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는 세속적 정의를 구축한다.

0
335

성화는 세속적 정의를 구축한다.

 

 

한국교회의 윤리부재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는 오늘날, ‘휴머니즘적인 사회정의’를 마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속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혹은 사회 정의를 주창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 칭의’를 약화시키려는 경향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공동선의 추구와 신자로서 중생자의 윤리가 뒤섞여 있는 기이한 현상으로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보겠다는 과욕이거나 혹은 구원받은 신자라면 의당히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사회복음주의에 지나지 않음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명쾌하게 답변을 하고 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의를 사회의 정의 구현으로 찾지 않으면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는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십자가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의’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사회 정의 구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칭의에 기반을 둔 성화로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중생한 신자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아가는 삶으로써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곧 성화의 열매 중 하나인 ‘정의’인 것이다.

이것은 신자들이 추구하는 사회 정의라는 수준이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공리적인 개념의 ‘정의’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령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법’에 순종하며, 이 법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신자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세속적 차원이 추구하는 정의보다 월등히 고상한 공평과 공의를 수행하게 되며, 여기에서 비로소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의 의를 모호하게 사회 정의와 혼합하여 그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은 자칫 ‘기독교’를 단순한 ‘휴머니즘’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이신칭의를 간과하는 그릇된 휴머니즘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이 종교다원주의에 문을 열어주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성화의 길을 가고 있는 신자들의 윤리 의식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위에 서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