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뛰기’와 망신살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가슴만 내밀고 달리는 모습이 마치 제자리 뛰기하는 것 같아”
작년 가을에 노회대항 체육대회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가끔씩 우리 부부는 웃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항상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본인들이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면서 착각의 세월들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내 남편을 나이보다는 조금 젊게 보아주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가끔씩은 마누라인 내가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본인 자신이 항상 청춘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남편은 대학교 때 핸드볼 선수로 전국체전에 나간 것과 골키퍼의 경력으로 모든 운동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젊은 날 목회하기 전 교직에 있었을 때 운동회 때마다 바람처럼 날라다녔던 시절에 학부형으로 온 동네 처녀들에게 인기가 짱이었던 것들을 추억 삼고, 또 같은 또래의 동료들보다 조금 젊게 보인다고 말하는 말을 그 이상으로 믿는 남편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운동신경이 예민하고 빨라서 축구면 축구, 달리기면 달리기, 모든 운동에 관심을 보이지만 이제 60이 넘었다고 그 누구도 같은 팀에 넣어 주려고도 않을 뿐더러 반가와 하지도 않으며 남편도 주제를 파악하여 응원팀에서 응원만 하려고 합니다. 대학 때 선수로 활동했던 남편은 단체 경기에서 팀원들의 팀웍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구성된 선수들이 각자 개인기를 뽐내며 각자의 성격대로 경기에 임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체육대회 날에 선수로 나가지는 않지만 흩어져있는 동문들과 목사님들을 만나기 위해 천안 종합경기장에 갔습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고 바람이 불고 있었으나 여기저기서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며 즐거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든 경기가 거의 마무리되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릴레이가 있었는데, 사모 1명과 목사님들은 나이별로 선수가 뽑혔습니다. 그곳에 참여한 목사님과 사모님들은 운동장에 원을 그리면서 빙 둘러앉았습니다. 곳곳에서 운동복을 입고 준비운동을 하는데 60대의 선수로 남편이 선수로 뛰게 되었습니다.
충남노회에서는 60대에 뛸 만한 분이 없고 그래도 조금 팔팔하다고 생각이 들어 그 자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체육대회가 있는 전 날까지 비닐 하우스를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짓느라고 모든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고 약간 틀어진 다리까지 절룩였는데 겉옷을 벗고 한 쪽에서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친한 친구 목사님이 걱정을 하며 “최 목사, 무리하지 마! 연예인 누구도 연예인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어” 하면서 말렸습니다.
남편은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과거의 자기 몸만 믿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충남노회가 선두에 있었고 그리고 남편이 바통을 받고 달리는 순간 응원을 하던 나는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습니다.
1등에서 2등, 그리고 뒤로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운동회 때 보면 달리기 못하는 아이들이 가슴만 내밀고 종종 걸음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했었는데 남편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남편을 건강하고 운동에는 만능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들과 노회 목사님들이 여기저기서 “최 목사, 다 되었네!” 하면서 웃는데 그 소리를 옆에서 듣는 나를 민망하게 했지만 여러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겨우 예선에 들어서 또 그 모습으로 결승에 나갔는데 결승에는 그 모습이 더 심한데다가 맨 마지막 한바퀴 반을 60대에게 돌렸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일이었지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남편은 바통을 터치하는 순간에 다른 선수가 부딪혀서 달리지 못했다고 하면서 아쉬워하는 것으로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폐회 전에 행운의 추첨시간이 되었을 때 비록 경기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추첨을 통해 마지막 행운이라도 올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참석자 모두 숨을 죽이고 번호에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상품의 단가가 조금씩 올라갈수록 추첨 번호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내 손에 들려진 번호가 불려졌습니다. 상품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가니 짓궂은 목사님들이 “마누라 덕분에 산다!”고 하면서 남편에게 격려 아닌 격려를 했습니다. 그렇게 체육대회 날 하루가 우리를 즐겁게 했지만 남편은 못 내 아쉬워하면서 세월을, 그리고 나이는 어쩔 수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가끔씩 태권도 포즈를 취하며 자기가 건강하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지난 체육대회 릴레이를 생각하며 “제자리 뛰기~~!” 하면 이내 올렸던 다리를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 일을 생각하면서 우리 둘은 서로 웃는 것으로 마감합니다. 달리기 라이벌인 신종호 목사님을 이기고 달리기에서 은퇴를 하겠다고 농담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나게 합니다.
추첨되어서 받은 담요로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면서 또 우리를 즐겁게 하는 체육대회를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