토록 중요할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의 부활이 그리스도인이 소유한 생명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죽은 존재와도 같음을 성경을 통해 압니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의 
범죄에 대해 죽음을 약속하셨고 모든 인간은 그 곳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
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그 죽
음을 완전히 물리치셨고, 그 승리로 인해 그리스도에 속한 그의 백성 역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활신앙 위에 선 교회는 세상이 가지
지 못
한 생명을 가진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그토록 중요하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해 왔습니다. 고린도교회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고, 디모데
가 보살피는 성도들 중에서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그리
스도의 부활을 부정한다면 그들은 즉시 이단으로 정죄될 것이고 성도들은 그
들을 경계하고 멀리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에 미혹되어 잘못된 신앙으
로 돌이켰던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혹시 당시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
도의 부활을 늘 이야기하고 때때로 부활을 기념하는데도 게으르지 않았지
만, 신자에게 생명력을 주는 부활의 참 의미를 훼손시켰던 것은 아닐까요? 
혹시 우리도 이러한 유혹 가운데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외형상으로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흰옷을 
입고 부활절 찬송을 함께 부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표면적으로 선언합니
다. 옛날 로마 카톨릭에서도 부활절을 기념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오랜 기
간 동안 부활절 행사를 준비하는데 교회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활로 인한 생명력이 교회에서 드러나
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도 부활을 부정했던 사람들의 교훈에 대해 귀가 얇
아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리문답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방법이나 규칙을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습니다. 오직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만 생각하도록 합니다. 부활
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백성인 우리들이 새로운 생
명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올 영광스런 부활에 대한 
소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기준이 되는 것
이 그것입니다. 

부활은 새생명 나타내는 것이어야

이 사실을 전인격적으로 깨달음으로써 세상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생명력
을 교회가 소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을 기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