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할 때도, 알아보는 사람 없는 곳에서도
추둘란 집사_수필가,홍동밀알교회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기를”
사위가 이미 어두워진 때, 중학생 두 명을 태우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이었습
니다. 뒷차가 상향등을 비추며 꽤 오래도록 따라오는데 LED 전조등 불빛이
라 눈이 부셔서 자꾸만 신경이 쓰였습니다.
뒷차의 전조등 신경 거슬려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래, 너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오기
가 일었습니다. 언덕을 넘고 커브 길을 지나 평지에 왔을 때 내 차의 속력
을 터무니없이 낮춰버렸습니다. 뒷차는 곧 눈치를 채고 추월하여 우리 차 앞
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때는 이때다 싶어 당해보란 듯이 나도 상향등을 켰습니다. 그렇게 해야 다음
에라도, 앞차와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달려가는 상황에서 상향등을 꺼주는
예의를 갖출 것 같았습니다. 통쾌했습니다. 또 후련했습니다.
그런데 그 통쾌함은 채 1초도
가지 않아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화
신슈퍼 앞 다리에서 좌회전하여 마을로 들어가야 하는데 ‘아뿔싸!’ 앞차
가 좌회전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마을 사람이라는 말인데…….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
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속력을 최대한 줄였습니다. 앞차와 멀찍이 떨어져서
표시 안 나게 뒤따라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앞차는 그마저도 눈치를 챈 듯
속력을 더 낮추더니, 마을 진입로 중앙에서 아예 서버렸습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습니다. 눈썹 몇 번 껌벅이는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습니다. 차에서 내려 얼굴 좀 보자고 하면 어쩌나? 우락부락한 아저씨
가 삿대질을 하며 싸움을 걸어오면 어쩌나? 왜 하필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차란 말인가? 아, 이건 아닌데,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앞차에 바싹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죄송하
다고 해야 할지, 모른 척 그냥 지나가야 할지 두 마음이 싸우기 시작했습니
다.
“에잇, 나도 몰라!” 앞차를 스치듯이 지나며 속력을 다시 내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뒷차는 다시 상향등
을 켜고 내 차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상
황이 한번 더 거꾸로 되었습니다. 뒷차도 ‘오냐!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괘씸한 생각이 들기는커녕 뒷차와 어서 떨
어져서 각자의 길로 가기만을 바랐습니다. 어찌되었든 없었던 일로 해버리
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방앗간 앞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우리집은 문산마을이었지만 중학생
한 명을 서근터 마을에 내려줘야 했기에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습니다. 서
근터 마을의 집이래야 몇 채 되지 않으니 뒷차가 따라올 확률은 별로 없었습
니다.
왼쪽 길이 더 넓은 길이고 문산마을, 원당마을, 김애마을로 연결되는 길이었
기에 뒷차와 떨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제발 다른 쪽 길로 가 주
기를 바라고 바라면서 우회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완전한 착각이었
습니다. 뒷차도 역시 우회전을 하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외길이고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우는지 뻔히 다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모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을 때, 갑자기 뒷차가 생각지 않은
샛길로 꺾어들
었습니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습니다. 뒷차는 틀림없이 우리 차 번호를 보았을 것입니
다. 우리 차 모델은 마을에서 한 대뿐이고, 번호판도 흰색 새 번호판으로 바
꿔달았는데 그 역시 마을에서 몇 대 안되기 때문에 차량번호를 잘 외는 사람
이라면 이미 내가 누구인지 다 알았을 것입니다. 교회의 집사라는 것도 알
지 모르겠습니다. 새벽기도 다닐 때마다 교회 언덕 밑에 보란 듯이 주차해
두는 것도 알지 모르겠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아니, 민서엄마 아녀? 얌전한 사람이 이게 무슨 일이여? 교회 다니는 사람
이 그러면 되나? 안 그런 줄 알았더니 사람 다시 봐야겠네.” 귓가에 그렇
게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니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초보라 뭘 몰
라서 그랬구먼. 그런 때는 당신이 비상 신호등 몇 번만 깜박여 주면 뒷차가
알아차리는 거라구. 좋은 사람 만난 줄 알어. 나 같았으면 차에서 내려 멱
살 잡았을 거야. 학생들이 보고 배우지 않았을까 몰라.”
그렇지 않아도 요즘 주일낮 설교 시간에 ‘말’에 대하여 4주 연속 설교를
들으면
서 누가 들을까 하여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귀엣말조차도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고 배웠습니다. 말뿐이겠습니까? 나의 마음과 행동도 똑같을 것
입니다.
깜깜했고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심술을 부린 것인데 그 순간에 하나님한테 “주님 어떻게 할까요?” 한번만
물어보았더라면 이 같은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
도 깜빡, 하나님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어버린 것입니
다.
깜깜할 때뿐 아니라 대낮이어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 심지어 내가 나쁜 짓을 저질러도 아무
도 모르는 곳에서도 나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모조리 다 보
고 계신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1년 6개월짜리 초보운전자가 겁도 없이 까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맘 좋
은 운전자를 만나 불미스런 일은 피하였습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당해보라는 심술 후회스러워
운전 예절에 대해 배울 수도 있었고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한
번 더 묵상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