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진리답게 외쳐야 할 때_이재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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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진리답게 외쳐야 할 때

< 이재헌 목사, 새과천교회 >

 

복음에 합당한 열정과 애정, 그리고 진정성 가지고 있어야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고 떠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꽤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교회 안에서 힘을 얻고 있다. 단지 말만 아니라 실제로 젊은이들이 떠난 빈자리가 우리 곁에 상당히 크게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 무관심하게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애쓰고 방법을 강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이 상황을 놓고서 우리 모두의 염려는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이런 우려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한 사건을 최근에 우리는 만났다. 교회 안에서 자라고 주일학교 교육 제도 아래에서 양육 받으면서도 홀로 갈등하던 한 젊은이가 자의적으로 IS라고 하는 극단주의 무슬림 테러 집단을 향하여 걸어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오라’고 소리치며 부지런히 땀 흘리며 가르치는 우리 품을 박차고 나간 한 젊은이가 스스로 온라인의 비좁은 길을 돌아 지구 반대편 까지 날아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고 만 것이다.

게다가 그 젊은이와 함께 그 위험한 경계선의 최전선에 까지 동행한 자가 목회자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 참담케 한다. 아마도 한 젊은이를 위해 부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애쓰고 마음을 태웠으나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며 어둠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하며 우리 젊은이들 양육해 가야 할까?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서구의 많은 젊은이들과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젊은이들 상당수가 이미 IS라는 검은 마력에 이끌려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제2, 제3의 이같은 젊은이들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단지 우려가 아니라 실제로 이런 움직임이 많이 포착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외로운 늑대’를 유혹하는 손길 앞에 우리 젊은이들이 무력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가져오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많은 이유 가운데는 그들만이 가진 ‘자극적인 선동’의 방법,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혼란하게 만드는 초현실적 의식 혼합, 극단의 비인격적인 행위의 정당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들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이처럼 ‘화려하게 포장된 거짓이 어떻게 생명의 진리보다 더 강하게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일까?’하는 것이다.

연극배우인 한 성도가 초청한 감동적인 연극을 관람한 목사님이 무대에서 내려온 그 배우 성도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연극을 참 감동적으로 보았는데, 허구의 줄거리로 구성한 연극을 보고서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울고 웃으며 감동을 받는데, 진리의 말씀을 설교하는 목사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어찌 감동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바로 무대에서 내려온 연극배우인 성도의 답이 “목사님, 저희는 가짜를 진짜처럼 말하는데, 목사님들의 설교는 진짜를 마치 가짜처럼 말씀하시잖아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과연 진리를 진리답게, 생명을 생명답게 가르치고 선포하였다면 이렇게 화려한 가짜에 생명을 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을까?

국내적으로 이미 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거부하게 만드는 이단들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 이미 우리 교단은 신년하례예배를 방해하고 소동을 피운 이단의 무리들로 인하여 교단적인 피해를 경험했다. 국내외적인 상황 앞에서 이러한 거짓들의 가면 놀이를 더 이상 묵과하고 무시 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 되었다.

정치권이나 공권력의 힘을 운운하기 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이 있지 않을까? 큰일이라고 염려의 한숨을 쉬며 자녀들을 훈육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깨어 기도하며 진리를 진리답게 외치고 가르치는 지도자의 책임이 더 클 것이라고 본다.

분명한 진리이며 분명한 생명인데, 그 어떤 것보다 강한 능력이 바로 복음이며 이것이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우리의 모습은 그 복음에 합당한 열정과 애정, 그리고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무리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외로운 늑대’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단지 걸음만 움직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과 성도들을 더 이상의 검은 유혹에 노출되지 않도록, 혹 노출 되어도 능히 바른 판단으로 생명을 보존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일에 온 교회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