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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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형 목사(광양은송교회)

소요리문답 제10문(1)
문 :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답 :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창2:24, 말2:15,
마19:4-6), 자기의 형상대로(창1:27) 지식과(골3:10) 공
의와 거룩함이(엡4:24) 있게 지으사 모든 생물을 주관
하게 하셨습니다(창1:28).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작정
을 성취하심에 있어 그 기초가 된다고 하였다. 오늘은 그 천지창조 중, 특별
히 인간의 창조에 대해서 배울 것이다. 원형적 인간론이다. 하나님께서 원
래인간을 어떻게 지으셨는가 하는 사실이다. 인간의 원래의 지위가 어떠하며 
따라서 인간은 마땅히 어떠한 상태를 지향해아 하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자 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 자기의 형상대로 지식과 
공의와 거룩함이 있게 지으셨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사람을 지극히 존귀
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남녀의 문제는 후론하기로 하고, 우선 사
람 일반에 
대해서 논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그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존귀
하게 대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러므로 민간에서까지 이르기를 “사람 위
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
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
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
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5-27)고 하셨
다. 그러나 볼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믿는 형제에 대하여, 아니 
동역자들에게 대하여 까지 가당찮은 “위계질서”를 강요하는자들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주님의 주신 거룩한 규례인 권징조례를 부정한 것으로 여
기면서 법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이는 존경할 자를 존경하자는 것을 금하
고자함이 아니다. 존경은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자가 어떻게 
존경을 받겠는가? 이는 예수님의 지적대로 이방인의 사상이
다. 선교사들이 그랬던가.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유교라고. 거기
다가 이제는 물량주의까지 들어와서 경건의 척도를, 그리고 발언권의 척도를 
거기에다가 두려고까지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받은 은
사대로 충성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시기와 형편에 따라 충성하면 되
는 것이지 꼭 다른 사람의 기준과 형편을 따라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심지
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예수님마저도 일정기간 동안은 부모를 섬기지 않았
던가? 그의 공생애는 3년뿐이었다. 이는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 아니
라 하나님이 주신 처지에서 사명을 다하는 것이 옳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는 말이다. 대인인체 하면서 믿는 형제를 멸시하는 자들이야말로 남은 천국
에 들여보내고 자기는 들어가지 못할까 걱정해야 한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가? 지금시급한 것은, 아무리 원론적인 말을 해야 지금 썩은 사상을 도려내
지 아니하면 그 원론적인 말이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의 기독교를 유교적 체질에서 구원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교회다운 
교회가 
되지 못한다. 교권주의는 한국의 기독교에서 왕성하게 발호하고 있다.
그리고 교권주의는 반드시 세속화와 부패로 흐른다. 교회가 교회다와지지 못
하고 공의가 시행되지 아니하며 교회가 부패함이 교권주의에서도 비롯되는 
줄 알고 우리 교단은 무엇보다도 교권주의를 배격하는 입장에서 성립된 교
단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점점 변하여 가고 있
다. 그리고 부패한 교회와 사회의 소금이 되고자 하는 긍지와 노력을 포기한 
채 그런 것을 주장하는 자마저 교만하다고 매도하는 입장으로 돌아서고 말
았다. 하나의 교단 화하려면 옛날 거기에서 뭐 하러 나왔던가? 이제 선언문
을 접고 그리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기독교의 토양은 교권주의라고 하는 
이 지독한 잡초를 위하여 훌륭한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젊은 늙은이도 
있고 늙은 젊은이도 있듯이 이제는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수구적, 유교적 
젊은 동역자들을 볼 때 숨이 막힌다. 젊은이들이여! 젊은이다워져라. 그리스
도 안에서 진보를 이루라! 기독교가 아닌 것을 버려라! 그렇잖으면 그대들
은 수치스런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수님의 겸손한 사상을 체질화하지 아니하고 (이겸손은 유교적 굴종주의
와 동일시하지 말 것이다. 겸손이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먼저 요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높다고 여기는 자들이 아래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
들에게 강요하는 겸손은 겸손이 아니라, 굴종인 것이다.) 스스로 존경받기를 
원하면서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사람은 이미 주님과 거리가 먼사람이다. 사람
은 이렇게 위력으로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있지 않고 만물을 다스리게 되어 있
다. 사람의 발아래 놓여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만물인 것이다(시8:3-8).
천국은 오직 겸손한 만족의 도에 이른 사람들만 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