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주 목사/ 소식교회
제21문
문: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구속자는 누구이십니까?
답: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구속자는 다만 주 예 수 그리스도이십니
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시어 한
위격에 양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요,사람이시었으며 영원토록 그러하십니다.
성경 : 에베소서 1:3-14
택하신 자들의 구속자
우리가 어렸을 때에 한국 교회에 초창기에 활동했던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종
종 들었습니다. 그중에 재미 있었던 내용 중의 하나가 최권능 목사님 이야기
였습니다. 그 분이 외치던 구호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었습니다.
이런 짧은 말은 그것이 복음의 핵심 내용, 곧 복음의 엑기스일 때 그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
다. 하나님께서 그런 환경을 만드시고 그런 은혜를 베푸실 때에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복음의 엑기스를 지금은 이단들이 복음을 흐리게 하고 오해케 할
목적
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복음의 바른 내용들이 전반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쳐지면서 유용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교육이나 학교교육이 유기적이며
통합적 교육방식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새신자교육도 그와 같은 방식의
교육이 되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짧은 말이 어린이들에게는 좋으나, 짧은
말에 하나님께서 뜻하신 그분의 모든 부요를 담기에 적절치 못한 경우가 많습
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한 문장입니다. 3절이 주 문장이고, 나머지
는 꾸밈절입니다.
예로부터 하나님의 예정을 찬양의 복음이라 하였습니다. 오늘은 주제를 따라
진리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택하신 자들의 구속주를 기리며 찬양하십시다.
1.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모든 비참함을 포함한 죽음이요, 현세를 떠나는 죽음으
로 그치지 않는 영원한 형벌입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
신 꼭 그대로 죄가 있게 되었습니
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에 따르는 형벌에서 피할 길이 없고 그 형벌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풀려나기 위한 값을 헤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속전은 너무 커서 사람은 갚지 못한다고 시편에서는 말씀합니다(시 49:6-
8).
2. 사도께서는 이 구속, 곧 죄사함을 값 없이 은혜로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
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7절)라는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죄인의 속전으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려 대속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구속주가 되셨습니다.
3. 이 구속주는 유일하신 구속주이십니다.
1) 이런 구속주의 일을 베드로 사도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
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
라”(행4:12)고 명백히 선언하였습니다.
2) 구속에 대한 또 하나의 명백한 선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
셨습니다. 주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하였습니다.
3) 이와 같은 명백한 선언 이외에도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말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성경의 주제
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요 5:39-47).
①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은 여기에 집중되어져 있습니다. 이같은 사실
은 구약의 모든 구속의 역사가 이 구속주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음을 말합니
다. 참으로 이 구속주 없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가 무의미한 역사일 뿐입
니다.
② 우리 주님께서 부활 후에 친히 하신 말씀도 이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하여
줍니다(눅 4:44-48).
③ 사도들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
도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습니다.
④ 또한 신약의 모든 책이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복
음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도행전이나 모든 서신서조차도 성삼위 일체이신 그
리스도를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책인 성경이 구약
이나 신약이나 모두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으로 첫째를 삼는다면 이
것은 그리
스도가 구속주이시고 그리스도만이 구속주이심을 뚜렷이 드러냅니다.
4. 세상에는 기독교가 배타적이라 하여 비난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길이 여럿이지만 결국 도착지는 같지 않느냐? 불교, 유교, 회교
등등 여러 종교가 있으나 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합니
다.
교회 생활을 수십년 해 온 사람도 그의 신앙생활의 바닥을 살펴보면 대개는
이와 같은 보편 종교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형편을 보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만 유일한 종교라 함은 독선이다”라고 주장하
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이런 이론은 매우 공정하고 관대한 주장인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와 주장이 과연 공정하고 관대하려면, 그것이 인류에게 실
지로 도움이 되고 유익해야 할 것입니다.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과연 모든 종교가 다같이 죄와 죄의 비참한 처지, 곧 영원한 사망 아래 있
는 사람을 구원하느냐? 어느 종교를 택해도 상관없이 구원이란 목적을 달성하
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공정성이나 관대함이란 무
익한 것이 됩니다. 오히려 구원이
없는데 있다고 많은 사람을 속이는 위험 천
만한 사기극이 될 뿐입니다.
5. 대체로 “길은 여럿이나 목적지는 같다”는 말의 배후에는 사람이 처한 죄
와 죄로 말미암은 비참이 무엇인지 똑똑히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분명히 있습
니다.
죄란 하나님, 바로 그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요, 그분의 속성으로부터 벗어
나는 것이요, 그분의 절대성으로부터 벗어남인데, 이로써 생명의 단절이 있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참 생명이 결여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들에
게는 영원한 멸망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무지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죄의 심각성과 거기에 따르는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움을 인생들이 무지하여
모르기 때문에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6.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무덤에 묻혔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여 영원토
록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와 죄의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원
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 사실은 유일
한 구속주 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아버지 하나님의 뜻
을 이룬다는 말이요,
또 한편 구속의 영원한 효과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거룩
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속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갈4:45, 히9:22, 레
17:11).
주님께서 죄인의 대속물이 되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다는 사실은 인생이 가히 짐작키 어려운 오묘한 진리입니다. 그것
은 최고급한 선물의 방식으로 성삼위 일체이신 하나님 자신을 주신 것을 말씀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오직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받아
누림이요, 그것은 믿음으로만 누릴 생명의 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주님만이 나의 구속주 되시는 사실을 인하여 감사하며 찬송하며 사는 것입니
다. 디모데전서 3:16, 에베소서 1:3-14, 2:1-10절을 차례로 읽어 보십시요.
신명기 7:6-11, 로마서8:29-30절도 읽어 보십시요, 이런 본문들이 예정론의
진수입니다. 그리고 이런 본문들이 성경 전체를 주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
다.
여기에서 장로교회 특징이 나옵니다. 장로교인들의 신앙생활이란 신론, 곧 예
정론에 근거한 신앙생활입니다. 목회자들의 경우에는 예정론에 뿌리
를 둔 목
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써의 신앙생활이요,
목회입니다.
7. 참으로 이런 본문에서 큰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고, 또 이런 본문에서 걸
려 넘어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있어서까지라도 성삼위 일체이신 하나님, 바로 그분의 정하
심대로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성삼위 일체이신 하나님의 자기계시
를 통하여 알고 믿는 바대로는 그분의 예정은 빈틈없는 예정이요, 온전한 예
정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장로교회는 가장 번창할 수 있
는 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신앙생활의 많은 활동 중에서도 그 핵심들을 놓치지 않아야 하
겠습니다. 몇몇 사람이라도 그 핵심을 발견하고, 또 받으면 그 사람들만이
“남은 자”로 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쓰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우선적으로는 우리가 진리편에 서 있는게 중요합니다. 그 다음
에는 그의 생애의 전 과정에서 그 진리를 고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
리를 따라 가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
로 하여금 굳세게 서게 하실 것이요, 또한 그러
한 사람을 높이실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
실 은혜입니다. 또 우리가 받아 누릴 주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