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박사를 생각한다
< 박영선 목사, 남포교회 >
“개인적으로 어떤 불명예와 부족함이 있은들 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에 무슨 하등의 문제가 있겠는가?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당신은 은혜도 하나님도 기독교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 교단, 아니 한국 보수주의 교회는 고 박윤선 목사님에게 중요하게 도움을 받았다. 박윤선 목사님은 신앙을 더 분명히 하고 그것을 한국교회에 깊게 뿌리내리게 하시려고 신학에 전념하신 분이다.
그는 1905년에 태어나서 1988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을 기독교신앙과 신학에 헌신하였고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 그는 성경 66권 전권을 주석하셨고 고려신학대학원, 총신신학대학원 그리고 합동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봉사하셨다. 그리고 합신 교단을 만들 때에 신앙적 지주가 되셨다.
그의 생애는 각종 일화들로 가득한데, 그의 신앙적 진실성과 신학적 전념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분의 공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윤리적인 것보다 신학적인 것이다. 그것은 계시가 인식에 우선한다는 계시의존 신학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이 일하시던 당시의 한국교회와 신학의 수준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때였던 만큼 목사님의 가치는 신학적이기보다는 윤리적으로 이해되었다. 주석을 집필하시기 위한 노고와 집념, 설교나 목회에서의 진정성, 사심 없고 청렴한 생활 등은 진실, 열정, 순수, 헌신, 희생 같은 것들로 이해되어 그를 설명하였다.
그런 바람에 박 목사님의 신학적 공헌은 대부분의 경우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의 윤리성이 그를 대표하는 것이 되고 또한 그 윤리성이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그리고 우리 교단의 특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의 신학적 공헌은 보수신학에 있어서 사활이 달린 가장 중요한 것이다. 계시가 인식에 우선하고 하나님의 존재적 우선권이 우리 인간의 선택에 우선한다. 박 목사님의 이 중요한 공헌은 당시에나 심지어 지금까지도 보수진영 내에서 그리고 우리 교단에서도 그의 윤리성에 묻혀 보존되었다. 우리는 그가 가르쳐준 계시 우선, 하나님 주권의 우선성을 교회의 본질적 특성,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데는 부족했다.
우리의 신학적 신앙적 고백과 이해는 박윤선 목사님을 그 대표적 증인으로 내세울 때마다 그러듯이 다분히 윤리적이다. 특히 목사님의 활동 시기는 지금보다 더욱더 명분과 전통의 사회였기에 목사님의 신학적 공헌은 당연히 윤리적 만족을 먼저 충족시켜야 했다.
그것은 당시 사회적 요구였고 한국사회의 역사적 정서적 요구였다. 목사님도 당시 사회의 일원이었으니 기독교 신앙을 설득시키려면 마땅히 윤리적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여 재고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긍정적 적극적 증거를 가질 조건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는 부정적 소극적 증거를 먼저 요구받았고 그것을 만족시키는 일은 당연한 책임이었다. 목사님은 자신의 신학적 신앙적 공헌을 위하여 당시 사회의 윤리적 요구를 당연히 받아들였고 그것은 희생적 이타적 삶으로 나타났다.
박 목사님이 등록금 없는 신학생을 위하여 생활비를 털어준 일화나 부당한 대우를 말없이 감수한 일화는 너무나 많다. 당연히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도 그 희생을 감수하였다.
나는 박 목사님과 두 세대의 차이를 둔 후손이지만 나의 목회인생도 지난 30년간 그와 같은 윤리적 요구, 희생과 청렴에의 결벽증을 무슨 유전병처럼 달고 살았다. 당연히 가족들의 불만과 상처를 안고 살았고 교회가 이런 일에 위로보다는 더 큰 명분으로 목회자를 요구하는 한국 정서의 유산 속에 지금도 살고 있다.
우리는 박 목사님이 윤리적이고 신학적이고 신앙적이고 가정적이고 완벽하고 위대하여 무슨 문제가 생기든 그의 이름을 거론하면 모든 책임이 면제되는 그런 신앙과 정체성을 가진 것인가? 박 목사님을 위인과 영웅으로 만들어 교회와 기독교를 쉽게 설명하고 싶은가?
박 목사님의 위대함은 한국교회의 중요한 신학적 시대에 하나님이 그를 세워 유익과 은혜를 베푸셨다는 데 있다. 그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가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유익이 되었다는 데 있다.
나는 어느 때쯤 보수신학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그 즈음 박윤선 목사님이 계시와 이해의 갈림길에서 계시의 길로 가라고 안내판 같이 서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옆에서 서서 안내자가 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할 보수주의의 한 책임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길로 들어가 그 길을 걸어 그 길의 가치와 내용을 소개하고 누리고 나누는 것이다. 안내판이 낡았다든가 글씨가 퇴색했다는 것과 그 길을 가는 것과는 얼마나 다른 일인가!
박 목사님이 이 안내판으로의 사명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감당하느라 가정적 개인적 차원에서의 희생을 또는 실패나 불명예를 가졌다 한들 그것이 박윤선 목사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부족함을 가리기에 급급하다면, 그의 진정한 위대함인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의 능력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박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어떤 불명예와 부족함이 있은들 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에 무슨 하등의 문제가 있겠는가?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당신은 은혜도 하나님도 기독교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위대함만 쓰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과 결점으로도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모르면 기독교신앙이 어떻게 복음이 되며 우리의 인생에 무슨 희망이 남겠는가?
더욱이 목사로 부름 받은 우리 모든 하나님의 종들에게 박윤선 목사님이 부족하셨으나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하셨다는 것이 우리에겐 더 큰 위로와 감사가 된다.
박윤선은 한국교회에 은혜의 산증인이며 우리는 그래서 그를 더욱 사랑한다. 그리고 그를 대표로 내세워 그 뒤에 줄을 서는 것을 명예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